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효성의 문화칼럼] 종말론적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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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효성의 문화칼럼] 종말론적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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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5.02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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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효성의 성지를 찾아서 (25)

얼마전 핸드폰이 고장 나 서비스센타에 맡겼다. 데이터는 복구할 수 없다고 해 결국 데이터가 다 지워졌고 수많은 전화번호와 메모들도 다 사라졌다. 데이터가 없어지니 요긴하게 사용하던 자료들을 사용할 수 없게 됐고 긴요한 연락처를 알 수 없어 난감했던 적이 있었다.

모바일폰이 일반화 된 지금 사람들은 또 하나의 두뇌를 가지고 다닌다. 자료를 검색하고 앱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꺼내 쓸 수 있는 문명의 이기다. 수많은 전화 번호를 단축키 하나로 연결해주다 보니 편리하기가 그지 없다. 얼마 전까지도 상상 속에나 존재할 법한 것들이 현실 속에서 가능하게 되었다. 기능이 진화할수록 사람의 기억 용량은 조금씩 줄어 들고 있다. 이것을 ‘모바일 치매 증후군’이라 부르기도 한다.

많은 부분을 기기에 의존하다보니 가족의 전화번호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수첩에 전화번호를 빼곡히 적어놓았던 전화번호부도 어느샌가 사라졌다.

때문에 기기를 잃어버리거나 데이터가 지워지는 일을 당하면 보통 불편한 게 아니다. 연락이 필요한 곳에 연락할 수 없는 상황되면 이 얼마나 답답하고 불편한 일인가. 이제는 모바일폰이 없다면 소통이 단절되고 세상 속에 고립을 면치 못하기까지 한다. 언제 어디서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생활필수품이 되었다. 모바일폰의 최고의 가치는 소통케 하는 기능이라 할 수 있다.

▲ ⓒ방효성, The Day, 2014.

현재 대한민국은 슬픔에 잠긴채 시간이 멈춰 있다. 수많은 어린 생명들이 희생되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참담함 앞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사고 초기에 주고 받은 문자들을 보면 우리의 마음을 더욱 아프고 안타깝게 한다. 끝내 답신이 확인이 안된 채 멈춰서버린 대화를 보며 소통이란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엄청난 일임을 깨닫게 된다.

마지막 소통. 이 세상에서의 소통은 언젠가 마지막이 있다. 상대방의 응답이 없다면 소통은 불가능한 일이 된다. 믿는 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소통이 존재한다. 다름아닌 하늘나라와의 채널이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소통 하고 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현재 나는 하나님과 소통이 원할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이에 대하여 점검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외면한 채 세상의 소리에 묻혀버리지는 않았는지. 송수신 장치를 꺼놓은 상태는 아닌지 살펴 봐야 한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이 종말론적 소통을 넘어서는 일임을 되새기며 어느때 보다 더 하나님과의 소통이 절실함을 느낀다.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시편 119편 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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