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넷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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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넷째주 가정예배
  • 운영자
  • 승인 2016.03.22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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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진정한 형통의 삶

창세기 39:1~6 찬송 370장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채색 옷을 뽐내던 요셉은 너무도 갑작스럽게 일생일대에 단 한번도 생각지도 못했던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요셉의 삶은 산산조각 난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꿈은 고사하고 그의 정체성마저도 완전히 와해될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가 처한 절박하고도 암담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있음을 잊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현실과 상황이 어떠하든지 간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곳에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요셉은 내가 속한 그 장소가 하나님을 섬기기에 최적의 장소라는 이 단순한 진리를 실천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전지적 관점에서 보면 요셉이 맞닥뜨려야 할 훈련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요셉에게 원대한 꿈을 주신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하시면서 그를 세상을 다스릴 지도자로 단련시켜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는 결코 헛된 시간이란 없습니다. 요셉은 사랑 받는 아들의 신분에서 한순간에 이방 나라의 노예로 전락하였습니다. 얼마든지 억울해 하고 한탄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노예의 자리에서도 원망과 불평으로 자신의 삶을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셨고, 요셉은 그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있는 그 자리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자리를 형통의 자리로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진정한 형통의 삶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의 기도
어떠한 상황과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형통을 누리는 삶을 살게 하소서.

강대석 목사 청운교회

 

화요일

살아계신 하나님

고린도전서 15:45 찬송 9장

진리는 사실일 때 진리가 됩니다. 무한하고, 불변하고, 영원한 것을 진리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죄악을 위해 대신 죽는 죽음이었음이 사실로 증명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사실로 증거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가 되심을 증거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만물을 움직이시고, 다스리시고, 만물에 생명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성령 하나님은 살아서 믿는 자들 속에 역사하시며, 죽은 영혼을 살리고, 병든 몸과 상한 마음을 치유하십니다. 성령님은 살아서 우리를 교훈하시고, 가르치시고, 바른 길로 이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기독교는 소망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십자가로 끝난 종교가 아니라 부활로 완성된 소망의 종교입니다. 죽은 종교가 아니라 다시 살아나셔서 제자들에게 기쁨을 준 소망의 종교입니다. 무덤에서 제사 드리는 종교가 아니라 살아나셔서 빈 무덤을 남긴 소망의 종교입니다. 죽어서 소멸되고, 죽어서 지옥가는 종교가 아니라 다시 살아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영생하는 소망의 종교입니다.

살아계셔서, 살려주시고, 변화시키시고, 소망주시는,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과 함께 복된 삶을 사는 성도가 됩시다.

•오늘의 기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살려주시고 소망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여 복된 삶을 사는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승수 목사 양문교회

 

수요일

부활의 사실을 막으려한 사람들

마가복음 10:35~45 찬송 463장

예수님의 부활에는 엄청난 증인들이 있습니다. 직접 만난 예수님의 수많은 제자들은 부활의 예수님을 증거 하다가 순교했습니다.

그런데 부활의 사실을 막으려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경비병과 함께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킵니다.

그런데 안식 후 첫날 새벽에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냅니다. 예수님이 부활한 것입니다. 경비병들이 목격한 사실을 제사장들에게 알립니다. 그러자 제사장과 장로들이 함께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많은 돈을 주며 예수님의 제자들이 도둑질하여 갔다고 거짓 소문을 퍼뜨리게 합니다. 그러나 결국 거짓 소문은 거짓 소문대로 밝혀지고, 매수된 사실은 매수된 사실대로 밝혀졌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여러분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임을 믿어야 합니다. 비록 지금은 이 땅에서 눈물을 흘리고, 수고하고, 고생하고, 때로 모함과 우겨쌈을 당하지만, 죽음 건너편에서 일어날 부활의 날에 주님은 우리 눈에서 눈물을 씻기시고, 그 넓은 품에 안고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부활의 복음은 누가 뭐라고 해도 세상 끝까지 퍼져갈 것입니다. 부활의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아직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는 분이 있습니까?  믿으십시오.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습니다. 믿는 자는 누구든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부활을 믿게 하시고,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며, 부활의 증인되어 살게 하옵소서.

이정기 목사 신나는교회

 

목요일

주님은 아십니다

누가복음 23:34 찬송 150장

예루살렘에 통곡교회라는 성지가 있습니다.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가 주님 말씀대로 닭 울음 소리를 듣고 통곡했던 그 자리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 교회 지붕에는 십자가 대신 닭이 세워져 있습니다. ‘닭 울음소리를 잊지 말자’는 뜻에서 입니다. 사실 베드로는 주님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의 집 뜰에서 그는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자기가 장담했던 것도 다 잊어버리고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리곤 주님 말씀대로 닭이 울자 정신을 차리게 됐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자기도 모르게 주님을 부인했던 사실을 깨닫고 그는 통곡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말씀 그대로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해서’ 자꾸 실수하고 넘어지는 게 바로 우리들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하건만 오히려 주님을 부인하고 주님께 또 십자가를 지워드리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연약한 우리를 잘 아십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는 우리를 주님은 너무나도 잘 아십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연약해서 지은 죄를 이미 다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내 연약함에 낙망하기보다 더욱 더 용서의 은혜를 붙들게 하소서.

유재명 목사 안산빛나교회

 

금요일

서로 세워주는 공동체

빌립보서 2:1~4 찬송 220장

축구나 야구 같은 단체 경기에서 우승하기 위해서는 선수 각자의 기량도 중요하지만 팀 전체가 마음이 하나 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만약 팀 전체의 마음이 하나 되지 못한다면 결코 어떤 경기도 이길 수 없습니다. 공동체에서 마음이 하나 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도 나처럼 소중한 인격을 가지고 있고 얼마든지 나와 생각이 다를 수 있다고 인정한다면 쉽게 팀이 깨지거나 무너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떻게 다양한 죄인들을 이토록 훈련시켜 하나 되게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무조건 사랑과 섬김으로 보살펴야 합니다. 사랑과 섬김이 있을 때 교회가 부흥하고 견고해지는 것입니다. 공동체에 속해 있으면 내 개인의 생각을 내려놓고 함께 공동체를 따라 서로서로 협력해야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잘못된 주장으로 교회 전체가 상처를 받을 수 있고 공동체가 깨질 수 있습니다.

당시 빌립보 교회 공동체가 흔들리고 하나 되지 못할 때 사도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향해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을 품어 아무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아무쪼록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서로서로 세워주는 공동체가 되어 교회를 든든하게 세워가는 신실한 일꾼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배려와 섬김으로 서로를 세워주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이진해 목사 신영통제일교회

 

토요일

바른 선택을 하는 지혜를 가지자

창세기 13:6~13 찬송 204장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나올 때 조카 롯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거주하는 땅은 좁고 거느린 가축과 종들은 많아서 아브라함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다투는 등 여러 가지 불화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롯을 불러 큰아버지로서의 애정과 배려로 선택의 우선권을 주었습니다(창 13:9). 그래서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롯은 이 선택권을 이용하여 물이 좋고 비옥한 요단을 선택하여 소돔 땅으로 갔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의 몫으로 남은 곳은 산지 좁은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사랑이 중요하고 화목이 우선이기에 믿음으로 선택하였습니다. 롯은 달랐습니다. 롯은 우선 눈을 들어 요단지역을 바라보았다(창 13:10)고 했습니다. 보니 그는 넉넉한 물과 기름진 들을 보았고 소알까지 뻗은 넓은 평지를 보며 그곳이 여호와의 동산 같다고 하였습니다(창 13:10). 사실 롯은 겉으로 보았고 물질에만 기준을 두었습니다. 조카 롯은 욕심의 눈으로 요단지역을 바라보았고, 결국은 욕심을 따라 선택한 요단이 롯에게는 큰 화가된 것입니다. 그래서 롯은 소돔과 고모라의 유황불 속에서 인생을 마감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아브라함과 롯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도 여러 가지의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 어떠한 것으로 선택의 기준을 삼아야 하는 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에 우리의 기준을 두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복된 인생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선택의 기로에서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용태 목사 백석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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