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미디어 과의존’ 부모의 영향과 책임이 가장 커
사회와 교계 ‘가정의 올바른 스마트기기 사용 지침’ 제안
스마트폰 없이 자녀양육 사례 눈길…가족, 대안놀이 제공
“안 사주면 사줄 때까지 시달리고, 사주면 그 순간 후회가 시작되는 골칫덩어리!” 스마트폰을 둘러싼 부모들의 하소연이다. 자칫하면 ‘미디어 과의존’을 부르는 스마트폰의 사용 연령이 해마다 점점 낮아지면서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가정은 더욱 늘고 있다.
그러나 중독으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지켜낼 가장 큰 힘은 결국 ‘가정’에서 비롯된다. 특히 부모는 효과적인 ‘미디어 중재자’로서 책임이 막중하지만, 현실은 어쩔 수 없이 자녀들 손에 스마트폰을 쥐여주는 실정이다.
이에 사회와 교계는 오래전부터 ‘가정 내 올바른 지도법’을 제안해왔다. 이 가운데 아예 스마트폰 없이 자녀를 양육하는 크리스천 가정도 있어 눈길을 끈다. 초등생 자녀 둘을 키우는 오수진 집사(산성교회)가 주인공이다. 몸과 마음은 물론 영혼까지 위협하는 유해한 미디어로부터 온 가족이 거리 두기를 실천할 수 있었던 ‘비결’을 직접 들어보았다.
가족의 공통 규칙 정하고
부모가 먼저 모범 보여야
다음세대의 ‘미디어 과의존’이 갈수록 유아동으로 확대되며 ‘저연령화’ 된 사실은 이미 여러 통계로 입증됐다. 전문가들이 “부모의 미디어 사용 습관과 집에서의 허용 및 통제 정도가 자녀들의 ‘중독’ 여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입을 모으는 까닭이다.
2022년 육아정책연구소가 펴낸 보고서 ‘가정에서 영유아 미디어 이용 실태와 정책 과제’에 따르면, 6세 이하 영유아 10명 중 7명(69.2%)은 생후 36개월 이전에 부모를 통해 스마트폰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자녀에게 스마트폰을 허락한 주된 이유로는 ‘공공장소에서 조용히 시키기 위해’(74.3%) ‘보호자가 업무를 방해 없이 처리하기 위해’(70.2%) 등을 꼽았다.
더 문제는 이 과정에서 별도의 ‘가이드라인’이 없었다는 것. 육아정책연구소는 “영유아가 이용하는 콘텐츠의 연령 적합도를 항상 확인한다는 응답자는 36%에 그쳤다. 자녀가 원할 때 자유롭게 쓰도록 한다는 응답자도 10.5%나 돼 보호자의 적절한 관리가 요구된다”고 분석했다.
놀이미디어교육센터 권장희 소장은 “부모와 자녀 간 상호작용 양상에 따라 스마트폰이 긍정적 영향을 발휘할 수도 역효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며 “부모부터 올바른 역량을 기르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부모의 잘못된 대처는 스마트폰을 둘러싼 자녀와의 갈등을 증폭시킨다. 부모들이 지혜로운 ‘미디어 중재자’가 될 수 있도록 일상에서 적극적으로 스마트폰의 적절한 사용을 점검·유도할 뿐 아니라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상당수 부모들은 “스마트폰의 폐해는 알지만 정작 어떻게 대응할지 모르겠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이에 정부는 ‘스마트쉼센터’를 운영하며 부모들을 위한 예방교육과 가정방문상담, 캠페인 등 다양한 정책과 사업을 추진 중이다.
교계의 노력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팻머스·하이패밀리 등 가정사역 및 문화선교 단체들을 중심으로 한국교회 안 각종 캠페인을 전개해 부모들이 가정에서 적용할 수 있는 ‘실천 방안’을 제시해왔다.
일명 ‘가족 모두가 지켜야 할 미디어 사용 수칙’인 셈인데, 여기에는 가령 △스마트기기 시간과 목적 정하기 △스마트폰 보관함을 만들어 사용하지 않을 땐 넣어두기 △거실의 티비를 보지 않을 땐 마스크 씌워두기 △콘텐츠의 사용 등급과 연령 준수하기 △미디어 절제 일기 작성하기 등 구체적인 규칙들이 포함된다.
권 소장은 “미디어와 적절한 거리를 두는 ‘언택트’와 필요한 만큼만 적당히 쓰는 ‘온택트’ 전략이 모두 필요하다”며 “가족 구성원들이 합의를 거쳐 지침을 만들고, 이를 지키는 과정에서 자녀들은 자기조절능력을 키우고 바른 습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무엇보다 미디어가 빠진 자리를 부모가 채우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그는 “최고의 대안은 스마트폰이 아니더라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대안놀이’를 가정이 제공하는 것”이라며 “가정이 최고의 놀이터라는 생각으로 보다 많은 시간을 자녀와 건강하게 보내려는 노력이 첫걸음”이라고 밝혔다.
스마트폰 없이 자녀양육
온 가족 함께 취미 공유
그렇다면, 스마트폰 없이 자녀를 양육하는 일이 요즘 시대 과연 가능할까? 대전에서 두 자녀를 홈스쿨링 중인 오수진 집사(대전산성교회)는 “그렇다”고 소신 있게 답한다. 그에게 미디어 과의존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12살 아들과 10살 딸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스마트폰을 가져본 적이 없다.
한때 교육계에 몸담으면서 스마트폰이 다음세대에 가져다주는 부작용을 여실히 목격했다는 오 집사는 “무엇을 보고 듣느냐에 따라 다음세대가 다른세대로 변하는 건 한순간”이라며, 아이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잘 양육하고 싶은 마음에서 홈스쿨링을 결단하고 자녀들에게 스마트폰을 허용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특히 교사로 근무하면서 8~9살 밖에 안 된 아이들이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영상을 무분별하게 접하는 모습에 경각심을 느꼈다는 오 집사. 그는 “아이들의 인성과 신앙을 어릴 적부터 올바르게 지켜주고픈 마음이 발단이 됐다”고 전했다.
덕분에 오 집사 가정에서는 색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스마트폰이 없을지라도 집안에서 미디어 기기를 완전히 단절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 대신 오 집사의 자녀들은 꼭 필요할 때만 데스크톱 컴퓨터를 사용한다. 티비 프로그램이나 유튜브 콘텐츠도 부모와 함께 시청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발적으로 불편을 감수하는 오 집사 부부의 희생도 컸다. 자녀들 앞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하는 것은 물론 공공장소에서 흔히 울거나 떼 쓰는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무심코 스마트폰을 건네는 행동들도 삼갔다.
그는 “동시에 아이들 ‘교육’에도 힘썼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을 장시간 오래 사용할 경우 겪는 부작용에 대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계속 설명해 줬다. 무엇보다 ‘엄마와 아빠는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선물인 너희를 잘 양육할 의무가 있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말했다.
무조건 ‘안돼!’ 혹은 ‘하지 마’라는 강압적인 태도가 아닌, 자녀와의 인격적인 대화로 상황을 풀어나간 덕분에 그의 두 자녀도 불평이 없다. 오 집사는 “오히려 아이들이 길을 가다 일명 ‘스몸비족’을 마주치면 ‘어떡하느냐’고 걱정한다”고 귀띔했다.
스마트폰 없이 자녀를 양육하는 일의 가장 큰 ‘장점’을 묻자 오 집사는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진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미디어 사용 시간을 줄이면서 자연스럽게 온 가족이 공유하는 ‘취미 활동’이 늘었다. 가정예배를 비롯해 보드게임, 인형극, 산책 등 건전한 여가를 즐기거나 남매가 창의적으로 놀이를 스스로 만들어간다”고 부연했다.
이어 “4차 산업혁명 시대 ‘디지털 네이티브’로 불리는 요즘 아이들이 스마트기기 없이는 전혀 못 살 것 같지만, 이런 생각마저도 ‘오해’”라며 “오히려 부모와 사이가 두터워진 아이들이 건강한 자존감을 갖고 창조적 활동을 이어가는 것 같아 대견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오 집사의 첫째 아들은 올해로 홈스쿨링을 마치고 초등학교에 복학해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공교육에 스마트 미디어가 접목되고 또래 관계와의 접촉도 증가한 만큼 그는 “앞으로 현명한 ‘선용’의 방안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고심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성경적인 부모의 역할은 아이들에게 ‘생명’을 물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내게 부모로서 부어주신 ‘사명’을 기억하며, 혼탁한 세상에서 아이들의 영과 육을 믿음 안에서 바르게 잘 길러내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