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선교를 향해 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김용애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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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선교를 향해 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김용애선교사
  • 송영락
  • 승인 2005.01.04 1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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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푸드뱅크 사역, 매주 1천여 명에게 음식제공

 



25년간 교직생활 떠나 14년 동안 흑인복음화에 앞장


검은 대륙 아프리카 남단 남아프리카공화국서 먹이기 입히면서 천국에 대한 소망을 전하는 사람의 모습은 어떻게 생겼을까. 이런 물음의 해답은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얼굴에 있었다.

‘코리아 마더 테레사’로 불리는 김용애선교사(여)는 14년 동안 변함없는 마음으로 미래를 잃어버리고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는 흑인들에게 새로운 삶의 비전을 심어주고 천국의 소망을 전파하는데 바빠서 그런지 나이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최고의 직업으로 꼽히는 중학교 교사로 25년 간 후학을 양성했던 김선교사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훌쩍 한국 땅을 떠났다. 혹시나 사역 도중에 후회되어 중도에 포기할까봐 한국에 종이 한 장 남기지 않은 채.


 

“14년 전 하나님이 이름도 생소한 아프리카로 떠나도록 말씀하셨을 때 너무나 기가 막혔습니다. 현재 남부럽지 않은 지성인으로 주의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신앙인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왜 저에게 이런 것을 요구하느냐고 하나님께 따졌습니다. 이러저런 이유와 핑계를 대면서 6개월 동안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요구가 한결같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순종했죠.”

어렵게 순종하여 아프리카에 도착한 김선교사를 기다린 것은 깨끗하고 쉬운 선교가 아니었다. 고등학교 채플교사가 되어 흑인학생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계획했던 것처럼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대신에 낮아지려는 하나님의 명령뿐이었다. 김선교사는 거리전도를 시작했다. 낮선 동양인의 전도는 쉽게 흑인들의 마음을 녹이지 못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달랐다. 이 훈련을 통해 하나님은 김선교사에게 당초 계획했던 사역의 길을 열어 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과한 이후 김선교사는 흑인타운 5개의 중, 고등학교에서 말씀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문화와 가치관이 다른 흑인학생들에게 성경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쉽지 않은 사역이었다.

“흑인정부가 모슬림에 도움을 많이 받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선교를 감정적으로 거부합니다. 특히 흑인정부는 국민들을 통합하기 위해 노골적으로 토속신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과거 백인정부시절에 가졌던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은 무릎으로 가르치는 자를 외면 하지 않았습니다. 반대하고 거부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줬습니다. 9년째 일주일에 한번씩 채플을 인도하면서 전도강의를 하고 있는데 스케줄 관리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김선교사의 사역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매일 백만 볼트 배터리로 충전되듯이 상상을 초월한 역동적인사역을 펼치고 있다. 김선교사를 만나고 싶으면 흑인타운 재판소에 가야한다. 김선교는 매일 이곳에서 쪽복음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김선교사를 모르면 간첩이다. 김선교사 매일 1~2백에게 신앙상담과 기도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 이런저런 세상적인 사정을 갖고 재판을 기다리는 사람뿐만 아니라 판사와 검사, 변호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무직원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이런 헌신이 알려지면서 재판소의 수석 재판관으로부터 “당신은 이 건물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이라고 들을 정도다.

“복도에서 로비에서 전도할 때 성령님의 역사를 체험합니다. 재판받으러 온 사람들과 함께  기도했는데 병의 완치됐다거나 사건이 의외로 잘 해결됐다는 말을 듣곤 합니다.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순종하니까 성령이 크게 역사하심을 체험합니다. 단 한번도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방해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김선교사가 ‘코리아 마더 테레사’로 불리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지금 아프리카의 흑인들은 맨땅에 대충 양철로 만든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그나마 다행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한 끼의 식사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을 먹이고 싶었던 것이 저의 꿈이었습니다.”


현재 전국 체인망을 갖춘 대형 판매점인 ‘Pick Pay`이란 수퍼마켓은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야채와 과일 기부하고 있고, ‘Fruit and Vegitable’이라는 청과물마켓은 수요일과 금요일 가난한 이웃을 위해 식품을 내 놓고 있다. 또 ‘Blue Ribbon’이라는 빵공장은 매일 40봉지의 식빵을 제공하여 굶주린 흑인의 배를 채워주고 있다. 이렇게 모아진 각종 야채와 빵은 5개의 교회와 2개의 고등학교에서 운영하는 ‘Soup Kichen’에 제공하여 허기진 사람들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다. 이를 통해 일주일 1천여 명의 사람들이 굶주린 배를 채우고 있다. 또 일주일에 2번씩 빈민마을을 순회하며 빵과 야채를 나눠주고 있다.

덤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말하는 김선교사는 겸손하게 노동자가 되어 죽도록 충성할 수 있는 후배 선교사들을 만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7개 교회를 개척하여 조건 없이 현지인들에게 나눠주면서도 단 한번도 사람들에게 후원을 요청한 일이 없다는 사실을 신앙간증이라고 말하는 김선교사는 아프리카에서 두레마을과 같은 신앙공동체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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