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에 나타나는 예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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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에 나타나는 예배 (2)
  • 승인 2004.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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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예배

성전과 성전에서의 예배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는 ‘이중적’이었다. J. M. Nielen은 이것을 ‘예속’과 ‘자유’로 표현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성전 예배의 요소를 받아들여 이어 가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어떤 요소를 제한, 수정할 권한과 자유를 가셨다는 의미다.

예수님은 성전에 대해 지극히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계셨다. 예수님을 따르면 성전은 ‘하나님의 집’(눅 6:4), ‘내 아버지의 집’(요 2:16)이었다. 구약시대에 성전은 성전으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담당했고, 새 시대, 즉 자신을 통한 완성의 시대의 여명에도 그 영속적 사명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자신이 그곳에서 완성의 제물이 되는 것이 성전의 남아 있는 역할이었다.

성전을 ‘(만민의) 기도하는 집’(마 21:13과 병행구)이라고 부르신 것에도 이 긍정성이 어느 정도 묻어 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동시에 성전 예배의 한계도 알려준다. 예수님은 성전만을 기도의 장소로 지정하거나 성전에서만 기도하시지 않고 어디에서나 기도하셨기 때문이다. ‘성전보다 더 크신 이’(마 12:6)가 예수님이시라면 새로운 예배가 성전에서가 아니라 어디에서나 가능하게 된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구약적 예배, 즉 성전 예배의 중심은 장소성에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곳에 성전이 세워져 있었다. 성전의 기능에 한계를 설정하시고 이와 대조되는 ‘영적 예배’와 ‘진리의 예배’를 선포하셨다는 것은 이 성전과 관련된 모든 요소들을 한정하셨다는 의미가 된다. 즉 이 장소에서만 드리는 희생 제사, 유대인이라면 1년에 3번 절기 때마다 성전을 찾아야 하는 절기의 의미, 이 장소에서 거룩한 제사를 드리는 제사 직분의 역할도 이제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것이다.

대신 새로운 개념이 나타났다. 성전의 원 모습인 ‘예수님의 몸’이 나타난 것이다(2:19~22). 예수님은 영원한 제사장이 되사 자신의 몸을 영원한 제물로 삼아 하늘 성소로 들어가셨을 뿐 아니라(히 9:11~12), 자신이 직접 이 땅에서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계셨다(마 9:6과 병행 구절).

구약적 예배의 다른 주요 요소는 ‘율법’, ‘안식일’이었다. 예수님은 이 문제에도 명확한 선을 그으심으로 ‘예속’과 ‘자유’를 행사하셨다. 자신의 출현은 ‘율법과 선지자들의 완성’(마 5:17~20)을 위한 것이다. 그는 안식일의 주인이시다(마 12:8과 병행 구절).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씀은 구약적 예배와 관련된 모든 요소에 적용되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구약적 예배, 성전 예배에서 영속적으로 계속되는 요소는 과연 무엇일까? 구약적 성전 예배는 종말론적인 예수님의 사역을 근거로 하여 새롭게 탈바꿈하여야 한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며 자신의 백성을 축복하신 하나님은 이제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속사역을 실천하신다는, 보다 분명한 모습으로 이에 어울리는 예배를 요구하신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예배하는 사람들을 찾으신다’(요 4:23).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활동과 말씀에 근거하여 더 이상 희생 제사를 드리거나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교회가 예루살렘에만 존재했고 또 확정적으로 유대교로부터 분리되지 않았을 때 제자들은 성전을 주기적으로 찾기는 했지만 이는 희생 제사를 드리거나 성전 예배에 참여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행 3:1은 그들이 기도하기 위하여 성전을 찾았음을 명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그들은 복음을 전하는 장소로 성전을 사용했다.

바울 사도가 예루살렘에 가서 결례를 행하며 제사(혹 예물)를 드릴 때까지의 날짜에 관하여 말하는 부분이 행 21:26에 수록되어 있다. 보통의 유대인 경우라면 h` prosfora,는 틀림없이 제사에 쓸 제물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이미 복음에 들어왔고 예루살렘 교회의 결정을 알고 있는 이상(행 15장) 이것이 희생 제사에 쓸 제물을 의미하는 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더욱 본문은 바울이 제물/예물을 바친 것을 보도하는 문장이 아니고 결례의 기간이 끝나는 날에 있을 예정인 제물·예물에 대하여 보도하는 문장이어서 바울이 제사를 드렸다고 추측할 수 있는 단서가 되지 못한다. 그는 결례의 날이 다 차기도 전에 체포되어(27절) 그렇게 할 기회도 없었다. 또 이 문장만 가지고 바울이 희생 제사를 드릴 의도가 있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예수님에게서나 그의 제자들에게서 희생 제사를 드렸다는 흔적은 신약성경에 남아 있지 않다. 심지어 성만찬의 보도에도 유월절에 살해당한 양의 고기에 대한 얘기가 들어 있지 않다.

요약하면, ①예배의 특정 장소 및 건물 ②특정 시간 및 날 ③제사와 이와 관련된 제 의식 ④특정한 사람들의 역할 ⑤율법의 특수한 기능이 구약적 예배에서 모두 제거되었고, 찬양 받으실 하나님의 사역에 그리스도가 이루신 종말론적 구속 사역이 추가되었다. 정훈택교수 /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 신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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