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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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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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11.1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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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목사<의왕중앙교회>


애지중지하던, 적어도 내겐 의미 있고 귀한 만년필 하나를 버리면서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새롭다.

나는 고등학교 3년 동안 한 분의 담임선생님을 모셨다. 학년을 진급할 때마다 선생님은 그 제자들을 따라 매년 진급한 상급반의 담임을 맡으셨는데 전 학년을 흩어 새 학급을 편성하는데도 공교롭게도 나는 3년 동안 그 선생님을 담임선생님으로 모시며 고등학교시절을 보냈다.

선생님은 내게 유별하신 분이시다. 3년간 한 분 담임선생님이신 것 말고도 내 인생에 있어서 참 많은 의식의 전환을 갖게 해주신 선생님 이상의 스승이시다.

학교를 졸업하기 며칠 전 단단한 아크릴 하드박스를 고급스런 포장지로 포장한 예쁘고 값진 ‘pilot’이라는 이름의 만년필을 선물해주셨다. 많은 의미를 담은 선물이었다. 나는 그 만년필에 얼마동안 잉크를 담지 못했다. 평생 간직하고 싶은 그런 것이었기에….

군에 입대할 때도 간직하고 갔던 만년필이었는데 어느 날 친구와 장난하다가 그만 그 만년필을 두 동강이를 내고 말았다. 이렇게 저렇게 고쳐보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회복시킬 수가 없었다. 그래도 버리지 못하고 그런 채로 서랍에 몇 년을 두고 있었는데 어느 날 교회를 이사하며 서랍을 정리하는 중에 그 부러진 만년필을 발견하고는 버리기로 했다. 허리 꺾인 채로 10수년이 지난 뒤의 어느 날 또 다른 폐기물들과 함께 버렸다.

진정한 목사가 되고 싶었다. 목사로서 세월이 쌓일수록 목사가 되고 싶은 갈망은 깊고 커져만 갔다. 목회의 현장에서 나는 목사였다. 내 인생도 나를 목사로 세웠다. 나의 목사됨이 생소한 어린 시절의 벗들도,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그 누구도 나를 목사라고 불렀고, 나는 목사였다. 그 만큼 반듯한 삶을 갈구했다. 하지만 갈수록 목사로부터 멀어져만 갔다. 나는 머리도 몸도 맘도 목사였다. 하지만 목사가 무엇인지를 잃어버렸다. 목사가 무엇인지를 몰랐다고 말함이 더 옳을 것이다. 약 30년 전에 목사로 임직 받았다. 그래서 나는 목사인 것이다.

목사로서 요구되는 이러저러한 것들을 가지려고, 목사로서 정당하게 가질 비전 앞에서 나름 무척 애를 썼다. 주변의 사람들은 날보고 쉬라고 말한다. 만성피로라고도 한다. 마음이 조급했다. 이렇게 허망한 날을 살면 안된다며 늘 뒤쫓는 놈이 있었다. 날 재촉하는 그놈의 끝없는 욕망에 허덕이며 줄달음치고 쉴 겨를이 없이 또 뛰어야 했다.

어느새 인정할 수 없는 백발이 머리를 뒤덮는다.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며 세월이겠거니 싶다가도 받아들이기가 거북하다.

허상을 붙들고 죽을 것 같은 조급함으로, 절박함으로 쉼이 무엇인지, 믿음의 모양이 어떠한 것이지 알지도 못하고, 고민할 틈도 없이 넘어지기도 하고, 깨지기도 하고, 부딪혀 상처를 입고, 입히기도 하며 숨이 턱에 차 쓰러질 것 같은 형국으로 여기까지 한 걸음에 달려오고 보니 목사는 사라지고 아집과 누더기와 누더기 속에 감춘 상처뿐이니 어찌하겠는가. 여러 날을 칩거하며, 밤낮을 고민하며 ‘나는 목사인가’를 질문하며 혹독하게 심문(審問)한 후에 진술서를 쓰고 그곳에 허접한 서명을 했다.

나를 포기한다. 나의 나됨을 내려놓는다. 무엇인가 하겠다는 의지도 주님 앞에 불사르는 항복문서에 부러진 만년필로 서명을 한다.

갈등은 포기의 필수요소다. 독자 이삭을 포기했던 아브라함, 그러므로 하나님을 소유하지 않았던가. 무엇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그분 앞에서 나를 포기함으로 그분을 모실 수 있었지 않은가. 이스라엘의 구원자 모세는 자기가 시작한 이스라엘 구원여정을 느보산에서 멈추고 바통 터치하는 그의 내려놓음의 인생이 수축하여 의기소침한 내 혈관에 에너지가 되어 강력한 펌프질을 일으킨다.

포기할 줄도 알자. 멈출 줄 아는 지혜를 성경의 선각자들의 외침을 통해 자각한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멈추어 선다. 브레이크의 미학의 맛을 뒤늦게 맛보는 것이다.

포기를 위한 기도를 드린다. 성중의 모든 생물을 죽이고 불사르며 모든 것을 번제단의 제물처럼 올려드린 여리고성에서 옷가지와 금붙이를 숨긴 아간 같이 공회와 날들 앞에 누더기가 된 인생에 깊이 브레이크를 채우고 감히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신 주님의 기도를 긴 호흡으로 들이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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