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의 작은 열매
상태바
부활절의 작은 열매
  • 운영자
  • 승인 2009.04.08 1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찬환목사<백석대학교 교수>


긴 사순절을 보내고 생명의 절기 부활 절기를 맞이했다. 필자는 이미 십자가와 부활에 대하여 논한바 있다. 기독교의 십자가와 부활은 동전의 양면과 같으며 새의 양 날개와도 같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다. 생명의 계절, 꽃이 만발하는 부활의 절기는 확실히 축제의 계절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참 가치관은 양보다 질이 우선이다. 눈가림한 포장보다 내용물이다. 요사이 포장예수 장롱예수라는 말이 많이 쓰인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의 권세가 없어 세상을 구원하지 못하고 있다. 앉은뱅이와 같이 도리어 구걸하는 신세가 되어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어 있다. 종교선호도의 끝자리 숫자로 수모를 받고 있다. 오늘도 많은 영역에서 봉사를 하며 사회에 절대적인 기여를 하고 있으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예수의 이름으로 하지 않고 자기 이름이나 자기 집단의 이름으로 하기 때문이다. 자기 욕심으로 하는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다.

대형교회로 철새같이 몰려간 수평이동으로 상처받은 영세 교회를 얼마나 보듬어주고 있는지, 이번 부활절에는 한번 짚고 넘어갔으면 한다. 국가시책에 따른 작은교회의 건물 철거, 불안한 성도들의 교회이탈 등 이런 현실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부활의 작은 열매다.

선민 이스라엘의 3대 죄악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죄,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섬긴 죄,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를 멸시한 죄다.

구약에는 미스바의 기도 성회, 엘리야의 갈멜산 성회, 수문 앞 광장의 말씀 성회,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라는 기도 성회, 그리고 신약에 와서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성령강림절, 바울의 회심 등에서 보듯 하나님을 만난 자의 영적고민은 말로 끝나서는 않되며 소중한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한 경건의 능력이 세상을 변화시켜나가는 현장이 되어야 한다.

대 로마제국이 처형의 형틀 십자가를 오히려 믿게 된 것은 이러한 변화의 새 질서였다.

부활의 작은 열매는 실천이다. 말이 친절해지고 부드러워지며 관심 있는 눈빛과 웃는 얼굴로 호감을 주며 나눠주고 섬기려는 적극적인 열정이 보일 때 서서히 바뀌어 나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한 베드로도, 배반한 가룟 유다도 끝까지 사랑하셨다.

우리 하나님은 권위의 아버지 하나님, 자비하신 어머니 하나님, 형님 같은 하나님, 우리의 친구 되신 하나님이시다. 세상은 다 버릴지라도 그 분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런 부활절의 작은 열매를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