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첫째 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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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첫째 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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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2.31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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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 맡은 자의 각오 / 고린도전서 4:1~5 / 찬송: 212장

바울 사도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자신을 위하여 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사는 자가 되라고 당부하십니다.

그러면, 맡은 자란 무엇을 뜻합니까? 그리스도께서 주신 사명을 맡은 자를 뜻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헌신토록 “그리스도의 일군”되게 하셨습니다. 이는 우리의 사명이요, 삶의 목적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비밀’이란 천국의 비밀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무엇입니까?

죽도록 충성하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죽기까지 충성하는 사역의 지속성을 강조했습니다 (계 2:10). 어떤 사람은 일을 맡으면 처음에는 충성하는데 얼마 못가서 그만 불충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한다고 했습니다. (마25:21; 눅16:10).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교회의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일을 맡았다고 업신여기고 소홀히 한 적은 없습니까? 큰 일만 하려고 덤비지는 않습니까? 작은 일도 못하면서 큰 일을 맡으면 자신도 망치고 일도 망칩니다. 이제 작은 일부터 잘해 보십시다. 그러면, 큰 일도 맡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들로서 죽도록 충성하여 마지막 날 칭찬받는 성도들이 되게 하소서. 

임요한 목사 / 인천한영교회

 

화요일 / 울림 있는 인생 / 빌립보서 3:10~11 / 찬송: 160장

천상의 바이올린으로 평가받는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수십억을 호가하는 세계적인 명품악기로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명품 바이올린의 재료로 삼는 나무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은 ‘전나무’입니다. 홍수가 나서 뿌리가 반쯤 드러난 ‘전나무’는 생명의 위태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 순간, 극한 불안 속에서 그 나무는 생명을 지키기 위해 저항의 꽃을 피웁니다. 이처럼 ‘죽음의 불안’을 느낄 때, 죽음에 맞서서, 꽃을 피워내는 것을 가리켜 ‘앙스트 블뤼테’라고 합니다. 

‘불안’이라는 뜻의 ‘앙스트’와 ‘개화’라는 뜻의 ‘블뤼테’가 합성된 ‘앙스트 블뤼테’는 일명 ‘불안의 꽃’으로서, 죽을 것 같은 불안 속에서 이를 극복하고 ‘꽃’을 활짝 피워낸다는 생물학적 용어입니다. 바로 이 ‘앙스트 블뤼테’의 꽃을 피우는 나무를 재료로 해서 만들어낸 악기가 천하제일의 울림을 주는 명품 악기가 된 것입니다. 

‘앙스트 블뤼테!’. 십자가 고난을 겪으시며 죽음을 경험하나, 죽음을 극복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이야말로 온 인류를 감동시키는 ‘울림’있는 명품인생이십니다. 영광의 찬송으로 부름 받은 그리스도인도 감동적 ‘울림’이 있는 명품인생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가슴으로 우리도 죽음의 불안을 느끼는 절정에서 화려하고 풍성한 부활의 꽃을 피워냅시다. ‘앙스트 블뤼테’를 꽃피우는 우리, ‘울림’ 있는 부활인생으로 살아갑시다.

•오늘의 기도
부활의 꽃피우는 울림있는 인생되게 하소서.

장현승 목사 / 과천소망교회 

 

수요일 /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인생 / 고린도후서 9:8 / 찬송: 403장

인간이 살아가는 곳에는 법이 존재합니다. 법이 없으면 무법천지가 되어 혼란 속에 어려움을 당할 것입니다. 세월이 가면 갈수록 법이 더 엄격해 지고 있지만 법적인 투쟁이 끊이지 않는 것도 지금의 현실입니다. 

2019년도를 뒤돌아보면 이 모양 저 모양으로 혼란스럽고 분쟁이 많았던 시간을 보냈습니다.  법이 강화가 되면 질서가 잡히고 살기 좋은 나라가 되어야 당연한 이치인데 반대로 법적인 다툼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율법이 있으면 인간의 삶속에 평안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인간은 법으로만 못사는 존재인가 봅니다. 

이러한 때에 믿음의 백성들의 신앙의 자세가 어떠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은혜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신앙인의 자세라고 봅니다. 율법으로는 완전해 지는 인간이 없으므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로 온전해 지는 것입니다. 인간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쉽게 넘어지고 실망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똑같이 잘못을 해도 누구에게는 ‘그럴 줄 알았어’로 대하고 누구에게는 ‘그럴 수도 있지’로 대하는 것을 봅니다. 이것을 보면 법의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인간관계의 문제임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만 좋으면 된다’라고 하는 생각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2020년도에는 더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주철순 목사 창일교회

 

목요일 /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시편 23:1~6 / 찬송: 570장

오늘 본문은 다윗이 자기가 살아온 일생을 뒤돌아보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고백하고 있는 참으로 아름다운 시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 주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게 되는 이 시간에 너무나 귀한 말씀이라고 여겨집니다. 

오늘 다윗이 우리들에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한 것처럼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길 소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고백이 있으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세워져야 합니다. 어떤 목자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 심지어는 살고 죽는 것도 목자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 평생 선한 목자이셔서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 주님은 어떤 분이신지 오늘 본문에서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육신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목자입니다. 푸른 초장과 잔잔한 시내로 인도하시는 좋으신 목자가 되십니다.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목자입니다. 죄로 죽은 영혼이 살아나는 것은 회개입니다. 다윗은 한 때 큰 죄를 짓고 죄 가운데 있을 때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서 자기의 죄를 깨닫게 하심으로 그 죽었던 영혼이 소생했던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디든지 함께하시는 목자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승리하게 하시는 목자입니다. 주님은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신다고 했습니다.’

•오늘의 기도
선한목자가 되어주신 주님, 올해도 새해에도 영원히 나의 목자가 되어 주옵소서 아멘.

문강원 목사 원천교회 

 

금요일 /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찾으라/  아모스 5:4~6 / 찬송: 383장

마음에도 방향이 중요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느냐가, 우리 삶을 전혀 다르게 만들 수 있습니다. 문제의 책임을 내 삶이 아니라, 다른 것에서 찾으려는 태도는 교만입니다. 믿음의 삶은 심은대로 거두고, 뿌린대로 결실하는 축복의 원리를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 내 믿음이 부실한 이유는, 내 삶에서 열정과 감격이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세상 환경이잘못되었기 때문에, 내 믿음이 부실해졌다고 말한다면 위선입니다. 

믿음의 삶은 내 스스로 하나님 앞에 서고, 하나님을 마주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의 삶은 무엇보다 방향을 잘 정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에 맞추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풍요로움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과 친밀하다고 자신할 수 없습니다. 아무런 문제를 만나지 않는다고, 내 믿음이 괜찮다고 자랑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과거 어느 시점에 충성스러웠던 믿음의 모습으로, 오늘 여러분의 삶을 보장할 수 있다고 착각하면 안됩니다. 믿음의 삶은 현재진행형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구원은 분명 다시 빼앗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 삶에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구원의 감격과 은혜는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나태하게 안일하게 게으름으로, 우리 시간을 보낼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 삶에서도 분명한 믿음의 근거를 찾고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모든 상황에서 주님을 인정하고 감사하며 순종하는 믿음을 지키게 하옵소서.

 

유용원 목사 한승교회 

토요일 / 고난의 원인을 알면 끝이 보인다 / 열왕기상 18:16~18 / 찬송: 375장

라디오 전파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면 전파를 통해서 소리가 나옵니다. 우리가 못 듣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에 주파수를 맞출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에 가뭄이 임한 지 3년이 지난 후 엘리야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아합 왕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아합은 엘리야를 향해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라고 말을 합니다.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다는 것은 가뭄을 말하는 것인데, 이 가뭄은 사실 아합 자신 때문 입니다. 

그런데 아합은 이 가뭄이 엘리야 때문이라고 분노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왜 가뭄을 내리셨습니까?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시기 위함이 아니고,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땅을 가물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뭄을 통해 악한 아합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돌이킬 기회를 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몰라도 이렇게 모를 수 있습니까? 이러니 문제가 해결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은혜의 성도는 고난과 시험 중에도 감사하며 말씀을 듣는 귀가 열려 있어야 합니다. 성도가 시련의 때,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고난과 시련을 겪을 때 시급한 일은 고난의 원인을 잘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로 늘 들을 귀가 열려있게 하옵소서.

이석원 목사 제자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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