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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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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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11.13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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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목사 (의왕중앙교회)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어려운 교회와 목회자를 돕고, 농어촌 낙도의 교회 특히 미자립 교회 교역자 자녀들을 돕고 싶어서, 되지도 않는 플랜을 만들고, 세부적인 일들을 밤을 세워가며 기획하고, 여러 날, 여러 곳으로 기자처럼 자료를 모으기 위해 나서기도 하고, 찾아다니기도 했었다. 아내에게, 지인들에게 나의 생각을 전파하고 설득하기도 하는 등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았던 때가 있었다.

생각조차 없는 사람도 있지만 생각은 있으나 실천력이 없거나, 그 생각이 힘이 되기까지 이르지 못하거나 허망한 생각일 때도 있다. 그리고 뜻은 좋으나 무리한 것이거나 현실적이지 않아 생각에 머무를 경우도 허다하다.

나는 사도행전 3장6절 말씀에 무릎을 꿇고 항복한바가 있었다. 내게 있는 것에 관하여 소홀히 하고, 가지지 않은 것에 관한 생각과 관심이 컸다. 없는 것을 속상해 하면서 내게 없는 것을 가진 자를 비판하고 그들을 존중하지 않았으며, 도전하기 일쑤고, 몰아붙여 내 생각을 정당화하기에 열심히였다.

어느 날, 말씀을 읽는 중에 사도행전 3장에 이르렀고, 이 말씀이 나를 강력하게 사로잡았다. 사도는 없는 것을 주려고 하거나, 그가 구하는 것을 가지지 않았음에 아파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그에게 줄 수 있는 자신의 것을 찾았고, 그에게 주었으며, 미문의 앉은뱅이는 일어나 걷고, 뛰고, 새로운 인생을 찾을 수 있었다. 문제는 내게 있는 것, 내가 가진 것, 줄 수 있도록 내가 소유한 것이 무엇인가가 문제였다.

사도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졌고, 그 이름 예수와 예수님으로 그에게 치유를 주었다.
나는 목사다.

나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목사가 되었고, 평생을 그 이름과 함께 살았으며, ‘나’라고 하는 한 사람에게 그 이름 예수를 빼면 실로 ‘나’는 존재자체가 없으며 존재는 인정한다고 해도 그 존재로서의 값어치는 없다.

자랑스럽지 아니한가.

날마다 그리스도이신 나사렛 예수와 함께 눕고, 함께 일어나며, 그분으로 하루를 열고, 하루를 닫는다. 이 얼마나 숭고하고, 아름다운 인생인가. 그분의 이름으로 거룩하다하는 성직을 얻어, 어언 30년을 살았다.
나에게, 목사요 그러므로 성직자라 불리는 나에게, 구하는 사람도, 구하는 것도 많고 다양하다. 그럴 때마다 그들의 소리를 경청하고, 그들의 요구에 부응하려고 나름은 노력했다. 돌이켜 진정 그 요구 앞에서 과감히 그리고 진정성 있게 반응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들의 요구 대부분이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이었다는데 문제가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말이 아니라 실제를 가졌어야 줄 수 있을 것인데, 이론과 논리 그리고 당위성은 가졌으나 실로 그 무엇인가를 그의 필요를 채워 줄 수 있도록 실체를 가지지 못하였기에 주고 싶고, 주고 싶은 마음으로 애를 태우면서도, 진정 주지 못하고, 줄 수도 없는 허망함과 빈약함에 노출되어 헛기침만 해대는 것일 것이다.
진정 나는 무엇을 가졌는가.

내게 있어야 줄 수 있겠거늘, 진정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무엇을 줄 수 있는가. 진정 필요를 채울 수 있는, 네게 있는 그것이 무엇인가를 자문하는 것이다.

오늘을 사는 나를 향해 손을 내밀며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에게 목사인 나는 미문에 앉아 간절한 눈빛으로 도움을 청하는 그에게 불편과 청결을 이유로 자리를 걷어내고, 몇 푼의 동전으로 생색은 낼지언정, 진정 그의 필요를 충족하는 그 무엇을 줄 수 있는가?

사도는 가졌기에 줄 수 있었으나 예수의 사람으로 30년 목사인 나는, 거지처럼 가진 것이 없기에 아무것도 줄 수 없어 십자가를 붙들고 통곡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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