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 딛고 기도로 승리한 '천로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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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 딛고 기도로 승리한 '천로역정'
  • 승인 2003.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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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먼동이 보랏빛 커튼을 열고 소리 없이 창문을 두드릴 때 나는 조용히 하루를 위한 기도를 드린다 … 명철과 공의와 용기로 후회 없는 하루를 봉사로 가득 채우며 살 수 있기를.” 이처럼 ‘하루를 시작하는 기도’ 시를 쓸 정도로 그는 기도 예찬가다.

한 집단에서 지도자는 매우 중요하다. 지도자에 따라 그 집단의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국가의 흥망성쇠도 지도자에게 달려 있다. 잘못된 지도자는 그가 이끄는 집단을 망칠 뿐 아니라 자신도 망하게 한다.

요즘처럼 말씀에 합당한 지도자를 바라는 때도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정직하면서 겸손한 지도자를 만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평생을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 노력해 왔던 김충환 강동구청장(50세, 광림교회 집사)은 바로 그런 사람이다. 말씀에 합당한 겸손한 지도자가 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김충환 구청장은 한 번도 힘들다는 구청장에 세 번이나 당선될 정도로 지역주민들의 두터운 지지를 받고 있다. 그의 성품이 소박하면서 담백한 예수님의 표정을 닮아서인지 아니면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을 닮았기 때문인지 아무튼 인기가 대단하다.

평생 예수님을 닮기 위해 노력했던 ‘큰 바위 얼굴’처럼 인자한 지도자 김충환 구청장. 그가 서기까지는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가 숨어 있었다. 경복고등학교, 서울대 정치학과, 행정고시 합격, 안정된 공무원 생활, 그리고 구청장이 되기까지 엘리트 코스를 달려온 그에게 있어서 기도는 실과 바늘과 같았다.

기도하는 구청장 김충환집사. 구정에 바쁜 생활에도 불구하고 하루도 기도를 쉬지 않는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응답을 기다렸던 기도하는 미국 대통령 링컨처럼. 어쩌면 그에게 기도가 없었다면 지금도 평범한 공무원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새벽 먼동이 보랏빛 커튼을 열고 소리 없이 창문을 두드릴 때 나는 조용히 하루를 위한 기도를 드린다 … 명철과 공의와 용기로 후회 없는 하루를 봉사로 가득 채우며 살 수 있기를.” 이처럼 ‘하루를 시작하는 기도’ 시를 쓸 정도로 기도 예찬가다. 절망을 만나면 “제발 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빌었다.

“저는 삼수를 해서 중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경북 봉화 촌놈이 서울의 경복중학교에 시험을 봤는데 계속해서 떨어졌어요.” 이는 초등학교 시절 한 번도 1등을 내놓지 않던 그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러나 어린 김충환은 이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절망에서 다른 위기극복 방법을 찾았다. 먼저 하나님께 빌었다. 그리고 성경에서 읽었던 믿음의 인물들이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브라함, 요셉, 다윗, 욥, 엘리야 등등. 이것은 효과가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깨달음을 주셨다. 그때부터 어린 김충환은 기도로 승리한 믿음의 사람들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기쁨도 잠시, 대학에 진학하면서 또 한번 시련을 겪었다. 한 시간이 소중한 시기에 폐결핵은 그에게 사형선고와 같았다. 결국 그는 대학입학시험을 포기해야만 했다. 불행은 겹쳐 온다.

그의 생활을 뒷바라지 해주었던 형수가 갑작스런 질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더 이상 서울에 머물 수 없는 처지가 된 김충환은 낙향을 결심했다. 고향에 돌아온 김충환은 다시 기도했던 예전의 모습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혼자서 공부하면서 중고등부 교사로 말씀을 전했다. 금방 15명이던 중고등부가 70명으로 부흥했다. 그때 ‘전도자 김충환’이란 별명을 얻게된 것. 지금도 이 별명은 그를 따라다니고 있다. 이런 그를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았다.

그에게 더 좋은 상급을 예비해 주었다. 서울대 정치학과 합격이라는 축복이었다. 김충환에게 있어서 기쁨과 슬픔은 항상 함께 공존했다. 합격 소식은 그를 가장 사랑했던 아버지에게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가 시험보기 이틀 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는 장례식도 참석하지 못하는 불효를 범해야만 했다.

“아버지는 광산에서 오래 일하셨기 때문에 몸이 약하셨습니다. 의사는 꾸준히 약을 먹고 충분한 영향도 섭취해야 한다고 했지만 식량조차 부족했던 60년대 농촌에서 충분한 약과 영향을 섭취하기란 쉽지 않았죠.” 그 당시 누구가 겪었던 가난이었지만 김충환에게는 평생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이런 시련은 전초전에 불과했다. 대학입학과 함께 하나님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하숙집이 바뀔 때마다 교회를 옮겨다니면서 소위 떠돌이 신앙인이 되었던 것. 어렸을 때 간직했던 믿음은 점점 일상에서 벌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유교, 불교, 무속에 관심을 가지면서 신앙생활은 점점 위기 속으로 빠져 들었다.

그러나 이런 외도에 하나님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에게 행정고시 합격이라는 선물도 주었다. 그리고 안정된 공무원 생활도 보장해 주었다. 1991년 그가 공무원 생활을 청산하고 지방자치선거를 맞이하여 강남에서 시의원 선거에 출마할 때까지 하나님은 그를 지켜보았다. 그를 더 크게 쓰고자 했던 하나님은 모진 채찍을 가했다.

그 결과는 낙선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그동안 참아온 하나님의 ‘진노’란 사실을 알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을 낭비해야만 했었다. 하나님의 예비하신 것을 깨달고 돌아온 탕자 김충환은 그동안 잃었던 ‘기도’를 찾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돌아온 탕자 김충환을 외면하지 않았다. 3개월 만에 국회 정책연구위원 겸 민주당 원내기획실장의 자리를 예비해 주었다. 그곳에서 4년 간 일한 후 강동구청장에 당선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보호해 주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과 동행한 50년의 삶이었다.

요즘 그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기도의 능력을 전하는데 여념이 없다. 구정을 통해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는 김충환 구청장. 그의 겸손함에 반해서 예수님을 믿게 된 공무원과 실업인들의 수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그래서인지 그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는 이 지역의 교구협의회, 교동협의회, 명성교회 김삼환목사 등 지역 목회자들이다.

“예기치 못한 실패와 상실을 직면할 때, 절대로 절망에서는 안 된다. 오히려 더 축복을 주시기 위한 기회로 알고 감사하며 준비해야 한다.” 이것이 12살 때 세례를 받고 믿음 생활을 시작한 김충환 구청장의 믿음이다.

그는 지금까지 선한 행동을 통해서 예수님의 진리를 알 수 있도록 하는데 노력해 왔다. 이런 노력이 그를 겸손한 지도자가 되도록 했고 신앙인으로써 하나님께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평생을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살길 소원하고 있는지 모른다.

“지금 내가 맡고 있는 임무는 하나님께서 맡긴 일이며, 나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일은 단순히 나 자신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며, 그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나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성경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을 신실히 섬기는 자들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어떤 형편에서든지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책임져 주신다는 사실을 김충환 구청장은 알고 있었다.

송영락기자(ysong@uc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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