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수용 찬반? 이제 ‘사회통합’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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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수용 찬반? 이제 ‘사회통합’ 고민할 때다”
  • 한현구 기자
  • 승인 2018.10.01 22:2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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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보는 예멘난민과 사회통합

난민에게 일자리 제공하는 서구사회…지역사회·난민 ‘win-win’

난민 환대는 ‘자선행위’ 이상의 의미…새로운 가능성 바라봐야

예멘 난민이 제주도에 입국한지 벌써 네 달가량 지났지만 아직도 여론은 찬반 논쟁에 머물러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난 15일 1년간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은 예멘 난민 23명 중 22명이 ‘육지로 가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난민 문제는 이미 우리 곁 현실로 다가왔다.

이 가운데 기독교계에서 “이제는 찬반 논쟁을 넘어 ‘사회통합’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눈길을 끈다. 서울 장한평에서 난민을 돕는 희망의마을센터 정연주 센터장은 지난 21일 열린 KWMA 글로벌위기포럼에서 “난민이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 KWMA 글로벌위기포럼에서 발제하는 정연주 센터장(왼쪽)과 모아드 사르끼 목사.

테러리스트? 만나보면 안다

여론은 난민을 향해 원색적인 비판을 퍼붓고 있다. 그들은 이슬람 국가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테러리스트, 혹은 성폭행범죄자라는 껍데기가 씌워진다. 난민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고 번듯한 옷을 입고 있다는 이유로 ‘가짜 난민’이라고 비판하는 무리들도 있다.

하지만 정연주 센터장은 한국사회가 아직 난민이 낯설다 보니 오해하는 점들이 많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난민의 모습은 처참하고 불쌍해야 한다고 믿는다. 열악한 텐트에 수용된 채 줄지어 식사를 기다리는 모습을 상상한다. 하지만 그들이 처한 상황이 떠날 수밖에 없을 만큼 열악했을 뿐 우리와 똑같이 행복을 바라는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변호했다.

이어 “난민수용을 반대하는 많은 시민들 중 실제 난민, 이주민과 만나서 소통하고 서로를 알기위한 노력을 한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의문”이라며 “만나보면 안다.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 대화한다면 그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이 더 나은 삶을 갈망하는 사람들일 뿐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테러를 우려하는 시선에 대한 반론도 이어졌다. 이날 함께 발제했던 사단법인 피난처 이호택 대표는 “테러리스트들은 난민으로 입국하지 않는다. 복잡한 절차와 심사를 거치는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며 “테러리스트들은 대부분 관광객으로 오거나 불법적인 루트를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또 “난민 문제는 오래 전부터 국제적 문제였고 우리나라도 5년 전인 2013년 이미 난민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관심이 없어 잘 몰랐던 것 뿐”이라며 “제주도 예멘 난민 유입을 통해 수면 위로 떠오른 이상 이제라도 제대로 된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의 일원이 되게 하라

예멘 난민 문제에 반대 여론이 들끓는 이유는 비단 테러와 범죄에 대한 공포 때문만은 아니다. 전혀 알지 못하는 낯선 사람들을 우리 세금으로 지원한다는 것에 대한 반감 또한 존재한다. 실제 포털사이트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우리 국민도 불쌍한 사람이 많은데 왜 엄한 외국인들을 돕느냐’는 식의 의견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정연주 센터장의 시선은 달랐다. 난민을 우리가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 그는 “단순구호만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난민들이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정착해 일을 하게 되면 세금을 지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금을 낸다”면서 “대다수 난민들도 일자리를 얻어 당당히 생활하는 것을 바라지 지원받고 사는 삶을 꿈꾸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보다 더 일찍 난민 문제를 맞닥뜨렸던 서구사회에선 더불어 사는 사회통합의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다. 난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제공했던 독일의 부퍼탈시(Wuppertal)가 좋은 예다.

부퍼탈시도 처음엔 난민들이 법적으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고 비좁은 과도기 주택에 내몰리면서 상당한 골칫거리로 낙인이 찍혔다. 난민 자녀들 역시 제한된 교육밖에 받지 못해 부모들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이 대물림돼야 했다.

상황은 2007년 독일 연방 정부의 망명자 수당 법이 변경되면서 달라졌다. 난민들이 사회복지 서비스를 받는 대신 충분한 임금을 받고 노동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이다. 이 정책에 적극적으로 부응한 부퍼탈시는 인력이 필요한 고용주와 난민을 연결해주며 직업훈련과 연수, 언어교육까지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는 난민들의 삶의 질은 물론 독일인들이 난민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바꿔 놓았다. 프로젝트를 통해 157건의 고용이 성사됐고 78건의 풀타임 직업이 주선됐다. 결국 난민들의 사회통합에 크게 이바지했을 뿐만 아니라 지방정부의 예산확보에도 크게 기여했다.

미국 볼티모어시도 적극적으로 난민과 이민자들을 수용하는 도시 중 하나다. 볼티모어 시장 스테파니 블레이크는 난민들을 환영하는 것이 ‘자선행위’ 이상의 행동이라고 표현했다. 미국에 온 난민들은 그들의 자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일할 것이고 그들의 경제활동이 도시에 활기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정연주 센터장은 유럽과 미국의 사회통합 사례들이 우리나라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면서 “파이 조각을 나누고 같이 살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난민을 일방적 구호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닌 새로운 가능성으로 인식하는 시선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소망의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국가에서도 사회통합을 추진한다. 시민들 중에도 사회통합을 원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기독교의 사회통합은 믿지 않는 이들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바깥에서 말하는 사회통합이 구호와 ‘win-win’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기독교는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이 통합의 이유이자 방법이 된다. 사회통합을 말하기 전, 먼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이 충만해야 한다.

정연주 센터장은 희망의마을센터를 운영하며 겪었던 경험 하나를 꺼냈다. 어떤 시리아 난민 한 사람이 갑자기 센터로 찾아와 기독교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장한평에 시리아 사람들이 대부분 불행하게 사는데 단 한 가정, 기독교인들만이 행복하게 살고 있었단다. 그래서 자신도 행복하고 싶어 기독교인이 되기로 했다고 찾아왔다는 것이다.

정 센터장은 “우리 안에 소망이 있어야 그들도 우리에게서 소망을 본다.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과의 교제가 소원해진다면 무슬림 난민이 됐든 무신론자가 됐든 누구도 우리 안에서 소망을 발견할 수 없다”면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소망이 충만한 것이 첫 번째고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두 번째다. 그래야 그들이 우리에게서 소망을 발견하고 예수님을 알아 간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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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상 2018-10-02 13:23:39
♥이재록 마귀 뉴스; 創造主(창조주)의 사랑과 公義(공의)의 攝理(섭리)를 따라 모든 國民을 착하고 바르고 아름답고 훌륭하게 敬天愛人(경천애인)의 雄志(웅지)로 嚴正(엄정)히 志向(지향)도록 啓導(계도)해야 하는 十字架道(십자가도)의 거룩한 聖職(성직)이-, 야바위 꾼보다 못되게, 돈에 貪慾(탐욕)을 품고-, 靈媒(영매)의 소리 綺語(기어)로 信徒들을 憑依(빙의)입혀 籠絡(농락)하면-, 개(犬)독교) 積弊(적폐)의 창피한 元兇

박희조 2018-10-11 12:56:18
난민수용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보도내용은 주로 찬성하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왜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하고 있는지 그 내용들도 함께 보도되어야 공정한 신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연합신문이 자타가 인정하는 권위있는 신문으로세워지기 위해서는 폭넓은 식견과 탄탄한 내용으로 채워져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