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넘어 전문음악인으로 이룬 ‘기독예술인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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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 넘어 전문음악인으로 이룬 ‘기독예술인의 꿈’
  • 이덕형 기자
  • 승인 2013.03.28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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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신앙과 꾸준한 연습으로 전문음악인 배출한 ‘한빛예술단’

▲ 한빛예술단에는 30여 명의 전문음악인이 시각장애의 벽을 넘어 자신의 꿈을 이루어가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성장 원동력은 신앙과 연습이라고 말한다. <사진제공:한빛재단>

세계 유수의 발레단에 들어가 20여 년간 발레리나로 활동 중인 강수진 씨는 지난달 JTBC ‘미라클 코리아’ 프로그램에 참가해 한 명의 연주자의 공연에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피나는 연습으로 유명한 그가 한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에 눈물을 흘린 이유는 무엇일까.

강 씨는 이와 관련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 바이올리니스트가 무대에 오르기까지 뒤따랐을 어려움과 이를 위해 흘렸을 눈물과 땀방울, 그리고 노력이 마음을 움직였다”고 전했다. 이어 “피나는 연습과 노력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했을 무대였다”며 한 명의 예술인으로서 참가자 김지선 양의 연주를 높이 평가했다.

이화경향 콩쿠르에서 입상하기도 한 김지선 양은 JTBC가 주최한 ‘미라클 코리아’대회에서 통과하며 상금 1천만 원을 얻었다. 시각 장애의 벽을 넘어 한 명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전문음악인으로서 인정받은 것이다. 이런 그가 장애를 바라보기보다 꾸준히 꿈을 키워온 장소가 있다.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 주택가 한가운데 세워져 60여 년간 시각장애우들의 꿈을 키워온 한빛재단. 기독교 정신 아래 전문 음악인을 양성하는 그곳을 찾아가 보았다.

 

▲ 학생들의 바람을 담아 2003년에 시작된 음악에 대한 꿈은 2004년에 2년제 전문대 과정을 개강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그리고 꿈을 붙들고 10여 년을 지내온 지금 대내외적으로 그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사진제공:한빛예술단>

대중교통에 몸을 싣고 수유동 빨래골로 향하는 길. 서울정인학교에서 하차한 후 완만한 비탈길을 따라 주택 골목을 한참 오르다 보면 삼양로 73길과 77길이 모이는 삼거리를 만난다. 한빛재단이 위치한 이곳은 한빛맹학교를 비롯해 전문음악인의 꿈을 펼치는 한빛예술단과 한빛교회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한빛예술단은 시각장애 특수학교인 한빛맹학교 졸업생 및 재학생으로 구성된 시각장애인 음악단이다. 관현합주단인 ‘한빛브라스 앙상블’과 한빛 타악기앙상블, 연주단 및 한빛체리티 합창단과 한빛소리중창단으로 구성된 예술단에는 전문 직업인으로서 꿈을 키워가는 음악인들이 모이고 있다. 정식 단원만 30여 명.

김양수 이사장은 그 꿈의 시작에 대해 “안마사가 아닌 음악을 통해 전문음악인으로서 자라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꿈에 힘입어 사역을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남들이 모두 안 된다고 했던 꿈, 모두 다 실패할 것이라 말한 꿈에 도전한 것은 기독교인으로서 삶을 통해 헤쳐온 도전정신에서 비롯됐다.

이 꿈을 위해 2003년 한빛브라스앙상블을 확대 개편해 만든 것이 음악전문대학 과정. 같은 아픔을 안고 살아온 김 이사장은 “살아온 삶 자체가 도전이었다”며 “모든 것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하다 보니 전문교육과정이 필요해 마련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후 2003년에 시작한 이 음악교육과정은 2004년에 2년제 전문대 과정을 개강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전문 음악인이 되고 싶다는 하나의 소망. 그 꿈을 붙들고 10여 년을 지내왔다.

한빛예술재단이 그렇게 꿈을 좇아 기도하고 노력한지 오랜 시간이 지난 끝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이재혁 군과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선 양, SBS 스타킹 왕중왕 우승자 김지호 군, 뛰어난 가창력을 갖고 있는 이아름 양과 같은 절대음감을 지닌 예술인들을 발굴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꿈을 쫓아 뒤돌아볼 새 없이 달려온 길에는 말 못할 어려움도 있었다.

▲ 한빛예술단은 2010년 ‘LA 연주회’에 이어 2011년에는 미국 워싱턴 ‘케네디센터’의 무대에 올라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사진제공:한빛예술단>

# 우리는 남들보다 몇 배 더 노력했다
이들이 일반 전문 음악인과 대등하게 겨루기 위해 몇 배나 더한 노력의 흔적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연주를 눈을 감고 해야 하기 때문에 악보도 점자로, 음악도 녹음해 계속 들어야 했고, 악기를 다루는 일도 일일이 손으로 더듬어 가며 가르쳐야 했다. 손이 눈을 대신할 때까지, 악보를 만지지 않고 곡을 외울 수 있을 때까지 한빛예술단 단원과 관계자의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렇게 타인과 함께하는 합주와 협주도 말과 연습을 통해 가능하게 되어 높은 수준으로까지 하나씩 끌어올렸다. 식사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시간은 연습에 쏟아 붓는다. 그리고 매년 자체 평가에서 누락되는 단원들은 다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 같은 노력 때문에 이곳 학생들은 자신의 음악을 평가하는 요소 중 하나로 장애를 포함하는 것을 거부한다. 오히려 당당히 음악인으로 평가받길 즐긴다.

김양수 이사장은 “예술은 장애라고 해서 봐주는 것이 없습니다. 예술은 똑같은 것이다. 일반인과 똑같이 해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며 “장애를 뺀 예술인으로서 그 가치를 평가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렇게 발전을 거듭한 한빛예술단은 음악인으로서 객관적인 평가의 기회를 해외에서도 가졌다. 지난 2010년 ‘LA 연주회’에 이어 2011년 워싱턴 ‘케네디센터’의 무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또한, 지난해에는 한ㆍ중 수교 20주년을 맞아 중국 주중문화원에서도 연주회를 하게 됐다. 그곳에서 예술단원들은 시각장애인으로 무대에 올랐지만 음악인으로 평가 받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 한중수교 20주년을 맞아 한빛예술단은 지난해 12월 베이징 주중문화원에 초청되어 공연을 펼쳤다. 사진은 당시 공연 모습. <사진제공:한빛예술단>

# 믿음의 DNA를 물려주다
일반 전문음악인과 겨뤄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자신감의 근원에 대해 김 이사장은 신앙과 연습이 그 비결이라고 밝혔다. 매일 아침 드리는 예배뿐만 아니라 학교의 이수 과정 중 채플과 성경 과목을 포함하고 있는 한빛맹학교는 명실상부한 전통적인 크리스천 재단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하루를 예배로 시작하고 식사 시간 이외에는 거의 연습에만 매진하는 한빛예술단원들은 외부에서 보기에는 항상 활기차다.

김양수 이사장은 “시각 장애인에게 신앙이 주는 부분은 절대적”이라며 “학교 설립 이념이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없이는 장애를 갖고 이 세상을 살아가기가 쉽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인지하지 못하면 어려운 삶을 극복하지 못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신앙의 DNAㆍ믿음의 DNA를 단원과 학생들에게 물려주고 있다고 말한 그는 “고비도 많았지만 많은 눈물과 기도 아래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한빛재단이 지향하고 있는 비전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전문음악인의 요람으로서 한빛재단은 소박한 꿈을 꾸고 있다. 조직을 확대하기보다는 분리하고 주신 비전과 사역을 북한까지 이어질 수 있게 소망하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어느 조직이나 성장하면 결국 부패하게 되어있다”며 “이 재단을 필요 이상으로 크게 키울 생각은 없다”고 단언했다. 조직이 성장해 방만해져 썩어가는 것을 지켜보기보다는 오히려 분리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전했다. 또한 남은 사역에 대한 비전으로는 북한 사역에 대한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기독교인으로서의 비전은 통일이 돼 복음을 전하는 길이 열린다면 먼저 그곳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맹아재단을 세우고, 남은 생을 북에 남아 지역 시각 장애인을 섬기는 사역에 마지막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더불어 한국 교회에게 메마른 세상을 향해 조금 더 손길을 내밀 것을 부탁했다.

▲ 손이 눈을 대신할 때까지, 악보를 만지지 않고 곡을 외울 수 있을 때까지 한빛예술단 단원들의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 같은 노력 때문에 이곳 단원들은 자신의 음악을 평가하는 요소에 장애를 포함하는 것을 거부한다. <사진제공:한빛예술단>

# 절대음감으로 꿈꾸는 비전
한빛맹학교의 점심시간에는 다른 학교와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세 사람이 한 조가 되어 학교 인근 식당으로 식사를 하러 가는 모습은 이곳에서 낯설지 않다. 저시력 학생 한 명을 중심으로 세 사람이 함께한다. 서로 떨어지지 않게 팔짱을 꽉 끼고 흐릿하게 보이는 길을 서로의 눈이 돼 오고 간다. 보이지 않는 서로를 향해 그들은 웃음 짓고 같은 꿈을 꾼다.

인상적인 점은 영화관에도 함께 간다는 점. 영화관에서 이들은 머리로 모든 장면을 상상한다. 또한, 소리로 듣는 모든 것을 머리로 다시 그려내는 것이다.

구내식당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섬기고 있는 예술단원들. 그 사이에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아름 양과 재즈피아니스트 양한규 전도사를 만날 수 있었다. 한빛예술단 관계자는 두 사람 다 절대음감이라고 귀뜸했다.

지난해 9월 ‘슈퍼스타 K’에 출현한 바 있는 이아름 양은 아이유가 부른 ‘얼음꽃’으로 심사위원들로부터 목소리가 악기같다는 평을 얻은 바 있다.

최근 1집 앨범을 준비 중이기도 한 그는 자신의 꿈에 대해 최근 전환기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양은 “한 때 매스컴을 통해 펼칠 수 있는 꿈만을 생각해왔는데 최근 노래가 있는 곳은 어디든 장애는 없고 희망만이 남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지금의 꿈은 음악을 통해 장애ㆍ비장애를 넘어 모든 사람에게 희망과 감동을 주는 것이다”고 밝혔다.

특히, 최근 “성가대를 통해 많은 은혜를 경험했다”는 그는 “CCM가수 소향 같이 많은 사람이 은혜 받고 하나님과 교감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일에도 관심 있다”고 전했다.

매일 아침 한빛예술단 예배를 찬양으로 인도하는 재즈피아니스트 양한규 전도사. 그는 비록 앞을 전혀 볼 수 없지만 찬양을 포함해 1천여 곡을 머리로 암기하고 있다. 1996년 백석신학교를 졸업하고 2002년 백석예술대 음악과에 다시 진학한 그는 졸업 후 2008년부터는 예술단원의 일원으로 전문음악인의 길을 걷고 있다. 올해부터 단국대 대학원에서 음악교육학을 전공하는 그는 기독교정신으로 음악인의 꿈을 다시 펼치고 있다.

양 전도사는 “기독교인으로서 교회 예배와 관련해 음악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싶다”며 “예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음악을 연구하고 고민하며 다듬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당초 음악에 대한 달란트를 알지 못했던 그는 백석예술대와 한빛예술단을 거치면서 한 명의 기독교 전문음악인으로서의 삶을 꿈꾸게 됐다고 밝혔다.

한편, 2003년 창단된 한빛예술단은 세계 최초의 시각장애 오케스트라로서 2010년에는 장애인 문화예술단체로는 처음으로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기도 했다.

▲ 한빛예술단은 힘의 원동력이 되는 신앙의 DNAㆍ믿음의 DNA를 단원과 학생들에게 물려주고 있다. 그 일환으로 단원의 하루 일과는 예배로 시작된다. <사진제공:한빛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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