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일치, 칼뱅,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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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일치, 칼뱅,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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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9.02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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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인목사<예장 통합 기획국장>


2009년은 두 가지 중요한 일을 기억하는 해였다. 그 하나는 종교개혁자인 쟝 칼뱅의 탄생 500주년을 기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교 장로회가 합동과 통합으로 갈라진지 50년이 되는 해라는 것이다. 개혁자 칼뱅의 탄생 500주년은 여러 가지 형태로 기념되었다.

16세기 칼뱅이 온몸과 마음을 드려 하나님께 영광, 오직 성경으로, 오직 믿음으로 라는 기치를 내걸고 카톨릭 교회를 개혁하는 일에 앞장섰던 일을 기억한다. 위의 세가지 구절로 요약하기에는 너무도 방대한 칼뱅의 신학이면서도, 또 한편 그 세가지 구절이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말할 수 없이 크다.

개혁교회의 전통은 하나님께 영광, 오직 성경, 오직 믿음으로 날마다 새롭게 개혁할 것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16세기의 칼뱅을 몹시(?) 그리워하며 그때 그대로를 재현하려는 기념의 형태가 있었는가 하면, 과연 칼뱅이라면 지금 여기서 무슨 말을, 어떤 목회를 할까에 대한 답을 찾는 현재와 미래 중심적인 기념의 형태가 있었다.

두 번째 기억해야할 것은 우리들의 아픈 분열의 역사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표면적으로는 세계 에큐메니칼 기구인 WCC의 회원권 문제를 가지고 교단이 분열했다는 사실이 특별히 앞으로 다가올 2013년 WCC 10차 총회를 한국의 부산에 유치하는데 성공한 이즈음에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분열 이후 통합과 합동이라는 나름대로의 굴곡들을 겪으며 성장해왔다. 그리고 근래에는 교단 통합의 가능성들이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긍정적으로 평가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통합의 움직임 뒤에는 2007년의 1907년 대 부흥운동 100주년 기념이라든지 칼뱅 탄생 500주년을 기념, 2008년의 제주선교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자주 함께 모여 드린 기도의 응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함께 드리는 예배가 이렇게 힘이 있고 아름다운데 안타깝게도 그 안에서 가슴 아파하고 알게 모르게 상처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있다. 교회 여성들이 그들이다.

대한예수교 장로회(통합)은 지난 2003년 여성안수를 법제화하고 남자나 여자나 각각 주신 소명대로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 되기를 힘써왔다. 여성들을 하나님의 사역에 부르신 뜻에 순종하며 응답하기를 바라는 기독교인 전체의 고백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여성안수의 문제를 시시비비하여 함께 주님의 만찬에 참여하기를 거부한다면… 50년전 생긴 분열의 상처가 덧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1509년에 태어나 1564년까지 짧았으나 치열한 일생을 살았던 종교개혁자, 교육자, 신학자인 칼뱅은 그 시대의 영향을 받았던 역사적 인물이다.

칼뱅은 탈 역사적인 존재일 수 없고, 그 시대의 문화 경제, 사회적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칼뱅을 회고하는 일부의 신학자와 목회자들은 마치 16세기의 문화, 사회, 경제적인 영향아래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칼뱅의 글이나 설교를 문자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의적인 해석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마치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조선시대의 문물을 그리워하여 모든 과학적인 학문적인 발전과 발달을 포기하겠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달라진다. 남성과 여성에게 요구하는 사회적인 기대치가 많이 다르다. 칼뱅은 공룡처럼 화석으로 우리에게 존재해서는 안된다. 칼뱅은 아직도 우리 가운데 살아 움직이며 그가 선포했던 복음의 의미, 믿음의 생동하는 힘, 그리고 우리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존재여야 한다.

칼뱅은 여성안수를 인정하지 않았는가? 혹은 인정했는가? 어리석은 질문에 지나지 않는다. 거대한 카톨릭 교회의 구조와 권위를 뛰어넘어 오직 하나님께 영광, 오직 성경, 오직 믿음을 외쳤던 칼뱅은 오늘 우리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고 이 시대, 이 사회가 요구하는 믿음의 모습을 찾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분열의 아픔을 또다시 덧들이지 말았으면 한다. 더더욱 칼뱅의 유산을 운운하면서 덧들이는 일을 정말 없었으면 한다. 현재를 사는 교회 여성들에게도 칼뱅은 개혁자로, 교육자로, 신학자로, 여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믿음의 형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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