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게임 도박, 비판만 능사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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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게임 도박, 비판만 능사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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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3.1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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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수교수<평택대>


도박의 부도덕성 논란은 도박 자체와 함께 하는 매우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바다 이야기”로 대표되는 사행성 게임장의 불법적 행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고, 그에 대하여 국회는 “사행산업통합 감독위원회 법안”을 의결하여 “사행산업의 과도한 사행행위를 통합적으로 감독하고 사행산업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사행산업을 건전한 여가 및 레저산업으로 발전시키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게 되었다.


국회의원들이 제안하는 사행산업 근절을 위한 관련법 개정안은, 비록 그 표현은 사행산업 ‘근절’이지만, 그 실질적 내용은 사행 산업의 ‘지나친’ 사행성을 ‘근절’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교회나 교인들은 타락한 인간 본성은 적게 고려하고, 주로 원리적인 경건한 삶에 치중하는 성숙한 신앙인의 관점에서 도박 자체를 죄로 규정하고, 사행산업의 존재 자체를 반대하거나 또는 사행산업의 합법화를 근절하자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사행심은 요행을 바라는 것을 넘어, 그것을 ‘노리는’ 것으로서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요행을 바라는 정도상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요행을 바란다는 측면에서 보면, 요행을 바라는 것과 그것을 노리는 것은 별로 의미가 있는 차이라고 볼 수 없다. 그 동기가 ‘자신이 가진 것 이상을 바란다’고 하는 면에 있어서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행심을 죄라고 규정하는 것은, ‘인간은 누구나 죄인’이라고 규정하는 것과 같다. 인간의 죄인됨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기독교의 기본교리이지만, 그렇게 규정한다 하여 죄인이 자연히 죄를 멀리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여전히 죄를 짓는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본성상 죄인들이 죄를 짓지 않도록 할 수 있게 규제하는 법을 만들고 그것을 잘 시행, 관리하는 것이다. 도박을 하는 동기가 “현재 자신이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자 소원함”이라면, 그것을 죄로 규정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그 본성적인 욕망을 잘 제어할 수 있는지를 연구해야 한다.


교회가 사회를 비판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로 신중해야 한다. 교회 성장은 국가 경제의 성장이나 부동산 불패 신화와 결코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 성장은 교인들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성급히 말하기 전에, 그것이 우리나라 전체의 발전 패턴과 비교하여 어떤 유사점과 상이점이 있는지, 과연 더 양심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도박산업의 특징은 ‘제살 깎아먹기’ 혹은 ‘제로 섬’(zero-sum)이다.


한 쪽이 상금을 얻으면, 다른 쪽에는 반드시 그 이상 잃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사실은 상금보다 훨씬 많은 돈이 상금 및 시스템 유지비용, 그리고 정부의 세금 수입까지 부담하기 위해 징수된다. 한쪽에서 얻고, 다른 쪽에서 잃으면 그 합은 제로가 되지만, 사실상 도박은 도박자들이 언제나 잃는 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제로섬이 아니라 극심한 마이너스 게임이다.


오늘날 도시 대형교회의 성장 패턴은 도박산업과 유사하다. 도시의 대형 교회들의 경우, 어떤 통계는 아직 없지만, 여러 지방 교회들이나 도시의 소교회들에서 나온 교인들이 큰 교회로 몰려간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의 부작용은 도박의 제로섬 부작용과 같다. 생산적인 가치가 창출되지는 않고 공동체의 재산을 재배열할 뿐이고, 단지 재배열로 끝나거나 생산적인 산업영역에 재투자 되는 것이 아니라, 비생산적인 도박사업자와 정부만 수익을 얻게 된다. 많은 가난한 도박자들의 돈이 부자들이나 중산층의 복지비로 대납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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