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참하지만 위대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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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하지만 위대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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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11.1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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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목사 <서초교회>


가을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가을이 되면 사람들이 자주 떠올리는 릴케의 시가 있다.

“주여! 어느덧 가을입니다... / 지금 혼자만인 사람은 언제까지나 혼자 있을 것입니다. / 깊은 밤중에도 책을 읽을 것이며,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 낙엽이 떨어지면, / 불안스러이 가로수 길을 왔다 갔다 거닐 것입니다.” 

조금은 고독하고 서글픈 것이 가을이 주는 느낌이다. 마음 속 깊은 곳에 감추었던 추억들을 꺼내서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절이 가을이다.

그런데 가을은 서글픈 계절만은 아니다. 가을은 농부의 얼굴에 땀이 흐르는 결실의 계절이요 감사와 기쁨의 계절인 것이다. 릴케의 시에는 가을에 대한 서글픔보다는 감사와 기쁨의 표현이 더 잘 나타난다.

“주여! 어느덧 가을입니다. / 지나간 여름은 위대하였습니다... / 따뜻한 남국의 햇볕을 이틀만 더 베풀어주십시오. / 과일이 익을 대로 잘 익어...”

가을은 고통과 수고의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결실의 계절이다. 가을은 서글픈 계절이면서도 감사와 기쁨의 계절인 것이다. 가을은 이중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도 이중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하나님을 떠난 타락과 죄악을 생각할 때, 인간은 비참한 존재이다. 인간은 욕망이라는 짐을 지고서 세상에 태어났다. 욕망이 이끄는 대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살다가 허망하게 끝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욕망을 따라 유리방황하는 인생이라 해서,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창세기 4장 12절).

욕망과 분노가 이끄는 대로 자신의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인 가인은 유리방황하는 자가 되어서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아야 했다. 가인만이 아니라, 우리도 역시 욕망을 따라 분노를 따라 유리하며 살아간다. 그러니까 인간은 비참한 존재인 것이다.

인간은 비참하다. 그렇지만 인간은 위대하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거룩하고 영광스런 존재로 창조하셨다. 본래 위대한 존재인데, 그 위대함을 상실했기에 인간은 비참해진 것이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생각하면 비참한 존재이지만, 나를 만드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나는 거룩하고 위대한 존재이다. 나는 비참하면서도 위대한 존재인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의 어두움과 절망이 나를 위협한다 해도,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기대와 열망을 포기할 수 없다.

인간은 본래 고귀한 존재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귀한 존재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을 다스리도록, 하나님께로부터 고귀한 사명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죄악과 타락 이후에 인간은 어두운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한 인간의 영혼에는 떠나온 본향(本鄕)을 바라보는 애타는 향수가 있다. 잃어버린 거룩함과 위대함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인간이 위대하다고 말할 때, 그것은 인간이 잃어버린 영광을 가리키는 것이거나, 아니면 장차 다가올 구원의 미래를 가리키는 것이다.

인간이 위대하다는 것은 지금의 현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 회복될 미래와 구원을 생각할 때 인간은 거룩하고 위대하다. 그러니까 인간의 위대함, 거룩함은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야만 완전해질 것이다.

먼저 하나님을 생각할 때 인간은 위대한 존재이다. 그러나 하나님 없이 인간만을 생각할 때 인간은 비참한 존재이다. 그 두 가지가 인간의 본성 안에 동시에 존재한다. 그 비참으로부터 위대함을 향하여, 죄인을 구원하여 이끌어가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어진 구원의 사명이요.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에게 주어진 선교의 사명이다.

십자가와 부활의 거룩하고 위대한 토대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비참해진 인간과 교회를 또다시 그 위대함으로 이끌어가려는 것이 종교개혁자들의 개혁의 목표요 방향이다. 지금 이 자리에 머물러서는 그러한 변화가 불가능하게 보였기에, 어디론가 떠나는 과정에서 그 거룩함을 추구했던 청교도들로부터 추수감사절이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죄인의 비참한 영혼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것이 종교개혁과 추수감사 절기에 합당한 자세일 것이다. 그러니까 이 가을에 우리 영혼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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