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선한 문화 창조를 꿈꾼다
상태바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선한 문화 창조를 꿈꾼다
  • 운영자
  • 승인 2013.04.23 21: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절망의 그늘에 생명의 빛을, 카이퍼의 개혁주의 미학 (13) - 안용준 목사(목원대 겸임교수)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선한 문화 창조를 꿈꾼다.

일반적인 통념으로 세상에는 복 받지도 못하고 복 줄 수도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재능이 너무 부족해 보이는 사람, 억눌린 사람, 버림받은 사람, 마음의 깊은 상처로 인해 인격의 아름다운 부분이 상당히 손상된 사람이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옳은 것을 행할 수 있는 자신감이 솟아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절망, 의혹, 불확실성 그리고 좌절과 같은 내면의 복병이 이들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다. 더 큰 고통은 이러한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 깊어질수록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공허한 존재로 치부 될 수 있다는 서글픈 현실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제까지의 우리의 생각을 한순간에 바꾸어 놓으신다. 인생의 순위에서 상당히 뒤쳐진다고 멸시받는 사람, 정말로 복되다고 여겨지지 않는 사람에게도 창조적 미래가 있음을 분명히 하신 것이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닌가. 재능이 없는 사람, 버림받은 사람을 허물없이 환영하시고 받아주시고 계신다. 그들은 단지 하나님 앞에서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되기만 하면 된다. 즉 자신의 나약함을 고백하기만 하면 되고, 하나님의 전적인 도움을 의뢰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카이퍼에게 미학에 관한 깊은 통찰을 제공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움은 누리지만 영적으로는 거의 기근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문화 예술계에 참다운 아름다움의 소식을 전한 것이다. 카이퍼에 따르면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이 땅에서의 물질과 명예와 쾌락에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성실한 태도로 온화하게 변화되어 이 땅에서도 천국의 기쁨을 맛보고 살아간다. 그래서 크리스천은 세계 안에 남아 있는 선한 것들을 선망하고 문화를 창조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이 사실은 하나님이 모든 만물의 주재로서 그 안에 계시듯이 크리스천이 역동적으로 문화를 새롭게 하기를 기대한다는 전제에 근거한다. 그렇다면 크리스천은 문화계와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산소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 수많은 이들에게 행복한 삶을 선사하는 문화 예술의 가능태를 키워나갈 수 있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꿈을 꾼다면 진실로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할 수 있다.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칠 수도 있고 포로 된 자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정체성 형성에 머뭇거리지 않는다면 크리스천이 가져올 파급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가 된다. 우선 죄에 얽매인 갖가지 문화적 요소들을 소멸시킬 수 있다. 종래에는 가치체계에 대한 회의와 불신이 한층 가열되어 인간성마저 상실한 문화가 활개치고 다녔으나, 이제는 자유와 가치 있는 것을 위해 희생을 각오하는 용기 있는 크리스천 문화 예술가들이 부흥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 결국 크리스천 예술가들에게 세계는 하나님의 문화를 민첩하고 역동적으로 이루어가는 장소가 되며 문화의 정수와 본질과 의미는 새 땅에서도 계속된다. 즉 그것에는 영원한 미래가 있다고 한다. 이것이 카이퍼의 믿음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