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협정 60주년, 한반도엔 아직 평화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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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 60주년, 한반도엔 아직 평화가 오지 않았다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3.06.27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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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정전협정 60주년, 이제는 평화다 ② 정전협정이 한국사회와 교회에 남긴 과제

정전협정 이뤄냈지만 이데올로기 갈등 여전

항구적 평화 합의 속 비핵화도 얻어내야

1953년7월 27일 한반도에서 들려오던 총성이 멎었다. 남북한이 휴전에 합의한 것이다. 형제간에 총부리를 겨눈 잔혹한 역사. 그러나 안타깝게도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다만, 전쟁을 잠시 멈춘 것 뿐이다.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은 세계적인 냉전 상황에서 이데올로기의 분열로 시작된 전쟁이었다. 6.25전쟁은 북한과 남한 간의 싸움이었으나 전쟁이 격렬해지면서 유엔군과 소련, 중국군 등이 참전하는 확대양상을 띠었다.

북한군의 공격으로 낙동강까지 후퇴했던 한국군은 1950년 9월 28일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10월 20일 평양까지 밀고 올라갔다. 그러나 11월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전세는 다시 역전됐다. 오산까지 후퇴와 유엔군의 대반격을 통해 1951년 3월 서울을 재탈환하고 38도선까지 진격했다. 휴전에 대한 가능성이 처음 제기된 것이 바로 이 시기다.

당시 미군 측에서는 “38도선에서 휴전이 된다면 유엔군의 대승리”라고 표현했다. 미국 정부도 38도선 이북으로 진격하는 문제를 유보하면서 휴전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소련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후퇴와 반격이 반복되면서 지친 참전국들은 휴전을 원했다.

결국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한반도에 그려진 38선은 6.25전쟁 후 남과 북을 가르는 경계선이 되고 말았다. 이 상황에 대해 기독교역사학자들은 “1945년 8월 이후 미국과 소련군대가 한반도를 점령하면서 생긴 일시적인 경계선이 냉전의 심화와 함께 항구적인 분단선이 되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또 “한반도는 냉전의 양대 세력인 미국과 소련 두 나라에 의해 분할 점령되면서 냉전체제 속에 편입됐고 그 결과 내부적인 요인을 안고 있다가 전면전이 일어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정전협정은 1951년 7월 10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2년 간 계속됐다. 역사상 가장 긴 휴전회담으로 기록됐지만 전쟁을 종식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정전협정 자체는 전쟁 종식이 아닌 적대행위의 일시적 중단이다.

1953년 7월27일 체결된 정전협정의 주요 합의 선언에는 ‘서명자들은 쌍방에 막대한 고통과 유혈을 초래한 한국 충돌을 정지시키기 위하여,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한국에서의 적대 행위와 일체 무력행위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는 정전을 확립할 목적으로 한다’고 언급되어 있다.

영문과 한글, 중문으로 작성된 협정문은 △군사분계선을 설치하고 양측은 군사분계선으로부터 2Km씩 후퇴하여 완충지대로서 비무장지대를 설치한다 △군사정전위원회를 구성하여 휴전협정의 이행을 감시하며, 스웨덴, 폴란드, 스위스, 체코슬로바키아 등 4개국으로 중립국감시위원단을 구성하여 군비증강을 감시 조사하게 한다 △양측이 억류하고 있던 포로를 송환할 것과 본국 송환을 거부하는 포로는 중립국송환위원단에 인도하는 것으로 결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단 ‘협정’이 체결되면서 전쟁의 위험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전협정 이후 크고 작은 남북 군사적 충돌과 갈등은 2천건 가까이 일어났다. 지금도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하며 여전히 전쟁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평화’로 가는 길이 멀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종전’이 아닌 ‘정전’은 한국 사회에 어떤 상처를 남겼을까. 통일미래사회연구소장 정지웅 박사는 “정전협정은 한국 사회가 민주화로 가는 길을 막았다”고 지적했다.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한국 사회는 민주화로 더딘 걸음을 걸어야 했고, 국민들의 힘으로 민주주의에 도달했지만 ‘성숙한 민주주의’까지는 아직 난제가 있다는 것.

또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시아의 평화정착을 위해 ‘평화정착’은 반드시 이뤄내야 할 과제로 꼽히고 있다. 정 박사는 “아직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꿀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며 “세계적으로 냉전이 해소된 상황에서 한국만 정치학적으로 냉전을 안고 살아가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평화정착으로 가는 난제에는 정정협정 당시 한국이 협상 당사자에서 빠져 있다는 점도 포함되어 있다.
정전협정 서문에는 ‘국제연합군 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 인민지원군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서명자들은…’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실제 협정문에는 국제연합군 사령관으로 미군 육군대장 마크 W. 클라크와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 자격을 가진 김일성, 그리고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 팽덕희의 이름이 남아 있다. 한국군 대표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 이 때문에 북한에서는 평화협상을 진행할 때 대화 상대는 ‘미국’이라고 지목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당연히 당사자 간 대화와 협정을 촉구하고 있다.

‘평화협정’이라는 단어 자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보수그룹도 있다. 북한에서 평화협정의 전제로 주한미군의 철수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정 박사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고 김대중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평화 목적의 미군 주둔에 대해 허용의 여지를 남겨두었다”며 “미국이 한국 주둔을 고집하는 이유는 북한을 견제하는 것을 넘어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전략도 포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평화의 전제 조건에 ‘비핵화’는 당연하지만 주한미군철수와 한반도 완전 비핵화라는 양측의 주장이 계속 될 경우 평화를 향한 대화 진전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정지웅 박사는 “일단은 전제 없는 대화로 평화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며 “대화의 과정에서 비핵화가 동시에 이뤄지면 더없이 좋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전협정 후 한국 사회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고, 그 후유증과 상처 또한 상당하다. 전쟁 포로의 생사도 아직 명확하지 않을 뿐 아니라 분단의 세월이 길어지면서 만남을 기약할 수 없는 이산가족의 눈물도 멈추지 않고 있다.

남북대화가 시작되면서 상처를 치유하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기 위한 논의들이 계속됐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중단된 남북관계는 악화를 거듭할 뿐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전’에 처한 한반도를 구하기 위한 방법은 항구적인 평화정착 밖에 없다. 정부가 나서지 못한다면 민간과 교회가 앞장서 평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정전협정의 종식과 한반도 평화 문제는 한국 사회 뿐 아니라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해서도 반드시 이뤄져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통일미래사회연구소장 정지웅 박사는 평화로 나아가기 위한 교회의 책임을 강조했다. 정전으로 남한 사회는 이데올로기의 갈등에 빠져 있고, 이것이 사회통합을 막는 요소라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는 것.

정 박사는 “교회가 평화의 주체가 되고 남남 갈등을 해소하는 핵심 매개가 되어야 한다”며 “기독교가 이데올로기에 빠지면 안 되며 좌로나 우로도 치우치지 말라는 말씀에 따라 성경적 균형을 갖추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반도가 평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안보가 강조되는 ‘힘의 평화’가 아닌 ‘진정한 평화’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밝힌 정 박사는 “이를 위해 교회부터 화합하고 진정한 평화를 목적으로 기도하는 책임을 감당해야 하며 크리스천 한 사람이 먼저 평화가 되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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