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원인은 미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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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원인은 미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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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9.09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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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목사<서초교회>


이 세상에는 원인을 올바로 따지기 어려운 많은 고난과 불행이 있다. 생각지 못한 시간에 고난과 불행이 우리를 찾아온다. 올바로 성실하게 살았다고 해서 그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악한 사람들의 삶이 형통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시편의 많은 말씀들은 악인의 형통에 대하여 하나님께 질문하고 탄원하는 내용들이다. 그러니까 현실적인 고난과 축복에 대하여, 이것은 죄악의 결과이고 저것은 선행의 결과라고 판단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예수님께서 간단한 율법적 원칙 같은 말씀을 하실 때가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예수님께서는 율법적 원칙과는 다른 말씀을 하셨다. 죄악과 심판에 대한 말씀보다는 용서와 구원과 미래와 희망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목적을 위하여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죄악을 따져서 원인 규명하는 일에는 큰 관심이 없으셨다.

젊은 청년들이 군에 입대하면 몇 주일 동안 훈련을 받게 된다. 그렇게 훈련을 받은 후에 각자 자기 부대에 배치되는 것이다. 그런데 몇 주일 훈련 받고나서도 더 오랫동안 더 어려운 훈련을 받는 군인들이 있다. 공수부대나 UDT 같은 특수부대는 훨씬 더 오랫동안 더 고된 훈련을 받게 된다.

더 오랫동안 더 어려운 훈련을 받으며 고생하는 그 젊은이들이 다른 젊은이들보다 죄가 더 많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들의 과거에 어두움이 많고 죄가 더 많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더 건강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젊은이들이 특수부대에 선택을 받게 된다. 그리고 더 오랫동안 더 고된 훈련을 받고나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오랫동안 고된 고난을 당하는 이유는 과거와 죄악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앞으로 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들이 더 많은 고난을 받는 이유는 그들의 과거에 있는 게 아니라 그들의 미래에 있는 셈이다.

하나님의 종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당하는 고난과 시련에 대하여 율법주의자들과는 다른 해석을 한다. 신명기 8장 2절은 이렇게 전하고 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십년 동안 고난을 당하게 하신 것은, 오랫동안 고난과 불행을 당했던 원인은, 하나님께서 시험하사 가르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지 아닌지 그걸 시험하사 너를 가르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나님께서 고난과 시련을 허락하신 것이다.

그러니까 신명기 말씀은, 나의 죄악으로 인하여 고난과 불행이 찾아왔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고난과 불행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는 훈련을 받으라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고난과 불행이 찾아왔다면 그 원인은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있는 셈이다. 과거의 죄악과 잘못으로 인하여 고난과 불행이 찾아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나의 신앙과 미래를 위하여 오늘 나는 고난과 시련 중에 있다는 것이다.

고난과 불행은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라고 믿는 믿음만으로는 십자가를 지신 메시아를 알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선한 자에게 축복이 오고 악한 자에게 고난과 불행이 찾아온다는 단순한 원칙만 가지고는 십자가의 예수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리들 안에 어두움과 죄악들이 있었고 그로 인하여 우리는 많은 고통을 당하며 살아왔다. 한국의 개신교는 전반적으로 주저앉은 듯하다. 누군가 개혁을 외쳐도 기술적인 노하우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근원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뿌리로부터 새로워지기를 원한다면 서로를 바라보는 우리들끼리의 신앙과 시각부터 고쳐가자. 어려움 당하는 교회와 성도들을 바라볼 때 그들의 과거와 죄악을 지적하기 전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미래를 바라보자. 서로의 과거와 죄악보다는 서로의 미래를, 우리의 하나님을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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