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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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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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1.05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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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찬 목사•백석신학교 학장

판단의 기준에는 ‘의’와 ‘이익’이 있다. 모든 일이 의의 기준에서 판단하면 옳은 것이 된다. 곧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기준에서 판단하면 이기주의에 빠지게 된다. 의가 죽고 마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나 일의 판단을 할 때 의의 기준에서 판단해야 한다. 잘 되고 잘 사는 것, 즉 부나 유명세의 기준에서 판단하면 안 된다. 학교 교육도 의의 교육이 없이 기술 교육과 잘 사는 비법만 가르치면, 자신이 잘 살기 위해 남을 모함하고 음해하고 죽이는 길로 빠질 수 있다.

옳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고 좋다고 다 옳은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른 의를 떠나 자기가 보기에 좋은 대로 판단하면서부터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었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교단간의 관계나,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나, 부부 관계나, 친구 관계 등 의의 관계가 형성되어야지 이익의 관계가 형성되면 상대만을 이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세상은 온통 속임과 싸움의 전쟁터가 되고 말 것이다.

성경에도 “의인은 없나니 한사람도 없다”(롬3:10)고 하였다. 그러나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고 하였다. 여기서 믿음은 확신의 의미를 넘어 진실함을 말한다. 의가 없는 믿음은 자신만의 욕심을 채우는 이기적 믿음이 될 수 밖에 없다. 또한 “주여, 주여” 하지만, 행위는 하나님과 원수로 행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세상에 정의가 실현된 것처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잘 살려고만 하지 않고, 바르게 사는 의인이 나온다면, 이 세상과 교회와 가정은 의의 장막집이 될 것이다.
교회도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어야 한다고 성경은 정의하고 있다. 아무리 세상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우리를 이용한다 할지라도 교회와 크리스천만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의의 세마포를 입어야 할 것이다.
성경에 나와있는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16:9)라는 말씀처럼 여호와는 의인을 향하시고 그 길을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게 하신다.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성폭행, 청부살인, 배도와 타락 모두 하나님이 금하는 불의의 길이다. 상수리나무와 밤나무가 베임을 당해도 교회와 주의 종과 성도만은 의의 실현을 위해 남겨둔 남은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판단’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할 것이 아니라 의의 기준에서 판단될 때 의의 하나님의 뜻의 통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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