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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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9.1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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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호 목사(춘천동부교회)

필자는 지난 2년 동안 20년 만에 추석을 고국에서 맞이하게 되었다. 가족 친지 모든 분들이 모여서 같이 예배하고 음식을 나누는 시간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성묘를 갈 때면 앞장서서 힘 있게 걸어가시던 그 분도 허리가 구부러져 몇 번을 쉬면서 산에 오르는 모습을 보며 참 많은 것이 변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음력 8월 15일인 이 추석은 다른 말로 ‘한가위’ 라고도 하는데 '한'이라는 말은 '크다'라는 뜻이고, '가위'라는 말은 '가운데'라는 뜻을 가진,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뜻이다. 가을의 한가운데이기도 한 추석은 무더위도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철로 접어드는 때다.

들판에는 오곡이 무르익어 황금빛으로 물들며 온갖 과일이 풍성하게 되는 명절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러한 자연의 모습을 보며 오곡백과의 풍성한 수확은 인간 노력의 대가이기 보다는 신의 은총이라는 것을 생각했다. 이런 점에서 추석은 서로 같이 놀고, 함께 나누는 좋은 전통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가위만 같아라.” 이 말은 우리 조상들의 소원이고 덕담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추석날 영화 구경을 가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던지, 극장으로 보내주지 않는 부모님 몰래 친구들과 딱지치기를 하여 거금을 벌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친구들과 같이 영화 구경을 간적이 있다. 그 사건을 아신 부모님께 그날 밤새도록 대문 앞에 서서 벌을 받았다.

그 당시 추석 시기는 지금 보다 몹시 날씨가 추웠던 기억이 난다. 딱지치기를 하며 같이 놀던 친구들, 잠시 후 야단맞을 일은 생각도 하지 않고 친구들과 영화를 보며 좋아하던 일, 그때를 떠올리면 입가에 웃음이 돈다. 20여 년 전 독일로 유학을 가던 날도 추석날이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필자 역시 “한 가위만” 같기를 바라며 살아왔다.

아마도 한 가위만 같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가 서로 나눌 수 있다는 풍성함 때문이다. 그런데 요사이 어떤가? 초등학교에서 '추석'에 대하여 이야기 하라고 하니 아이들이 ‘선물’, ‘끔직한 귀성길’을 이야기 했다고 한다. 실제로 필자도 지난 추석에 엄청난 차량행렬을 경험하니 그렇게 말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요즘 경제는 어떤가? 제 몸 하나도 간수하기 힘들고 제 가족 챙기기도 어려운 처지에 주변이나 남을 돌아 볼 여유를 갖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더욱 힘들어지는 이들이 있는데 바로 ‘없는 사람’들이다. 고물가나 고유가, 수출부진, 고환율을 비롯해 좋지 않은 경제여건의 모든 충격은 없는 사람들이 몸으로 다 받게 된다.

필자는 한 장애인 단체 모임에 참여하였다. 그 가운데 한 장애인 단체에서 오신 분의 이야기가 기억난다. 예전에는 이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기부를 해 왔지만 요사이 추석에는 개인 기부는 이제 거의 보기 어렵고, 기업 등 단체 기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한다. 그것도 잘 알려진 복지시설에는 다소 기부의 손길이 있지만 소규모 복지시설에는 기부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우리의 불우한 이웃들이 고향을 찾을 형편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큰 명절에 맛있는 과일과 따뜻한 송편이라도 같이 나누지 못하는 현실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한 가위에 우리 조상들은 남을 위해 농사를 지어주고, 힘들고 어려울 때 두레, 향약, 품앗이와 같은 공동체 활동을 통해 상부상조의 미덕을 면면히 지켜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가위만 같아라.” 이 말은 신의 은총과 함께 서로를 위한 섬김이 어우러져 나온 말이다. 돌아보면 주변에 힘들고 어려워하는 이웃들이 많이 있다. 벌써 무더운 여름이 지나 한 가위가 성큼 다가왔다.

이번 한가위는 우리의 노력에 정직한 결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내게 있는 것으로 우리의 이웃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풍요로운 명절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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