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세번이나 비껴간 순간“하나님이 살리셨다” 감동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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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세번이나 비껴간 순간“하나님이 살리셨다” 감동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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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6.10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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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미도의 유일한 생존자 양동수장로
해마다 현충일이 되면 동작동 현충원을 찾는 사람이 있다. 비석에 이름만 남아있는 18명의 동료들을 떠올리며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현장에서 그를 세 번이나 살려주신 하나님의 뜻을 되새기기 위해서다.

실미도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양동수장로(아현성결교회). 그는 1971년 8월 23일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바로 눈앞에서 죽음이 세 번이나 빗겨간 기적의 날이니 말이다.

그래서 그는 건강을 되찾은 1972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1천2백여 회의 간증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증거 해왔다. 하지만 과거에는 ‘실미도’라는 실명을 얘기할 수조차 없었고, 단순히 군대생활 속에서의 극적인 생존에 관한 내용만을 전했었다. 그러다 영화 ‘실미도’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실체를 드러내자 양동수장로도 덩달아 실미도의 유일한 생존자로 그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이다.

“영화 ‘실미도’는 40%만 사실이라고 보면 됩니다. 사실 영화 촬영 때 강우석 감독과 식사 한번 한 것 밖에 인연이 없었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니 오히려 ‘실미도 생존 인물’로 인기가 높아져 복음 전하기가 훨씬 더 쉬워졌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 실미도 684부대 교육 기간요원

▲ 실미도 기간요원들(맨아랫줄 왼쪽에서 세번째가 양동수장로)
양장로는 1970년 2월 군에 입대하여 그 해 9월경에 실미도로 파견됐다. 실미도에서는 68년 4월 창설됐다고 해서 ‘684부대’로 불리던 특수부대가 훈련을 받고 있었다. 이들은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청와대로 침투하려 했던 북한 무장공비에 대한 보복 조치로 김일성을 암살하기 위해 만들어진 부대였다.

여기서 그는 태권도교관과 조교로 있으면서 휴게실 당번병으로 근무를 했다. 한달에 한번 육지로 나가 보급품을 수령하거나 사는 임무를 맡았었다.

“이들은 북한의 김일성을 암살하기 위해 대북 특공훈련을 받고 있었는데, 영화에 나왔던 것보다 10배나 강도 높은 훈련을 받고 있었지요. 실제로 훈련을 견디다 못해 죽은 훈련병도 있었으니까요. 또 영화에서는 이들이 배로 북한에 침투하려한 것으로 나왔지만, 사실은 열기구를 이용해 북한의 주석궁으로 직접 침투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3년 4개월 동안 형편없는 대우를 받으면서도 혹독한 훈련을 견뎌왔는데, 남북 대치국면이 완화되면서 북파 가능성이 약해지자 훈련병들이 집단행동을 하게 된 것이었다. 영화에서는 이들을 모두 제거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것으로 그려졌었는데, 그것은 아니라며 양장로는 “인두로 살을 지지는 장면, 훈련생 탈출 및 난동 사유, 마지막 훈련생들의 집단 자살 장면 등은 영화적 재미를 위해 각색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실미도에서는 내무반마다 총이 비치되어 있고, 실탄을 직접 다루는 경우가 많아 그동안 한번도 술을 마신 적이 없었다. 그런데 사건이 있던 그 전날에 처음으로 음주가 허가됐다. 어쩌면 음주가 부른 화였는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기간병들에게 특박을 나가도 좋다는 명령이 내려졌지요. 고참병들은 고생하는 신참병에게 특박의 기회를 먼저 주었고, 신참병이 귀대하면서 막소주를 많이 사왔던 겁니다. 문제는 거기에 있었어요. 교육대장이 고민을 하다가 음주를 허가했고 기간병과 훈련병들이 사고 나던 날 새벽 1시까지 술을 마셨으니까요.”

그날 새벽 6시에 실미도의 훈련병들이 일제히 기간병들을 공격했다. 훈련병들이 교육대장을 쇠뭉치로 머리를 쳐서 살해한 후, 실탄을 빼앗아 인정사정없이 쏘아대기 시작했다.

그때 양장로는 육지로 출장을 가기로 되어 있어서 외출복인 얼룩무늬의 군복을 갈아입고 있었다. 사실 평소에는 육군 작업복만 입고 있었는데, 얼룩무늬 군복은 눈에 너무 잘 띄는 복장이라 총을 맞기에 더없이 좋았다.

“휴게실에서 상의를 막 입었을 때 실탄 사격으로 유리창이 깨졌어요. 저는 그때 북한군이 쳐들어 왔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먼저 뛰어나가는 김하사의 뒤를 따라 재빨리 뛰어나가면서 내무반쪽을 바라보았는데, 훈련병 하나가 쪼그려 쏴 자세로 나를 보고 있는 것이었어요. 같은 동료인데 왜 그럴까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 순간 총알이 날아와 저를 쓰러뜨렸습니다.”

총알은 뒷목에서 쇄골 위로 관통했고, 양 장로는 그 자리에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깨어보니 목에서는 엄청난 피가 흐르고 있었고, 기간병들이 훈련병들에게 쫓기며 죽어가고 있었다. 사실 그때 양 장로는 총알이 자신의 목을 관통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냥 총알이 스쳐지나갔다고 생각했었다. 만약 그 사실을 알았다면 이미 죽을 목숨이라고 포기해 버렸을지 모른다.

# 훈련병의 눈을 가려주신 하나님

“실미도에서는 적군이 죽었을지라도 반드시 두세 번 확인사살을 하도록 훈련을 했었기 때문에 저는 그들이 다시 내게로 올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피를 쏟으며 무작정 바닷가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기간병들은 숨을 곳이 많은 무의도 방향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썰물 때가 되면 무의도로 걸어서 건널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장로 혼자만 바닷가로 가고 있었다. 숨을 곳 하나 없는 바다로 도망치리라곤 아무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쫓아오는 훈련병이 적었다. 이것 역시 그를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바다를 향해 가다가 총상이 고통스러워 바위에 기대어 있었는데, 멀리 훈련병이 그가 흘린 핏자국을 쫓아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점점 다가오는 훈련병을 보면서 ‘이제 죽었구나’ 싶으면서 갑자기 다니엘의 기적이 떠올랐다.

“그때 눈을 감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다니엘의 기적을 믿습니다. 사자의 입을 막고 풀무 불을 막아주신 하나님! 저 훈련병의 눈을 가려 주십시오. 그래야 제가 살 수 있습니다.’ 훈련병의 발소리는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고, 주변에는 내 몸을 가려줄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훈련병은 내 앞을 그냥 스쳐 지나갔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도우심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양장로는 바닷가로 가서 군화를 바위 밑에 숨겼다. 사건이 정리된 후에 양 장로는 수색대에게 부탁해서 그 군화를 가져오도록 했었다. 지금도 그것은 양장로 집에 보관되어 있는데, 마치 그 군화가 그날의 기적을 보여주는 듯하다.

썰물이 들어와 바닷물 속에 들어가게 되면 출혈이 더 심해질 거 같아 양장로는 다시 섬으로 올라와 숨을 곳을 찾았다.

하지만 나무 한그루 없던 실미도에 숨을 곳이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돌 4개를 이용해 2단으로 돌을 쌓아놓고 엎드려 있었다. 누가 봐도 쉽게 눈에 띄이는 곳이었으니 몸을 숨겼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이번에는 2명의 훈련병이 다가오는 것이었다.

“하나님, 이번에는 두 명입니다. 저들의 눈도 보이지 않게 해주세요. 평생을 전도사로 고생하시던 어머니를 보며 자랐기 때문에 주의 종이 되겠다고 서원을 하지는 못했지만, 살려만 주시면 평생을 주를 위해 살겠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들이 그냥 지나쳐 가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도우심 아니고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10시간쯤 거기에 엎드려 정신을 잃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훈련병들은 섬을 떠났는데, 상황을 알지 못했던 그는 바다로 뛰어들어 해군 쾌속정을 향해 헤엄쳐 갔다.

물에 들어가니 출혈은 더 심해졌고, 쾌속정에서는 그를 폭탄을 안은 훈련병으로 오해해 사격을 가할 뻔 했었다. 마지막 위기의 순간까지 하나님께서 모두 막아주셔서 그는 겨우 군병원으로 이송될 수 있었다.

10시간 동안 피를 얼마나 흘렸던지, 그는 무려 10kg이나 몸무게가 빠져서 당시 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당직군의관이 그가 죽은 것으로 알고 시체실로 보내라고 했겠는가.

“병원장이 말하기를 총알이 척추를 맞는 순간에 스핀을 먹어 실핏줄과 근육사이로 빠져나갔다면서 1, 2mm만 위아래로 맞았어도 즉사하거나 반신불수가 됐을 거라며 ‘자넨, 하나님이 살렸네’라고 하는 것이었어요. 그야말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기적이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그가 실미도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있던 그 순간에 그의 어머니는 온몸이 피투성이 되어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는 양장로의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 즉시로 어머니는 교회로 달려갔고, 어떤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아들을 살려달라고 눈물의 기도를 하였다. 그 간절한 어머니의 기도 덕분에 양장로는 1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세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새 생명을 덤으로 얻게 된 것이다.

그 후로 36년째 선생님으로 교직에 몸담고 있는 양장로는 시간이 될 때마다 전국을 다니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간증하고 있다. ‘자넨, 하나님이 살렸네’라는 간증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간증을 할 때마다 양장로는 그날의 악몽 같은 기억이 떠올라 몸서리쳐지는 고통에 몸을 떨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간증을 멈출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그를 세 번씩이나 살려주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객원기자=김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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