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영 결산] 물량주의 경계-교회갱신 요구 `뚜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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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진영 결산] 물량주의 경계-교회갱신 요구 `뚜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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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12.16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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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는 지난 1년 교회연합과 갱신에 대한 논의를 지속했다.
 


2005년도 한국교회를 돌아보면서 발견한 뚜렷한 사실은 교회갱신에 대한 분명한 요구였다. 평신도에서 목회자와 신학자,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논객들이 상이한 상황과 관점에서 제기한 요구가 “한국교회의 갱신”이라는 일치된 요구를 향하여 절묘한 화음을 형성했다.


특히 그 요구의 핵심이 예배나 예전 혹은 전도의 방법론적인 갱신과 같은 어떤 지엽적인 부분이 아니라 교회의 삶 그 자체에 놓여있었다는 점이다.

교회의 삶의 태도가 궁극적인 관심사였다. 표현의 상이성과 상황 인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범람하는 신자유주의 물결에 교회 역시 편승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질문이 집중적으로 제기되었다. 교묘한 형태로 형성된 자국중심의 경제구조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경제구조의 이기주의가 물질숭배주의, 성장주의, 개교회중심주의와 같은 교회적 이기주의로 나타났고 교회는 이에 대하여 무력하게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기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라는 명령의 공동체적인 담지자가 교회인 것이 분명하다면, 이 세대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드러낼 수 있는, 그리고 드러내야 하는 공동체가 교회임을 부인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 물결 앞에서 분열되고 내홍을 겪는 이 사회를 향하여 교회가 선보일 삶의 태도가 무엇일까? 공동체성이 무너져 내리는 이 세대에 무엇이 교회를 교회되게 할 수 있는 것인가?

두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섬겨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다. 물량주의적 개교회성장주의는 하나님 나라의 관점이 회복될 때 극복될 수 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진입로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한국교회에 성령을 부어주신 하나님의 관심사는 하나님 나라의 진흥에 있다(행 1:6-8). 따라서 한국교회는 개교회의 성장이 아니라 이 땅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이름이 보다 아름답고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수만 명의 성도를 거느린 특정교회를 중심하여 이 땅에 스며드는 것만이 아니라, 주의 이름으로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서도 현존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고 성례전이 합당하게 시행되는 곳이면 어디서나 하나님 나라가 현존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현존이 있는 곳에서 경배를 받으실 뿐 크고 작음에 대하여 그리 큰 관심을 기울이시지 않는다. 큰 것만이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작은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더욱 찬란하게 빛날 수 있다. 큰 것만을 고집하는 것은 어쩌면 그것은 하나님의 열심을 넘어선 목회자의 지나친 열심일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관심사는 사도적 전통에 천착하여 서로 섬기며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을 희망하신다.

또한 교회는 교회의 본질이라는 알을 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교회의 본질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성도의 교통”이다. “교통” 혹은 “교제”는 세 가지 요소를 충족시켜야 한다. 첫째, 그리스도를 공동으로 소유하는 교제, 둘째, 성도 상호간의 교제, 셋째, 성도 상호간의 물질적인 교제가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요소가 충족되어야 진정한 성도의 교통이 형성된다. 건강한 교회는 그리스도와 공동으로 교제할 수 있는 정도여야 한다. 즉 한 장소에서 한 설교자를 통하여 선포되는 한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하며, 우리 인격체로서 성도 상호간의 인격적이고 공동체적인 사귐이 가능한 정도여야 하며, 성도 상호간의 삶을 투명하게 이해하며 실질적인 도움과 삶의 세움이 가능한 정도여야 한다. 교회는 이것 이상을 추구하기보다는 교회적 나눔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일에 자기내어줌의 결단이 요청된다. 개교회의 성장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진흥을 위한 사랑의 수고가 요청된다. 샘은 퍼낼수록 맑아진다는 영적인 풍성의 원리를 실천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 나라를 향한 방향성을 회복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본질로서 성도의 교통을 회복할 때 교회는 지역사회에서 투명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지역사회에서 신뢰할 수 있는 곳으로 교회가 인식됨으로써 원심적이고 구심적인 교회적 섬김의 토대가 동시에 마련될 것이다.

안을 향하여 정체성을 확립할 뿐만 아니라 밖을 향하여 열린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세상 속에서 세상의 매력을 불러일으키는 계시적 실존이 되는 길이다. 계시 그 자체이신 그리스도의 현존이 죄인들을 향하여 무한한 죄의식과 무한한 매력을 일으켰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담지자인 교회는 이 땅에서 계시적 실존이다. 교회는 이 시대의 죄상을 적나라하게 그 삶을 통하여 보여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매력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자장(krachtveld)을 형성해내어 하나님 나라가 진흥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교회가 공동체성을 회복하는데서만 가능하다.

교회여! 물량주의, 개교회성장주의에서 떠나 소외된 이웃을 돌보라는 한 평신도의 외침은 교회의 존재의 이유와 본질의 회복을 향하여 회개하라는 외침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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