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日常)에서 배우는 생명 보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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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日常)에서 배우는 생명 보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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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3.25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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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호프와 함께하는 ‘생명목회이야기’ (48)

아침부터 손녀가 어린이집에서 숲 체험을 간다고 들떠서 이리 뛰고 저리 뛴다. 그 모습을 보니 부럽기도 하다. 나 어릴 때에는 유치원에 다니는 것은 특별한 아이들에게나 해당되는 일이었다. 어린이집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웬만한 아이들은 유치원에 다니고, 그보다 어린 아이들은 나라의 지원을 받으며 어린이집을 다닌다. 물론 여기에는 다른 요인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만큼 살기 좋아진 것이고, 배움의 기회가 보편화되었다는 것이다.

손녀가 숲 체험을 간다고 하니까 문득 예전에 보았던 독일 어린이들이 숲 체험을 하는 모습을 담은 TV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교사들과 부모들이 함께 참여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모습이 우리와 너무나 달랐다. 우리나라의 어린이 TV프로그램을 보면 야외나 숲에 나가서도 작위적인 놀이와 작업들을 하게 하거나, 혹은 인기 있는 진행자에 의해서 진행되는 놀이의 모습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 독일의 어린이 숲 체험은 어린이들이 직접 지렁이, 개미, 거미, 나무와 나뭇잎 등을 만져보고 느껴 보기도 하고, 흙을 파보기도 하고, 냇가에 어떤 생물들이 살아가고 있는지를 자연 그대로 느끼고 보게 하는 모습이었다.

한 아이는 지렁이를 손에 들고 한참을 살펴보더니 길가에 다시 놓아주는데, 사람들에게 밟히지 않도록 길옆에 조심스럽게 놓아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새들을 관찰할 때는 놀라지 않도록 주의를 단단히 하는 것을 보았다. 아이들에게는 그런 경험이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이었으며, 그 경험들을 통해 작은 생물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 얼마나 소중한 생명체들인가를 배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배우고 익힌다면, 자연이 우리의 탐욕의 대상이 되거나 소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을 수 없을 것임이 분명했다.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아주 오래 전 교인들과 함께 봄맞이 야유회를 나갔을 때 일어난 일이 생각났다. 공원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자리를 잡았는데, 사방에는 나무들이 막 꽃을 피우고 있어서 봄의 정취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한 교인이 일어나 꽃이 핀 나뭇가지를 꺾는 것이 보였다. 한 명이 그러니까 너도 나도 일어나서 꽃을 꺾기 시작했다. 난 그 모습이 너무나 당황스러워서 얼른 말리면서, ‘어른들이 그렇게 하면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우겠냐’고 나무랐던 적이 있다. 자신들도 모르게 자연을 소유화하려는 행동이었다. 그 뒤에 탐욕이 도사리고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자신의 생명이 귀하다는 것은 타자의 생명이 귀하다는 것을 알면서부터 시작된다. 왜냐하면 타자에 대해서 하는 행동이 결국은 자신에 대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것과 같고, 그렇게 타인에게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또한 자신이 귀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과도 같다. 그래서 세상은 철저하게 관계지향적이다. 내가 타인을 어떻게 여기는가가 다시 부메랑처럼 나에게로 돌아와 되비추어져서, 그것이 내 모습이 되는 것이다. 내가 타인의 생명을 존중하고 보듬으며 살아간다면, 거기에 되비춰진 나 역시 존중을 받을만한 존재가 되며, 또한 그렇게 보듬어야 할 대상이 되는 것이다.

소중한 생명을 보듬으며 살아가는 것은 태어나면서부터 배워가야 하는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바로 생명활동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낳고 기르고 가르치고 보듬어가는 개인, 가정, 사회, 국가가 될 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 역시 우리의 생명을 보듬어 풍요롭게 해 줄 것이다.

노용찬 목사(라이프호프기독교자살예방센터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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