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속 인물 : 송정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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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속 인물 : 송정근목사
  • 승인 2004.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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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5년 사역기간 교회 7개처 개척, 유치원 및 학교 7개 설립

1920년대는 부흥하는 교회를 돌볼 전문사역자가 부족한 때였다. 이것은 소수의 사역자들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복음의 속도가 얼마나 빨랐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따라서 이제 갓 30세를 넘은 송정근은 복음을 전할 상당한 가치를 가진 인물로 성장하게 됐다. 그리하여 1930년에는 원산지방 엡윗청년 협회회장으로 지방 각 교회 청년운동을 지도하기에 이르렀고, 조선기독교절제회 원산지방 담당위원으로 연1회씩 오류리 거록리 포항리 석상리 등 15개 지역교회를 돌며 금주 금연에 대해 강연하며 종교사업을 지도해야 했다. 동시에 그는 원산지방 종교교육협회장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남감리교가 운영하던 원산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 이사로 선출됐으며 원산성경학원 강사로 초빙돼 교단사역도 맡았다고 전해진다.

1917년 숭실중학교를 졸업하고 1920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한 그의 나이는 불과 25세. 30세가 되지 전까지 송정근은 장로회 조사, 김천구역장, 전도사, 토산구역장 등을 역임하는 등 실제 사역에 열심을 다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전문사역자배출이 과거보다 훨씬 활발해진 현재, 복음의 영향력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는 교계의 우려는 어쩌면 당연하다. 배움과 사역이 동시에 이루어졌던 예전의 전도현장의 생동감이 갈수록 줄어든 게 원인일 게다. 청년 송정근은 이렇게 신학교에서 배운 것을 실제 사역에 그대로 적용하며 복음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곤 했을 것이다. 복음이전의 무질서한 세속질서를 복음의 질서로 바꾸어 놓는 강력한 힘을 말이다.

1935년 4월7일 고성읍교회에서 열린 송정근목사 성역 15주년 기념식에서 보고된 그의 업적을 보면, 배움과 사역을 동시에 추진했던 그의 성실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나이 40세였을 때이다.

당시 보고된 기록에 따르면, 신설교회 7개처 개척, 신축 예배당 9개처, 유치원과 학교설립 7개교 등이다. 40세의 나이라고는 하지만 공식적으로 사역을 시작한 지 불과 15년만에 이룩한 성과라고 한다면 교통수단이 변변찮았던 당시의 상황에서 송정근목사의 사역은 가히 사도 바울과도 비교될 만하다고 하겠다.

그는 교단과 강단을 넘어 교계 출판사업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1935년부터 맡게 된 예수교서회(현재의 대한기독교서회)의 이사로 역할을 감당한 것이 그것이다. 장로교에서 세례받은 그는 감리교로 옮겨 감리사와 연회실행위원으로 또 총회 총회대로서 활약하며, 조용히 하지만 도전적으로 한국교회를 움직이는 영향력 있는 자리를 다지고 있었다.

윤영호기자(yyho@uc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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