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주의’ 이념 신학적ㆍ신앙적 신념과 동일시해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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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주의’ 이념 신학적ㆍ신앙적 신념과 동일시해선 안돼
  • 표성중 기자
  • 승인 2013.07.02 22:4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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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정전협정 60주년, 평화를 말한다 ③ 이데올로기의 극복

▲ 한국교회 보수 진영의 일부 지도자들은 반공집회, 국민애국궐기대회, 구국기도회 등에 참여하며 공산주의와의 싸움은 사탄과의 싸움이라는 주장을 전개해오고 있다. 지난 1966년부터 시작된 국가조찬기도회 역시 반공주의를 내세운 한국교회를 지원한 독재정권과 결탁한 대표적인 정교유착 행사라는 비판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에 새로운 대안이 요구되고 있다.
보수 한국교회, 전쟁의 증오로 ‘평화통일’보다는 ‘멸공통일’에 더 익숙
‘화평케 하는 자’로서 민족 살리는 기독교 신앙의 대승적 자세 가져야

미국과 소련 간의 냉전체제 속에 편입되면서 발생한 한국전쟁은 현대사회에서 자유 민주주의 내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 전쟁으로 평가 받거나 해석되고 있다. 이와 같은 ‘이데올로기’ 전쟁은 전쟁발발 63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한국사회 안에서 첨예하게 격돌하고 있다. 정치와 사회 안에서 주도권을 얻으려는 이들에 의해 발생하는 이념 논쟁이 한국사회를 양분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데올로기 논쟁의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반공주의’다. <편집자 주>

# 한국교회와 반공주의 확산
한국 교회의 반공적인 입장은 192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반공이 증오를 동반한 이데올로기로 구현된 것은 남북분단 이후부터였고,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생존동기에 기반을 둔 보다 강력한 반공주의 이데올로기가 됐다. 반공주의는 일제 후반기에 뿌리 내린 반 사회주의적 기독교가 6.25 전쟁을 거치면서 ‘공산주의=반 기독교 이념’, ‘기독교=반 공산주의 종교’라는 불변의 진리로 고정되면서 나타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렇다면 한국전쟁 이후 교회 안에서 ‘반공주의’가 급격하게 형성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 교회는 한국전쟁을 하나님과 사단의 투쟁으로 이해했다. 따라서 공산주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한국 교회의 ‘반공주의’는 공산주의 이론에 대한 학습에서 나왔다기보다는 직접 경험한 전쟁의 실상과 동족 간의 불신 체험으로 형성됐다.

전쟁 기간 중 수많은 성도와 교회 지도자들이 남북한 지역에서 공산당원이나 공산군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희생당했다. 이와 같은 체험이 공산주의에 대한 한국 교회의 적대적 태도와 증오심을 더욱 강화시킨 것이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좌우익간의 사상논쟁에 빠진 한국 교회 안에서 공산주의가 이념을 넘어 신앙으로까지 확대된 이유는 공산주의 통치를 경험했거나 월남한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전 소련은 김일성을 앞세워 북한의 권력을 장악했다. 김일성은 공산당 정권을 세우는데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었던 북한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을 본격적으로 박해했다. 결국 월남을 선택한 북한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은 남한에서 강력한 종교적 기반을 구축했다. 특히 신앙적 영향력을 확대시키면서 한국 교회 안에 자연스럽게 ‘반공주의’가 굳어지게 된 것이다.

# 반공주의와 교회의 분열
특히 이승만 정권 이후부터 한국 교회는 반공주의를 공식적 차원으로까지 기독교 신앙과 연결시켰다. 박정신 교수(숭실대)는 “이승만의 권위주의적인 정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은 반공적이고, 친정권적인 보수파들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돕고,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보수파 교회들은 공산주의자들이 그리스도의 진정한 적이고, 공산주의와 싸우는 정권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워졌다고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고 주장한 바 있다.

‘국가조찬기도회’와 같이 정치 지도자들과 기독교 지도자들이 고급 호텔에 모여 독재 정권을 위해 기도하고 설교한 것은 오늘날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반공 이데올로기는 한국 교회 분열의 원인으로도 작용했다. 해방 후 신사참배 문제로 장로교가 분열됐고, 신학적 입장과 교회의 이데올로기 문제로 또 한 번의 분열을 경험했다. 여기에 세계교회협의회와의 관계를 둘러싸고 한국 교회는 갈등을 또다시 하게 됐다.

당시 보수적 한국 교회는 WCC가 자유주의 신학을 추구하고, 용공적인 집단이라고 비판했다. 1968년 WCC 제4차 웁살라 총회에서 중공의 유엔 가입을 촉구하고, 월남전을 반대한 것이 이유가 됐다. 그러면서 보수 교회의 비판세력은 진보적인 장로교회와의 분열을 정당화했다.

반공주의는 한국 교회 안에서조차 자신들과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사람들과 싸우는데 사용되는 무기가 된 것이다. 특히 군사독재 정권 때 한국 교회는 보수와 진보로 크게 이분화됐다. 김경재 박사(한신대 명예교수)는 “보수 진영의 한국 교회는 ‘정교분리’라는 입장을 견지했지만 집권 세력에 대해서는 ‘체제유지 및 지지노선’을 취하면서 반공, 안보논리적 신앙노선을 더욱 강화하고, 군사정권의 정치적 지지 세력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이와는 반대로 한국 교회 진보 진영은 공산주의에 대해 보다 더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를 중심으로 통일 문제를 세계 교회의 관심사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1988년에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의 선언문’도 발표했다. 당시 선언문에는 “남한의 그리스도인들은 반공이데올로기를 종교적인 신념처럼 우상화해 북한 공산정권을 적대시한 나머지 북한 동포들과 이념을 달리하는 동포들을 저주하기까지 한 죄를 범했다”는 고백도 담겨져 있었다.

# 남북통일 위한 교회의 과제
현재 ‘반공주의’는 남북의 화해와 협력의 역사적 흐름을 더디게 하거나 그르치게 하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보수적인 한국 교회는 반공주의 이념을 신학적, 신앙적 신념체계와 동일시하는 오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 보수적 한국 교회는 ‘평화통일’ 보다는 ‘멸공통일’에 더 익숙하다. 이문식 목사는 “‘평화 공존’보다는 ‘흡수 통일’을 더 선호하고, ‘화해와 협력’ 보다는 ‘고립과 붕괴’를 무의식적으로 희망하는 경향을 갖는 전투적 유신론에 입각한 기독교 승리주의, 힘에 의한 통일론, 혹은 증오의 영성에 더 깊이 고착돼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2000년 6월 15일 남북 최고지도자인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6.15 남북 공동선언’이라는 역사적 선언문에 서명하며, 남북관계의 획기적 이정표를 마련한 바 있다. 이 선언문이 민족의 단합, 교류와 협력, 평화와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민족적 합의문이었다는 사실에 한국 교회는 주목해야 한다.
하지만 보수적 한국 교회는 지난 이명박 정부의 강경한 대북 정책의 기조 속에서 터져 나온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 등의 긴장국면 속에서 반공주의 한계를 다시 드러내는 경직성을 보였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김경재 박사는 “한국 교회의 진보적 민족주의와 보수적 반공주의 사이에 화해와 상호이해가 이뤄지지 않고, 신학적ㆍ신앙적 차원에서 창조적 자기변화를 꾀하지 않는다면 한국 교회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적 통일운동의 장정에 역기능적 집단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박사는 “보수와 진보로 나누어진 한국 교회는 ‘평화’(샬롬)를 실현하는 실천적 신앙을 바탕으로 민족통일의 밑거름으로써 기능해야 한다”며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의 한국기독교사에서 신앙의 선배들이 보였던 ‘민족을 살리는 기독교 신앙’이라는 대승적 자세로 돌아가 기독교와 민족주의 관계성을 한국현대사라는 구체적 삶의 자리에서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문식 목사는 “한국 교회는 한국 전쟁이라는 과거의 특수 경험에 기초한 냉전시대의 극단적인 반공 이데올로기를 점차 상대화시켜야 할 변화의 시점에 와 있다”며 “역사적 증오를 종말론적 증오로까지 끌어 올렸던 과거의 극우적 신앙으로부터 점차 새롭게 전개되는 민족 재통합의 역사적 과정에서 민족 화해의 신앙으로 변화해야 할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고 강조했다.

기독교 복음은 사랑과 용서, 섬김임을 강조한 조용훈 교수(한남대)는 “과거 사회주의와 갈등했고, 공산주의 아래에서 억압과 핍박을 받은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치시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셨던 예수님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냉전적 사고는 흑백논리에 기초한 선악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서 모든 갈등과 분열의 원인이 된다”며 “한국 교회는 반공주의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태도를 견지할 때, 한국 사회의 화해와 통합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곧 화평케 하는 자’로서 한국 교회가 부름 받은 이유”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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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2013-07-07 16:47:21
아직, 혼미를 벗어나지 못한 한국교회를 향한, 한줄기의 새로운 빛이 들어오고 있는 느낌이다.
오랫동안 그릇된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매너리즘과 고정관념에 갇혀 있는 이들을
참 사랑과 생명길로 인도할 자는, 이 시대의 선각자적 사명인이다. 하나님은 결코, 이 백성을
멀리하시지 않음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