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빗나간 자식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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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빗나간 자식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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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5.0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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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금목사<강남교회>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극장가에는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영화가 풍성하다. 특히 아버지의 사랑을 그리는 영화들이 눈에 띄는 것은 사회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많은 관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고  한다. 굳이 가정의 달이 아니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부모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가족의 행복을 ‘자녀의 교육’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교육이라는 것이 엄밀하게 말하면, 바른 인간이 되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사회 경제적으로 성공하는 수단으로서의 ‘학벌’을 의미한다. 실제로 많은 부모들은 자식이 일류대학을 나와서 사회적으로 성공했을 때, 이것을 가족의 행복, 성공이라 여기고 이를 위해 얼마든지 자기를 희생시킬 각오를 하고 있는듯하다. 자녀에게 고액 과외를 받게 하기 위해 중산층에 속하는 엄마들이 파출부까지도 서슴지 않는다는 뉴스는 가족의 의미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적어도 우리나라 부모들이 자녀교육에 대해서만큼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미국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을 접하면서 ‘모든 영광’을 부모들의 교육열에 돌리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과연 자녀를 명문 대학에 보내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위치에 올려 놓는 것이 자녀 교육의 목표가 될 수 있을까? 가족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갖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참에, 이번에는 소위 ‘재벌 아버지의 보복테러’ 사건이 일어났다. 우리 나라의 유수한 재벌 총수의 아들이 미국 예일 대학에 다니다가 일시 귀국했다. 고급 술집에서 종업원과 싸워 얼굴에 상처가 조금 났는데, 재벌총수인 아버지가 자기 회사 직원들과 협력 철거업체의 직원들을 데리고 가서 술집 사장으로부터 직원들에 이르기까지 무차별적인 폭행을 가했다는 것이다.


옛날 부모님들은 이렇게 하지 않았다. 자식이 친구들에게 맞고 집에 들어와도 부모들은 그 친구를 나무라지 않고, 자기 자식을 훈계하였다. 하물며 선생님에게 꾸지람을 받거나 체벌을 받아도 못난 자식을 일깨워주신 선생님께 고마움을 표하고, 자식을 잘못 가르쳤다고 하면서 자기 자신을 탓했다. 그렇게 옛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화해와 용서, 인내를 가르쳤고, 바르고 큰 사람으로 키우고자 하였다. 그런데 어찌하여 소위 좀 배웠다고 하는 요즘 젊은 부모 세대들이, 옛날의 가난하고 못 배운 부모님 세대만 못한지 이해할 수 없다. 세상의 지식과 기술은 많이 습득하였으나, 지혜가 부족한 이 시대의 부모들은 이제라도 늙으신 부모님들에게서 참다운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할 것이다.


미래 학자인 앨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 “부의 미래”에서, 21세기에는 주식이나 토지나 노동력의 가치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즉, 물질의 시대를 넘어 영성의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자녀에게 좀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고 가르치기 보다는,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을 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사랑’과 ‘용서’와 ‘화해’를 배우기 위해 낮은 곳으로 내려가라고 가르쳐야 할 것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참다운 자녀사랑의 길이요, 더 나아가 우리 민족을 살릴 수 있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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