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특집] 전쟁고아와 과부 돌보던 NGO, 이제 한국의 이름으로 세계를 돕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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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특집] 전쟁고아와 과부 돌보던 NGO, 이제 한국의 이름으로 세계를 돕다
  • 정민주 기자
  • 승인 2012.06.13 1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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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발발 62주년 맞아 돌아본 ‘사랑의 손길’

6.25전쟁 당시 130여 개 NGO 원조활동
수혜국에서 후원국되어 전세계 희망 전해

어린이재단, 컴패션, 월드비전. 이 단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위해 구호활동을 벌였던 기독교적 단체라는 것이다.

이외에도 130여 개의 외국 개발 NGO가 한국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수많은 난민, 이산가족, 고아를 돕기 위해 원조활동에 나섰고, 우리나라는 전쟁이 끝난 후 당시 세계에서 가장 많은 개발 원조를 받았다고 한다. 한국에서 활동한 외국의 NGO들의 지원은 1953년부터 1970년까지 현금을 제외하고 양곡, 헌옷, 의약품, 기타 생필품의 구호물자가 총 115만 7천여 톤에 달했다. 이를 환산하면 약 2억 5천만 달러의 규모라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활동한 외국의  NGO 중에는 기독교적 배경을 가지고 구호와 선교를 했던 단체들이 많았다.

이들 단체 중 앞에서 언급했던 어린이재단, 컴패션, 월드비전이 어떤 활동을 해왔고, 또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 어린이재단
어린이재단은 1948년 10월 미국 기독교아동복리회(Christian Children's Fund)의 지원을 받는 CCF 한국지부로 출발했다. 미국의 클라크 목사가 해방 직후 어려웠던 구세군 혜천원, 구세군 후생학원, 절제소녀관 등 3개 시설에 있는 4백여 명의 어린이들을 도우면서 시작된 것으로, 이후 한국전쟁 발발로 본격적인 아동구호사업을 전개해 나갔다.

한국전쟁 이후 대부분의 전쟁고아들이 시설에서 보호됐기 때문에 CCF 한국지부는 시설아동 지원 중심의 사업을 전개했다. 1962년까지 전국 82개 시설로 지원을 확대했으며, 1955년에는 아동전문병원 부산보건원을 설립해 시설 어린이들을 위한 의료지원을 했다.

특히 1963년 CCF 한국지부는 어린이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시설 보호보다 어린이를 중심으로 한 가정 지원의 필요성을 느끼고 ‘아펜셀러어린이회’를 창립했다. 전국에 14개 분실을 개설하고 가정지원사업을 전개했으며, 아펜셀러어린이회는 1975년 사회복지관으로 이어져 오늘날 지역사회복지관의 효시가 되었다.
또한 시설아동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1968년 ‘아동복지조정관제도’를 도입했다. 아동복지조정관제도는 객관적인 평가 기준에 의해 정기적으로 아동시설의 복지 수준을 평가하고 이에 따라 지원을 차별화하는 것으로써 시설지원사업의 질적인 향상을 도모했다.

한국의 경제 성장에 따라 CCF는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 빈곤국가 지원을 위해 1976년 한국 지원 종결을 공포하고 ‘지원종결10개년계획’에 의해 CCF 한국지부가 한국 내에서 민간기관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했다.

CCF의 한국 지원 종결 발표에 따라 1979년 ‘한국어린이재단’으로 이름을 바꾸고, 국내 후원자 개발을 위해 결연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이런 노력으로 1981년 정부로부터 전국 불우아동결연사업을 위탁받아 16개 도지부를 개설하고 어려운 아동들을 경제적, 정서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또한 어린이재단은 불우아동결연사업 뿐만 아니라 사회복지관, 가정위탁보호, 아동학대예방, 미아찾기 사업 등 자주적인 사업을 전개하는 한편 아프리카, 베트남, 캄보디아 등 해외 빈곤 아동에 대한 지원을 하며 국제적인 기관으로 성장했다.

한국어린이재단은 2008년 UN 아동권리협약을 기초로 아동을 주요 사업대상으로 하여 사업체계를 개편하고, 법인 명칭을 다시 ‘어린이재단’으로 변경해 아동복지 지원 모금기관으로 도약하고 있다.

# 컴패션
한국전쟁 때부터 1993년까지 40여 년간 미국과 전 세계 후원국으로부터 10만 명 이상의 한국 어린이를 양육했던 컴패션(Com passion). 그들이 후원했던 어린이들은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해 우리 사회를 이끌었다.

또한 10년 후인 2003년 11월, 우리나라는 컴패션의 열 번째 후원국으로 다시 태어나게 됐다. 컴패션 안에서 수혜국에서 후원국이 된 유일한 사례인 한국은 전 세계 어린이들과 수혜국의 희망이 되고 있다.

컴패션의 시작은 1952년 겨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에버렛 스완슨 목사는 미군 병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그는 거리에 쓰레기와 뒤섞여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 속에 죽어가는 어린이들을 목격했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이 죽어가는 어린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도전을 받게 된 스완슨 목사. 이후 그는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한국 어린이들의 비참한 실상을 알리며 그들을 후원해줄 것을 호소했다.

그리고 2년 뒤인 1954년, 스완슨 목사는 한국에 고아원을 세우고 어린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며 음식과 옷, 살 수 있는 공간, 의료 혜택 등을 제공하는데 힘썼다. 하지만 그는 부모를 잃은 아이들에게 ‘한 사람의 따뜻한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한 아이가 한 후원자나 후원가정 또는 교회와 1:1 결연을 맺어, 물질적 후원은 물론 사랑하는 마음까지 받을 수 있도록 했다.

1956년에는 ‘에버렛 스완슨 전도협회’라는 비영리법인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후원금 관리와 복음 전파 활동을 시작했다. 전도협회는 1961년까지 한국의 108개 고아원과 가정을 지원했고, 1962년 스완슨 목사는 마태복음 15장 32절의 ‘내가 무리를 불쌍히(compassion) 여기노라’는 말씀에서 영감을 얻어 전도협회의 명칭을 ‘컴패션’으로 개명했다.

한국에서 시작된 컴패션은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아이티, 인도, 르완다 등으로 수혜국을 확대해 나가는 한편, 가구지원프로그램ㆍ해외 장학금 프로그램ㆍBAK(Bibles for All Kids) 프로그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하며 수혜국들을 돕고 있다.

2003년부터 후원을 시작한 한국컴패션은 2010년 1:1 결연 후원 어린이 8만 명을 돌파했으며, 11개 후원국가 중 미국과 호주에 이어 후원규모 3위로 등극하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줬다.

# 월드비전
월드비전(World Vision)은 62년 전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태어났다. 1950년 9월 6.25 전쟁 당시 미국인 선교사 밥 피얼스 목사는 한경직 목사 등과 함께 전쟁으로 생겨난 수많은 고아와 미망인을 돕기 위해 ‘한국선명회’를 설립,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들로 인해 나의 마음도 아프게 하소서!”라는 밥 목사의 기도는 월드비전의 정신이 됐다. 선명회라는 이름은 월드비전이라는 영문 명칭을 한문의 뜻으로 맞춰 쓴 한국어 명칭으로, 1999년부터 전 세계 모든 월드비전 회원국의 합의로 ‘한국월드비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월드비전의 초기사업은 전쟁에서 부모를 잃은 어린이들을 위한 육아원, 영아원, 맹아원, 농아원 등의 시설지원이 주를 이뤘다. 1970년대까지 150개의 시설을 지원했으며 점차 시설 어린이들의 교육과 신앙, 의료분야에 대한 도움을 주는 것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1954년부터는 아동병원을 설립하며 1980년까지 54만여 명의 시설 어린이들과 영세 가정을 위한 의료지원을 했으며, 1959년 서울 남대문 5가에 선명회 특수 피부 진료소를 세워 1980년까지 42만여 명의 나병환자를 치료했다. 또한 1960년에는 선명회 합창단을 창단해 시설 어린이들의 정서함양에 기여하며 활발한 모금활동을 펼쳐나갔다.

1971년에는 음성나환자정착촌 지원을 1972년에는 선명회 직업보도소를 개설하여 음성나환자와 시설 아동들의 자립을 돕기도 했다. 또한 1974년에는 선명회 최초의 사회복지관인 성남사회복지관이 개관되어 도시 영세민 지원을 시작했다.

1981년에는 지역사회 개발 사업을 시작했다. 낙후된 농어촌을 대상으로 5년간의 장기적 개발 사업을 실시해 지역 주민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다.

마침내 1991년 10월 월드비전은 국제본부를 통해 받아온 외국 원조를 받지 않고 경제적으로 자립하게 됐다. 한국월드비전은 1994년부터 모금을 통해 국내뿐 아니라 북한 등 해외사업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한국월드비전은 현재 몽골, 미얀마, 잠비아 등 48개국 191개 사업장(2009년 3월 기준)에서 식수개발, 재난구호, 영양급식 사업 등을 전개하고 있다.

월드비전 홍보팀은 “한국전쟁 당시 월드비전은 전쟁고와와 과부들을 돌보며 기본적인 식량과 위생보건 사업을 펼쳤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잿더미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도록 교육과 직업훈련 사업을 진행했다”며 “그 시절 후원을 받은 어린이들은 훗날 한국경제 발전의 주역이 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1991년 한국이 수혜국에서 후원국이 된 것에 대해 “받은 사랑은 또 다른 사랑으로 나눠야한다는 것을 몸소 실천한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월드비전은 또 “밥 피어스 목사의 기도가 월드비전의 정신이 된 것처럼, 한국 교회는 기독교 사랑의 정신을 가지고 아픔 중에 있는 나라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도와야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며 “우리나라가 여러 나라에서 전해오는 사랑의 정신으로 희망을 찾았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세상의 아픔들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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