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들의 시간, 이젠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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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들의 시간, 이젠 기억해주세요”
  • 이덕형 기자
  • 승인 2012.08.14 1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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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끝나지 않은 역사의 현장 ‘전쟁과 여성 인권박물관’

▲ '전쟁과 여성 인권박물관'. 2층에 이르면 이미 고인이 된 피해자를 추모하는 추모관이 있다.
2012년 6월 27일 일본대사관 위안부 정기수요집회. 이제 이곳에 매주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위안부 피해자는 단 한 명이다.김복동(87세) 할머니. 경상남도 양산이 고향인 그는 15살 때 중국 광둥 지방으로 끌려가 태평양 전쟁 기간 일본군 위안부로 전쟁의 아픔을 겪다가 살아서 돌아왔다.

같이 시위에 꾸준히 참석하던 길원옥(85세) 할머니는 얼마 전 당뇨병으로 입원해 더 이상 집회에 함께할 수 없는 처지다. 긴 아픔의 시간을 간직한 김복동 할머니는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마지막으로 정신적 안식처라 생각하는 곳이 있다. ‘전쟁과여성 인권 박물관’. 김 할머니가 여성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마저 잃어버려야 했던 전쟁에서의 아픈 기억을 남긴 곳이다. 많은 할머니의 아픈 기억이 잠들어 있는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을 찾았다.
 
# 잊지 말고 기억해주세요
한여름 지열로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섭씨 32도의 날씨.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 경성고교 사거리에 있는 용성빌딩 오른쪽 도로변 길을 조금 오르다 보면 왼편으로 카페 니스티브라운이 보인다. 그 사잇길로 80여 미터 주택가를 오르면 작은 2층 건물 하나를 만날 수 있다. 건물 외벽에 보이는 상징물 나비 팻말을 살펴보면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이라 쓴 글귀를 확인할 수 있다.

박물관 왼쪽으로 나 있는 좁은 입구. 평일 1시에서 6시까지 운영하는 이곳을 관람하는 순서는 다른 박물관과는 조금 다르다. 지상에서 지하로 그리고 다시 계단을 통해 2층을 관람한 뒤 1층을 관람하는 식이다.방문객이 건물에 들어서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곳은 건물과 건물 담 사이 작은 통로를 활용한 쇄석길이다. 4미터가 훌쩍 넘는 왼쪽 벽에는 소녀 네 명의 검은 실루엣이 그려져 있고 그 속에는 작은 꽃잎과 줄기가 들어 있다.

그냥 의미 없이 지나치기 쉽지만 자세히 보면 네 명은 키나 머리카락 모양을 포함해 모습이 각기 다르다.오른쪽으로는 과거 기억의 벽속에서 끝없이 할머니를 괴롭혀온 아픈 트라우마를 얼굴과 손 모양으로 형상화한 조각물을 확인할 수 있다. 10여 미터의 자갈길은 그렇게 지하 호소의 벽으로 이어진다. 14세 소녀는 그렇게 입이라도 하나 줄여보려, 전쟁 중에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걸어갔다.

길 끝 부분에는 할머니들이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그린 여섯 점의 그림을 만날 수 있다. 그림 중에는 김순덕 할머니가 다른 여러 명의 소녀와 함께 군인들로 가득찬 배에 실려 전쟁지로 가는 장면도 있다. 그날 떠났던 이들 중 대부분은 태평양 전쟁 말기를 거치며 현지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 아물지 않은 공간
계단을 내려가 지하로 들어서 처음 마주하는 곳은 작은 방 하나. 위안소를 재현한 공간을 만날 수 있다. 거적때기 두 개에 신발 한 켤레. 서너 평도 안 되는 작은 방은 허리를 다 펼 수 도 없을 만큼 천정이 낮다. 방에 있는 동안에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구조다. 일주일에 6일, 12시간에서 13시간 넘게 머물러야 했던 곳. 그 장소는 소박한 꿈을 안고 끌려온 소녀들이 몸도 마음도 하나씩 죽어간 무덤으로 남아 있다.

발길을 돌려 지하 전시관을 나와 계단을 향하다 보면 계단 자체로 하나의 전시관인 호소의 벽을 만날 수 있다. 벽면 곳곳에 할머니들의 사진과 평생 남기고 싶었던 말이 황토색 벽돌에 하나하나 새겨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지하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도 하나의 전시관이 되었다. 그곳에는 건물이 무너지거나 불에 타더라도 남을 말들이 건물속 벽돌 곳곳에 새겨져 있다.

한 많은 인생 남기고 싶은 말 한마디마저 소박해 애틋해지는 작은 바람들이 벽면을 한가득 메우고 있다. 그렇게 8천여 명의 바람, 3만여 자의 글로 새겨진 슬픈 목소리가 건물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다. 계단을 따라 2층에 이르면 왼쪽으로 밖을 향하는 추모관에 이를 수 있다. 이미 고인이 된 할머니들을 추모하는 곳이다.

검은색 벽돌마다 들어 있는 할머니 사진에는 세상을 떠난 날짜와 이름이 적혀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방문객들이 입구에 있는 꽃을 하나씩 헌화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벽돌 하나 하나가 추모기념비로 건물은 안과 밖 작은 공간까지도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발걸음을 옮겨 2층 건물 내부로 향하면 태평양 전쟁 당시 동남아와 중국 등지로 끌려간 역사적 배경과 당시 물품들을 관람할 수 있다.

역사관 전시물 중에는 전쟁 당시 사용한 군표와 화폐, 위안소 난고쿠료 출입증, 위안소 입장 시 사용한 위안권과 위안소 할인권(특별매전세 면제표), 당시 발생한 여성유괴 인신매매 사건 판결문 등이 전시돼 있다. 그 옆으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존자 할머니가 하나 둘, 증언을 시작한 계기와 지금까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한 흐름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터치 스크린을 활용한 생애관에서는 30여 명의 할머니 한명 한명의 삶에 대한 기록과 당시 사진, 신문기사 등을 살필 수 있다.

전시된 할머니들이 남긴 물품들은 대체로 소박하다. 정서운 할머니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손에 쥐고 있었던 십자가 목걸이, 염원을 이루기 위해 품고 다녔던 정신대 할머니 기금 주머니, 미술 치료를 위해 사용된 붓과 연필, 김학순 할머니가 1992년 제8회 여성대회에서 받은 ‘올해의 여성상’ 등이 전시물로 남겨져 있다. 2층에는 이와 함께 위안부 평화비가 세워져 있다. 국내에 둘밖에 없는 이 비석은 하나는 박물관에 나머지 하나는 서울시 성산동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져 있다.

수요집회 장소이기도 한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위안부 평화비는 설치된 위치상으로만 본다면 국내에서 일본대사관을 출입하는 사람들은 들어가면서 추모비를 옆으로 한번 보게 되고 나오면서도 추모비 소녀상과 눈을 마주칠 수 밖에 없게끔 배치되어 있다. 어떤 연유로든 방문객 전원은 70여 년 전 낯선 땅 전쟁터에서 소녀가 겪어야 했던 이야기를 피할 수 없게끔 되어 있다.
 
# 아픔이여 이젠 안녕
전시관 1층에는 전 세계 전쟁을 통해 같은 아픔을 겪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 코소보 그리고 콩고민주공화국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계속되는 아픔의 상처를 되새기고 기억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상설관 벽면의 한 글귀에는 “전쟁 중 일어나는 여성의 폭력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끊이지 않는 전쟁 속에 여성의 몸이 바로 전쟁터였고 여성에 대한 강간은 전쟁의 무기로 사용되고 있다”는 문구도 확인할 수 있다.
 
방문자 중에는 방학 동안 한국 역사지 곳곳을 방문하는 학생들과 일본인 추모 방문객, 그리고 외국인 방문자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방학을 맞아 박물관을 방문한 류홍석 씨는 “규모는 비록 작은 박물관이지만 작은 만큼 더 가슴에 와 닿는 면이 컸다”고 말하며 “여기서 느낀 안타까운 아픔의 역사가 잘 해결되길 바란다”는 말을 전했다.국내에서 공식적으로 정부에 위안부로 등록된 피해자 수는 260여 명. 비공식적으로는 그 수가 더 많을 것이라 추정하지만 현재까지 공식 생존자 수는 이제 63명에 불과하다.

남은 생존자의 평균연령은 80대 중 후반. 박물관 관계자는 “연령대로만 살펴보면 피해자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시간은 한 사람씩 차례대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한꺼번에 찾아올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전했다. 이어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여명기에 할머니들이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는 사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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