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나 보수의 정치 이데올로기에 얽매이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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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나 보수의 정치 이데올로기에 얽매이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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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8.22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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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규 교수 (서울대학교)

최근 통일에 대한 논의와 관심이 사회를 비롯해 교계에서도 최근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통일의 주역인 다음 세대의 역할과 비전제시의 중요성을 제시하는 포럼과 세미나 행사도 교계에서 많이 열리고 있다. 그 중 지난 14일에는 인천 송도 연세대 국제캠퍼스에서 기독 젊은이를 대상으로 한국교회평화통일대회가 열렸다. 이날 소개된 강연을 요약해 싣는다. <편집자 주>

2천년 전 나라도 잃고 소망도 없이 살아가던 가난한 민중들을 향해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한 그리스도의 말씀은 오늘 한국 사회에 절실하게 요구되는 기쁜 소식이다. 안팎으로 쉽지 않은 상황에서 힘들어하는 한국 젊은 세대, 특히 청년 크리스천에게 이 평화의 메시지는 새로운 삶의 동기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공해 준다.이와 함께 한국 교회도 통일이 추구하는 평화에 대해 보다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교회가 통일 운동의 주역으로 사회 세력화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북한과 관련한 기독교 내부의 이견과 반목을 지혜롭게 넘어서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는 뜻이다. 21세기에 한국 교회가 새로운 갱신과 변화를 통해 미래세대에 소망을 주려면 평화의 복음과 메시지에 대한 깊은 탐구가 필요하다.

평화를 위한 기도와 헌신, 땀이야말로 땅에 떨어진 한국 교회 공신력 회복에 소금과 빛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이를 위해 개교회 차원이 아닌 전체 차원에서 지성과 영성, 판단과 예지력, 선지자적 자기훈련이 동반돼야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젊은 세대의 열정과 헌신, 믿음과 사랑이 결정적인 자산이 될 수 있다.

또한 평화에 대한 관심은 물질주의나 성취주의에 사로잡힌 교회, 세속화된 한국 기독교 및 크리스천 갱신에 중요하다. 여유와 느림, 비움과 휴식, 자연과 명상 등의 가치는 생태론이 중시하는 새로운 생활양식이 중요한 내용인데 지금은 주로 불교의 종교성이 그에 가까운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정신없이 바쁜 경쟁사회에서 지치고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교회가 진정한 마음의 평화와 안식, 쉼을 주지 못하는 이유도 생태적 평화와 가치에 대한 관심이 미약함이 큰 이유라 할 수 있다.

한국 기독교가 개개인이 내면에 깊은 울림을 줌으로써 힐링 사역을 감당하려면 근대주의와 세속주의에 친화적인 교화문화보다 생태지향적이고 평화지향적인 것으로 바꾸어가려는 진지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크리스천은 숫자의 크기와는 무관하게 사회적 양심이며 미래의 희망이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상황을 꿈꿔야 한다. 이를 위해 크리스천 젊은이들은 다양해지고 다원적이 되어가는 세상 속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신학적, 윤리적, 시대적 성찰을 진진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개인주의와 민족주의, 세계주의 간의 균형감각도 필요하다. 기독교 복음은 본질상 어느 한편만 강조하거나 편드는 것일 수 없다. 요즘 젊은 세대를 사로잡고 있는 성공, 부, 권력, 강함, 기쁨, 자신감에 대한 욕망이 곧 크리스천의 존재양식일 수 없다. 크리스천 젊은이들이 영성과 자기노력, 그리고 하나님 축복을 통해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좌절, 가난, 복종, 약함, 슬픔, 등도 때로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고 이로 인해 고통 받는 이웃을 돌아보게 된다는 사실로도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이런 관심은 결코 패배주의가 아니라 근대성에 집착하는 역사적 기독교의 한계를 뛰어넘어 진실로 자유롭게 하는 복음,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심성을 창조하는 동력이 된다. 김용기 장로의 가나안 농군 학교는 지금까지도 농촌적 지향, 가난한 삶의 소중함을 유지하고 있고 장기려 박사가 보여준 나눔과 비움의 삶도 중요한 자산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은 독단적이고 배타적인 정체성 고수에서가 아니라 섬김과 화해, 평화를 만드는 자로서의 능력, 약자를 배려하고 함께 하는 공동체적 헌신에서 찾아야 한다.평화가 너무나 요구되는 시대에 크리스천이 왜 화해와 평화를 주도하지 못하는지 왜 평화를 원하는 사람이 더 이상 기독교를 바라보지 않는지, 왜 힐링과 치유를 원하는 사람이 교회의 메시지로부터 평안을 얻지 못하는지 깊이 반성해 볼 일이다.

스스로 진보나 보수의 정치 이데올로기에 메이지 않으면서 공의와 사랑, 비판과 포용의 양면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크리스천이 돼야 한다. 이런 내적 능력을 키울 때 스스로 평안을 누리는 사람이 되며 주위를 평화롭게 할 수 있다. 나아가 평화롭지 못한 사회를 변혁하고 갈등과 증오의 관계를 화해와 사랑으로 하나되게 하는 주역돼 한반도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실현하는데 동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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