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찾는 모든 이에게 ‘하나님의 섭리’ 알게 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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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찾는 모든 이에게 ‘하나님의 섭리’ 알게 하고파”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8.04.28 12: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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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을 위해 주일 5부 열린 예배드리는 제주도 서귀포 갈보리교회
▲ 갈보리교회는 제주를 찾는 관광객과 여행자들에게 365일 24시간 열려있다.

365일 24시간 열린 공간... 예배와 새벽기도의 삶 강조
하나님께 순종한 제주목회 23년째, 매일이 기적의 시간

제주도에 가면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가 있다. 바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천제연 폭포가 있는 서귀포 중문관광단지. 관광객들이 오가는 그 길목에 검은 송이돌로 지은 교회가 우뚝 서있다. ‘예장 합동정통 제1호 수양관’이라는 간판과 함께 제주 원주민은 물론이고 지나가는 여행객 모두에게 문을 활짝 열어놓은 ‘갈보리교회’가 그 곳이다.

일주도로변에 서있는 교회는 제주도의 자연석인 검은 송이돌과 하얀 벽이 어우러져 있으며, 앞으로는 한라산을 바라보고 교회 뒤편으로는 귤 밭 넘어 서귀포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런 천혜의 자연 공간에 교회를 세우고 벌써 23년째 목회를 하고 있는 이찬 목사는 ‘오직 예수, 오직 예배, 오직 천국’이라는 기도제목으로 성도들을 반기고 있다.

# 관광객을 위한 주일 5부 예배

▲ 1995년 갈보리교회를 건축하고 제주 목회를 시작한 이찬 목사.

주 5일제가 시작되면서 주일성수의 개념이 희박해지고 많은 성도들이 주일을 포함하여 여행을 떠나고 있다. 문화적 상황이 달라지면 교회의 선교방식도 빠르게 변화해야 한다. 제주 갈보리교회는 이와 같은 변화에 가장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마을에선 멀고 관광지에서는 가까운 교회의 특성에 맞추어 주일예배를 5부로 나눠 드리고 있다. 새벽 6시 1부 예배를 시작으로 8시 2부, 9시 3부, 11시 4부, 1시에 다시 5부 예배를 드린다. 새벽기도회까지 포함하면 여섯 차례 예배가 드려진다.

기자가 취재를 위해 찾아간 날도 교회의 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마루로 된 1층 예배실과 2층 대예배실은 누구나 들어와서 기도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았고, 은은한 찬양이 마음을 위로해주고 있었다. 교회 입구에는 종이컵과 커피, 차 등이 준비되어 있어서 편히 담소를 나누고 쉬다 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더 놀라운 것은 교회를 찾는 이를 만나면 한 사람이건 두 사람이건 “시간이 되시면 지금 예배를 드리겠냐”고 물어본다. 이찬 목사는 “말씀을 전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한다. 그래서 관광객들이 교회를 찾아 올 때면, “함께 예배하자”고 권면한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말씀의 신비를 깨닫고 돌아가길 원하기 때문이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교회를 찾았다면 그는 ‘믿음의 실상’을 깨닫는 설교를 전한다. 성도의 믿음을 보시는 하나님이 반드시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 역시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음을 강조한다. 그래야만 사람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믿음으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이 목사의 지론이다.

# 낯선 제주로 부르신 하나님

이찬 목사는 제주 원주민이 아니다. 제주에서 이찬 목사는 여전히 ‘육지’ 사람이다. 경상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른 그는 부산국립수산대학교를 졸업하고 해군 장교로 복무했다. 1등 항해사 자격증을 가진 바다 사나이다. 일본 수산회사가 운영하는 어선에 한국인 최초 선장으로 2년간 바다를 누빈 적도 있다. 그런 그가 목사가 됐다. 사회생활을 한창하고 있던 중 아내의 강권으로 신학교에 들어간 것이 시작이었다.

“원래는 제주에서 양어장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집사람이 신학공부를 하면 서울을 보내준다고 하더라고. 이미 입학 서류도 내놨고, 나보고 가라는 거예요.”

아내가 신학교에 등록을 해놓았고, 이찬 목사는 그 손에 이끌려 신학생이 됐다. 방배동 백석신대원에서 M.Div. 과정을 밟았다. 회사를 다니며 야간과정에 들어갔지만 최순직 학장의 조직신학 강의를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주간으로 수업을 옮겨 신학공부에 매진했다. 그런데 공부가 쉽지만은 않았다. 특히 처음 보는 히브리어·헬라어 원어는 정말 힘들었다. 6개월만 해보고 안 되면 그만두자는 생각에 학교 근처에 방을 얻어 원어만 공부했다. 6개월 후 좋은 성적을 받고 자신감을 얻었다. 그렇게 학업의 고비를 넘기고 목사안수를 받게 됐다.

1992년 그의 첫 목회지는 서울 상계동이었다. 그러던 중 강경옥 사모가 하나님의 환상을 보았다. 제주 바닷가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졌고, 아름다운 교회의 형상까지 구체적을 보여주셨다. 이 목사는 곧장 제주로 내려와 땅을 구하고 2년에 걸쳐 성전을 지었다. 그동안 모은 자신의 재산과 약사로 일하는 사모의 헌신까지 사재를 탈탈 털어 성전건축에 쏟아 부었다.

“성도들과 함께 작정해서 지은 교회가 아니니까 중도금을 지불하는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이 있었어요. 6번으로 중도금을 나눠서 주기로 했는데 네 번째부터는 지급을 못했으니까요. 건축에 대해서는 지식도 전무한데 일꾼들을 어떻게 다루나 그것도 걱정이었죠.”

중도금 지불할 돈을 못 구하니 사모의 눈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담대히 교회를 건축할 것을 지시하셨다. 인부들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 기도에 ‘머릿돌을 먼저 새기고 눈높이로 말하라’는 응답을 주셨다. ‘건축도 마치지 않았는데 머릿돌을 세우라고?’ 이 목사는 의아했지만 순종했다. 아내에게는 “하나님께서 이제부터 다 하실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였다.

머릿돌은 즉각 제작했다. 준공날짜만 빼고 인부들 이름을 하나씩 새겨 대문 기둥에 세워놓았다. 이찬 목사가 직접 공사감독을 맡아 지하부터 지상공사까지 관리했다. 발판(아시바)를 밟고 높은 곳까지 올라가 인부들과 눈을 맞추고 공사를 점검했다. “100년 갈 예배당이고, 당신들의 이름이 영원히 남을 것”이라는 목사의 말에 인부들은 더욱 성심을 다했다. 머릿돌을 세우라고 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인부들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공사는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 기도와 말씀은 곧 기적의 시작

이찬 목사는 ‘예배’를 강조한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배워야 한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갈보리교회는 정해진 예배시간 이외에도 성도가 모이는 날이면 예정에 없던 예배를 드린다. 지나가다 교회를 둘러보던 관광객이라도 원하면 바로 예배를 인도한다. 이찬 목사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 바로 예배의 시간이다.

그가 강조하는 또 하나는 ‘새벽기도’다. 그의 교회를 찾았던 성도들 중에 새벽기도를 통해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휴식을 위해 제주로 내려왔거나, 여행을 왔거나, 사업차 내려온 사람들 모두 갈보리교회를 찾고 난 후에는 눈물로 변화를 경험한다.

얼마 전 주일 낮예배에 찾아온 청년은 이찬 목사와 함께 40일 작정기도를 시작했다. 인터넷 도박과 술에 빠져 있던 친구였다. 눈물로 기도하던 청년이 24일 만에 포기했다. 그의 삶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찬 목사는 다시 40일을 작정시켰다. 아들을 안타깝게 생각하던 엄마도 제주로 내려와 함께 작정기도를 시작했다. 40일 새벽기도를 마친 후 아들은 변화됐고, 엄마는 눈물로 감사를 전했다.

성도의 어머니가 암으로 투병할 때도 이찬 목사는 40일 작정기도를 시켰다. 성도가 작정기도를 시작할 때면 목사도 같이 기도한다. 40일 새벽제단을 쌓고 열흘에 한 번씩 세 번 금식을 하도록 했다. 기도의 결과 어머니의 병은 나았고, 매일 밤마다 유흥을 즐기던 딸의 방황도 끝났다. 이처럼 새벽기도는 변화와 응답을 경험케 한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신비를 알고 있는 이찬 목사로서는 예배와 기도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 총회 1호 수양관 갈보리교회

제주 한 켠에서 묵묵히 목회하는 이찬 목사를 아는 사람은 총회 안에서도 그리 많지 않다. 노회나 총회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갈보리교회를 알게 된 것은 지난 2016년 총회 유지재단 이사회에 가입하면서 부터다.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이찬 목사는 후임자가 들어와서 교회 매각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유지재단에 가입시켰다. “갈보리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 곳이기에 하나님의 것”이라고 이찬 목사는 말했다. 교회를 사람이 함부로 사고팔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 제주 천연석인 검은송이돌로 지은 갈보리교회 전경. 옛스러운 성전의 모습이 정겹다.

총회 지정 1호 수양관으로 언제든지 문을 열어 놓은 것도 특징이다. 두터운 이불을 엎어야 하는 겨울에는 20여명, 여름에는 50여명 수용 가능한 합숙 시설과 샤워실, 공동 식당 등을 구비해놓았다. 제주 수련회를 원하는 교회는 어디든지 환영이다.

제주의 작은 교회지만 농어촌복음화를 위해 선교헌금을 하고 장애인 단체를 돕는 등 20여 곳 이상을 후원하고 있다. 놀랍게도 이찬 목사는 100회 이상 헌혈로 대한적십자사 총재 포상도 받았다. 예배와 함께 선교와 구제에도 힘을 쏟고 있었다.

365일 24시간 문이 열려있는 갈보리교회. 365일 24시간 상처받은 영혼을 위해 달려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이찬 목사. 일흔이 넘은 나이지만 그의 목회는 아직도 한창이다. ‘오직 성경, 오직 기도, 오직 예배’ 이 세 가지는 이찬 목사를 지금까지 지탱해준 불변의 목회 원칙이다.

주일도 아닌데, 성경을 펼쳐들고 히브리서 11장 1~2절 말씀으로 예배를 시작한 이찬 목사는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며 “하나님 안에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기도하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바라는 것’은 반드시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어야 한다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 된 신앙의 원리를 담고 있었다. 하나님이 주인 되신 삶을 기쁘게 살아가는 이찬 목사는 “신학을 하게 된 것도, 제주 목회도 모두 결국은 하나님의 섭리였다”며 남은 생도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살아갈 것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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