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첫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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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첫째주 가정예배
  • 운영자
  • 승인 2016.03.30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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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유혹을 이기는 비법

창세기 39:6~18 찬송 342장

흔히들 정상을 차지하는 것보다 정상을 지켜내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합니다. 승리자가 되는 것보다 승리자로 머무는 것은 더 어려운 법입니다. 그 자리는 더 많은 유혹과 책임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패배와 절망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상황 가운데 있었지만, 그는 그 상황을 돌파하고 승리자의 삶으로 나아갔습니다. 패배와 절망을 뛰어 넘어 요셉은 승리자의 삶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렇게 그의 삶이 재조명되려는 찰나에 그에게도 어김없이 유혹이 찾아 왔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달콤한 유혹과 매혹적인 욕심 속으로 우리의 발걸음을 옮겨서는 안 됩니다. 자신을 그런 유혹과 욕심 앞에 내어 맡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은 현실의 유혹과 나의 욕심보다도 강하기에, 우리는 유혹과 욕심을 통제하고 물리쳐야 합니다.

유혹과 욕심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분명한 원칙을 세워야 합니다.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분명한 원칙과 하나님이 주신 꿈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유혹과 욕심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은 달라집니다. 먼저 요셉처럼 하나님 앞이라는 믿음 속에서 또한 하나님 편에서 분명한 삶의 원칙을 세우길 바랍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유혹과 욕심을 받는 부분이 있다면, 하나님이 주신 꿈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안목을 달라고 성령의 능력을 구하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어떠한 유혹과 욕심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자로 살게 하소서. 

강대석 목사 청운교회
 

화요일

성도가 남기고 가는 것

갈라디아서 6:17 찬송 220장

인간이 머물다가 간 삶의 자리에는 어떤 흔적이든 남게 마련입니다. 바울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의 삶을 뒤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어떤 것을 남기고 가야 할까요?

첫째, 언약을 계승할 자녀를 남기고 가야합니다. 인간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본능적으로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을 양육하며 자신의 것을 전적으로 희생합니다. 나의 분신 같은 자식을 남기고 가되 구원 받은 언약의 자식, 즉 약속의 자식을 남기고 가야 합니다.

둘째, 최고의 가치인 사랑을 남기고 가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하여 사랑을 실천하심으로써 우리에게 그 사랑을 남겨 주셨습니다(요 3:16).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또한 그러한 사랑을 남겨야 함을 말씀하고 계십니다(요일 4:20~21). 우리의 눈에 눈물을 닦아 주신 주님처럼 우리도 누군가의 눈에 눈물을 닦아 주는 성도가 되어 이 땅에 진주보다 더 값진 사랑을 남기고 갑시다(계 21:4).

셋째, 영혼을 구원하는 교회를 남기고 가야합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의 가치는 바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일인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당신의 뜻을 두시고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그 뜻은 곧 영혼 구원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항상 교회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대하 7:16; 왕상 9:3). 우리는 이땅에서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고, 교회를 잘되게 하는 선한 역할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우리의 삶이 언약을 계승할 자녀를 남기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남기고, 영혼을 구원하는 교회를 남기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승수 목사 양문교회

 

수요일

편견의 무서움

마가복음 6:1~6 찬송 302장

편견이란 한 쪽으로 치우친 생각입니다. 편견을 가지면 사고의 다양성이 사라집니다. 나와 다른 것은 나쁜 것이고,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에서 놀라운 일들을 많이 행하셨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시고, 열병으로 고생하는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시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죽음에서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의 스타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을 떠나 고향인 나사렛으로 가셨는데 그곳에서는 아무 권능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의 예수님에 대한 편견이 비극을 낳은 것입니다.

편견이라는 것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편견을 가집니다. 또 하나는 잘 안다는 것 때문에 편견을 가집니다. 지금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잘 안다는 것 때문에 편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만일 나사렛 사람들이 ‘목수인 예수’가 아닌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받아들였다면 그들의 운명은 바뀌었을 것입니다. 편견이 축복의 기회를 상실하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는 편견을 극복해야 합니다. 어떻게 편견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하나님 편에 서십시오. 하나님의 시각으로 사람도, 환경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생각과 판단의 중심에 놓으십시오. 그러면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신앙은 결단입니다. 여러분! 힘써 여호와를 아십시오. 배워서 확신한 일에 거하십시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편견을 극복하시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권능 체험하며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믿음으로 편견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며 살게 하옵소서.

이정기 목사 신나는교회

 

목요일

빚진 자

로마서 1:14~15 찬송 303장

의학 박사로서 출세가 보장된 미래를 포기하고 아프리카로 떠나는 슈바이처 박사에게 한 기자가 왜 이런 결단을 내리게 되었는지 물었습니다. 박사의 대답은 ‘빚을 갚기 위해서’ 였습니다.

오늘의 자신이 있기까지 너무나 많은 빚을 지고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재주와 실력만으로 박사가 되고 의사가 된 것이 아니라 그 배경에는 부모님, 많은 스승님들의 헌신과 이웃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그래 슈바이처 박사는 그 빚을 갚기 위해 아프리카로 가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빚진 자’의 고백은 사도바울에게서도 나타납니다. 사도는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하였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절대 인정하는 바울에게 이 빚은 일생을 지배하는 삶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앞서 예수를 믿고 복음을 만난 자로서 그는 빚을 갚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사는 사명을 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값없이 먼저 구원의 은혜를 입어 은혜에 빚진 사람들입니다. 받아야 할 것 보다는 갚아야 할 것들이 더 많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제사장의 옷을 입혀, 레위인의 옷을 입혀 그들 앞을 지나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누가 저들의 이웃이 되어 줄 것인가’ 물으십니다.

•오늘의 기도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의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유재명 목사 안산빛나교회

 

금요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창세기 1:30~31 찬송 79장

사람들은 모두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고 생각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아야 할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이라는 거울을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가 그 말씀을 통하여 자기를 돌아 볼 수 있는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하루라도 말씀을 떠올리지 않으면 세상의 유혹과 탐심에 이끌려 하나님은 생각지도 아니하고 자기 중심의 사고와 행동으로 말미암아 죄악 속에 빠지는 것이 우리 인간의 연약함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창 1장에 반복하여 나오는 단어 중에 하나가 “하나님이 보시기에”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언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바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될 때 “좋았더라”는 표현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씀 앞에 또다시 사용하신 단어는 “그대로 되니라”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말씀하신 그대로 되어졌을 때 하나님은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6장 22절을 보면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도록 명령하셨습니다. 노아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다 준행하였을 때 세상은 멸망했어도 노아와 그의 가족을 구원하시는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때로는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믿음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언제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진해 목사 신영통제일교회

 

토요일

오묘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사도행전 16:6~10 찬송 333장

바울은 소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하고 지적인 도시인 비두니아에서 2차전도여행을 시작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길을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바울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확신한 바울은 마게도냐로 떠날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빌립보교회, 데살로니가교회, 고린도교회 등이 2차 선교 여행으로 세워지게 됩니다.

우리의 생각에는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더 영광이 되고 우리 모두에게도 유익할 터인데”라고 생각하는 일들이 또는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믿고 기도하고 시작하려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우리는 많은 충격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하나님의 오묘한 뜻과 진리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비두니아 길을 막으신 하나님은 빌립보의 새 길을 열어 더 큰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비두니아의 부요와 지역성은 아시아적인 것이나 그 옆의 샛길은 빌립보를 통하여 마게도니아와 아가야 지방을 연계한 유럽 선교의 문을 열게 되었고 비로소 복음을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게 하는 세계적 복음의 기초를 놓게 한 것입니다. 이는 바울의 계획을 뛰어넘는 놀라운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비두니아 길과 같이 계획하는 일이 막힌 분이 있습니까? 바울과 같이 드로아에 내려가 조용히 마게도니아인의 환상을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이는 우리의 계획대로 사는 것 보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살아야 할 바른 삶의 모습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는 우리의 계획보다 더 큰 것임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용태 목사 백석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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