(1) 그리스도인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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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리스도인의 ‘행복’
  • 승인 2008.05.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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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웰빙(well-being)이라는 영어단어를 사용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문제를 논의했는데, 최근에는 경향이 바뀌어 그냥 우리나라 말로 행복(幸福)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것인가를 두고 많이 연구도 하고 또 토론도 하며 또 강의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행복학 강사들의 연구가 더욱 깊어져서 긍정의 힘을 말하고 혹은 행동하는 긍정을 말하기도 하면서 국민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KBS1 TV 아침마당을 시청하다 보면 행복학 강사들이나 혹은 행복 디자이너(designer) 들이 금방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 것처럼 접근한다.

그러나 그 강의들을 듣다가 보면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가 빠져 있다. 우리를 참으로 행복하게 만들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빠진 것이다. 아무리 강의를 들어보아도 그 방송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일반 방송에서 종교를 말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 방송의 강사들은 비록 강사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일지라도 수박 겉을 핥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싶다.

사실 그리스도를 말하지 않고는 행복을 말할 수가 없다. 그리스도를 만나지 않고서는 행복을 말할 수도 없고 또 행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서도 안 된다. KBS 1 TV에 출연해서 행복학을 말하는 강사들은 여러 가지 행복지침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 자신들도 역시 무수한 염려와 근심 속에서 살아간다고 말한다. 사실 그들은 지금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저 남보다 좀 낫게 산다는 것, 그리고 어떻게 하다가 방송에라도 출연했다는 것 등을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에 행복한 삶은 시작된다(마 16:16-17). 예수님을 구주라고 고백한 베드로를 향하여 예수님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해서 금방 행복이 무르익은 것은 아니다. 다만 시작일 뿐이다. 그리스도인이 느끼는 행복은 점점 성장해가는 법이다. 각종 죄를 자복해가는 중에 그 심령이 깨끗해지는 정도에 따라서 행복 지수도 늘어간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라고 말한다(롬 7:22; 고후 4:16; 엡 3:16; 골 3:10; 벧전 3:4). 죄를 자복해서 속사람이 새로워지고 인격이 새로워질수록 행복지수도 늘어간다는 말이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은 성도들을 향하여 즐거워하라고 말씀한다. “그(예수)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고 말한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이 은혜(this grace) 곧 칭의(稱義) 안으로 들어감을 얻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바울은 이 은혜 안에 우리가 “서 있다”고 말한다. 여기 “서 있다”는 말은 과거에 서 있게 된 것이 지금까지 계속함을 뜻하는 말로 지금도 여전히 칭의(구원)의 은총을 누리고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칭의(구원) 안에 확고부동하게 서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의(義)롭다 함을 얻은 다음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나타날 우리들의 구속의 완성을 바라보면서 즐거워하라는 말이다(롬 2:7; 8:18, 30; 고전 15:43; 고후 4:17; 골 1:27b; 3:4; 딤후 2:10)

그리고 성도는 현재 환난을 만나서도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되었다. 이유는 환난이라고 하는 것이 가져오는 유익을 받기 때문이다. 환난은 인내의 인격을 만들어주고, 성도가 인내하다가 보면 신앙인격이 연단되고, 또 연단의 삶을 살다보면 그리스도를 더욱 소망하는 인격이 되기 때문에 모든 고난 중에도 기뻐하는 삶을 살게 된다(롬 5:2-4)

그리고 성도는 그리스도를 소망하는 중에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된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사랑을 깨닫게 되니 말할 수없는 행복을 느끼게 된다(롬 5:6-8)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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