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권의 문화칼럼] 풍요사회와 사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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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권의 문화칼럼] 풍요사회와 사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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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3.20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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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태화의 종횡무진 문화읽기 (16)

현대 사회를 일컫는 용어들이 있다. 불확실성의 시대(갈브레이드), 접속의 시대, 노동의 종말 시대(리프킨), 속도의 시대(빌 게이츠), 욕망의 시대(라깡), 비만의 시대, 피곤사회(한병철), 권태사회(이상, 마광수), 소비사회, 웰빙, 힐링시대, 백세 시대 등이다. 여러 면에서 양극화가 심각한 수준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는 풍요사회라 아니할 수 없다. 문제는 현대인은 이익이 눈에 보이면 과잉생산 하고, 그 넘쳐나는 것 때문에 스스로가 억눌리고 신음한다는 사실이다.

소비를 예로 든다면 현대인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얼마나 달콤한 일상인가. 그러나 그 소비의 끝은 참담하다. 소비 뒤에 남겨진 쓰레기는 환경을 위협하고 급기야 소비자를 공격한다. 이것이 우리 시대를 향한 경고, 환경의 대재앙, 자연의 대반격인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인들은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욕망의 속도도 줄이고, 교만의 속도도 줄여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F.쉐퍼).

지금 우리는 사순절을 지내고 있다. 기독교 어느 절기보다도 절제해야 하며 금욕을 훈련해야 하는 시기이다. 예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피와 물을 쏟으시며 고난 받으신 것을 기념하는 시간인데 어찌 이런 고통의 시기에 쾌락의 유혹에 빠질 수 있겠는가. 사순절 영성으로 일상을 점검해야 한다. 여러 모양의 소비를 줄이며, 불편을 감수하며, 사랑과 감사를 이웃과 나누어야 한다.

구약의 성도들은 초막절을 지냈다. 출애굽을 기념하는 이 절기는 사막으로 나가 천막을 치고 무교병을 먹으며 조상들의 불편을 재연하며 신앙의 의미를 되새기는 행사였다. 한국 교회는 유감스럽게도 이런 절기를 지키지 않는다. 평생 초막절 같은 절기의 의미는 체득되지 못한다. 아브라함처럼 복 받으라는 명제는 유행해도, 초막절 절기처럼 고난과 절제의 미덕에 참여하는 행위에는 인색하다.

사순절의 의미를 제대로 살릴 수 있다면, 이 시기만이라도 그 진정한 의미를 재연할 수 있다면 한국 교회는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고, 잃어버린 명예도 되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사순절 영성으로 더욱 낮아지는 자세에서 섬길 수 있다면, 주님은 우리를 다시 열방의 기업, 한국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게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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