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가치,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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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가치,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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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2.26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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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하라, 기도하라, 사고하라, 그리고 일하라 - 로크마커의 개혁주의 미학 (22)

▲ 안용준 목사
크리스천 예술가는 믿음으로 예술의 고유한 가치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로크마커에 의하면 예술의 고유한 가치는 의미전달과 형식의 양 면에서 발견된다. 의미전달은 형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즉 예술의 가치는 실재의 주어진 구조와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작품의 제작방식, 사용된 색채, 선의 아름다움 등의 형식을 통해 의미가 전달된다. 예술의 창작과 평가에는 형식적 법칙(decorum), 생활양식, 이해, 취미, 양식의 요소가 개입된다. 그러나 “예술적 수준이 뛰어날수록 그 내용, 의미, 영적 방향성 등을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로크마커의 생각은 예술의 가치를 결정하는 최고의 규범이 사랑, 구원과 같은 정신적인 가치라고 보는 그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므로 크리스천 예술가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무수한 창조적 가능성의 하나인 예술적 창조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때 예술의 기독교성을 결정하는 것도 로크마커에 의하면 표현된 예술의 주제가 아니라, 거기 담긴 정신이다. 단지 성경적 이거나 기독교적 주제를 가져왔다고 해서 반드시 기독교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논지이다. 그는 예술의 역사적 실례로 자신의 주장을 증명한다.

피카소가 그린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만도 몇 개인지 모를 정도이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의 산물이라기보다는 독설의 표출이었다. 숱한 성경적 주제들이 르네상스 이후 인본주의 정신으로 손질되곤 했다. 물론, 거의 모든 이교 사상들이 예술 형식으로 표출될 때 으레 기독교적 주제를 도용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결국 로크마커의 논리에 따르면 예술 작품에 투사되고 있는 실재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성경적이냐가 관건이다. 하나님이 주신 실재를 편견 없이 드러낼 때 비로소 기독교 예술이 될 수 있다. 이때 실재를 드러내는 작업은 사실의 모사를 의미하지 않는다. 크리스천 예술가는 그의 통찰력을 사용하여 항상 새롭게 진정한 인간성의 회복을 추구하고 표현해야 한다. 그래야 선하고 참되며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실재에 부합한 예술을 성취할 수 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에 의한 예술이란 우리의 정신, 사물을 파악하는 방식, 인생과 실재에 접근하는 법 등을 투영하여 나타내는 것이다.

로크마커의 이러한 예술 개념의 형성은 성경에 대한 깊은 이해와 거기에 표현된 독특한 어휘를 통해 영향력 있는 미학 이론을 수립하는 길로 나아가게 했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칼빈주의의 환경 안에서 발견되는 창조에 관한 이해가 자연스럽게 그의 예술 체계의 초석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술론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 대한 인간의 상상력 있는 반응으로의 산물로 설명된다. 예술 역시 하나님이 인간에게 설정하신 미에서 출발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은 기독교 미학의 전통을 이어가는 세계적인 연구기관으로는 캐나다 토론토에 위치한 기독교학문연구소(Institute for Christian Studies), 토론토대학교, 미국의 칼빈대학,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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