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소리 쉬지 않은 시대의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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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소리 쉬지 않은 시대의 양심”
  • 이인창 기자
  • 승인 2015.04.07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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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통합 역사위, 故 목민 고영근 목사 사료 특별전시회 개관
▲ 목민 고영근 목사 사료 특별전시회가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 내 총회 역사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일 개관식 모습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장:정영택 목사)총회가 생전 실천적 목회사역을 감당했던 故 목민 고영근 목사의 생애를 들여다볼 수 있는 사료 전시회를 마련하고 지난 6일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개관예배와 개관식을 가졌다. 

통합 역사위원회가 주최하고 고영근 목민연구소가 주관한 개관식에는 유가족과 교단 관계자들이 참석했으며, 백주년기념관 1층 총회 사료전시관에는 고영근 목사의 육필원고와 목회사역 사진, 법원 판결문 등이 전시됐다. 

1933년 평북 의주 출생의 목민 고영근 목사는 보수신앙에 기초하면서 사회정의를 실천했던목회자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1960년대에는 현장 목회를 하며 교역자 부흥사 수련회, 주보교류운동 등을 전국 단위로 추진하는 사역을 전개했다. 특히 6.25전쟁 당시 인민군 입대를 거부해 무기징역을 언도받았고, 1951년 양구지역으로 월남에 성공해 거제도수용소에 있을 때는 수용소 안에서 설교를 하기도 했다. 

1976년에는 군사정권에 저항하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돼 3년 9개월을 감옥에서 보내기도 했다. 또 1980년대 5공 시절에도 23차례나 안기부에 연행돼 고문과 취조를 당해야 했다. 

▲ 고영근 목사의 부인 '한완수' 사모

이날 개관식에서 만난 고영근 목사의 사모 한완수 권사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실형 언도를 받을 때 당당하게 일사천리로 최후진술을 하는 목사님 때문에 재판정은 부흥회 같았다”며 당시 고영근 목사가 발언할 때마다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고 기억했다. 

남편이 감옥이 있을 때는 가족들의 생계는 곤란할 수밖에 없어서 한완수 사모는 작은 서점을 운영했지만, 한 사모에게 수시로 행해지는 가택연금 때문에 이마저도 어려움이 컸다. 
“이웃집 담을 타고 몰래 넘어가 기독교회관 집회에 참가했다가 발칵 뒤집힌 적도 있어요. 서점에 온 손님이 책을 사면 밖에 있던 형사가 무슨 책을 샀냐고 꼬치꼬치 캐묻는 통이 손님들이 무서워하기도 했습니다.”

한 권사는 “우리 목사님은 2009년 돌아가실 때까지 건전한 신학교와 건전한 교회를 추구하며 정의를 실천하는 신앙을 강조하셨다”며 “다음세대들이 목사님의 이런 가치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통합총회 역사위원장 김동운 목사는 “고영근 목사는 신앙과 신학은 보수적이면서, 광야의 소리를 쉬지 않았다”며 “일시적으로 안위할 수도 있었지만 신앙양심에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걸어간 시대의 양심이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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