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엔 큰 꿈을 꾸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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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엔 큰 꿈을 꾸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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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12.28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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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제 목사 (평촌평성교회)

한 때 대한민국 대표적인 기자와 앵커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조정민 기자가 목사가 된 후 간간히 트위터에 올렸던 글을 묶은 책이 나와서 꽤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그 책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스물에는 세상을 바꾸겠다며 돌을 들었고, 서른에는 아내 바꾸어놓겠다며 눈꼬리를 들었고, 마흔에는 아이들 바꾸고 말겠다며 매를 들었고… 쉰에야…바뀌어야 할 사람 바로 나임을 깨닫고 들었던 것 다 내려놓았습니다. 뭘 들고 계세요?”

이 말은 사실 조정민 목사가 처음 한 말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의 입을 통해 더 예리해지고 더 설득력 있어진 것 같다.

사실 기자였던 그 분 뿐 아니라 목사로서 살아온 우리 모두도 같은 마음 아닐까 싶다. 필자도 목회를 처음 시작할 무렵 교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개혁적인 생각도 많이 했다. 필자의 눈에는 앞으로 해야 할 많은 일들이 많이 보였고, 또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런데 목회한지 20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그 생각을 놓치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해 온 때문인지 그 때 그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은데 한 가지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 것 같다.

꿈이 작아진 것이다. 작아졌다기보다 꿈에 관한한 나 자신이 주도하려는 생각을 다 내려놓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사실 목회는 ‘내 꿈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임은 진작에 받아들였다. 남들은 해도 나는 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사실도 아무 억울함도 없이 다 받아들였다. 그렇게 하다 보니 목회의 후반에 진입하면서 나의 바람은 두세 가지로 압축됐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은퇴할 때까지 신선하게 설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본인 스스로 게으르지 않기를 다짐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감을 더 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나 자신의 지금 여기 있음이 복음에 방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교계를 보면서 절박하게 느끼는 것은 목회자가 큰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복음에 방해만 되지 않아도 좋겠다는 것이다. 정말 목회자의 인격과 삶이 (예수님을 닮는 것은 놔두고) 복음에 방해만 되지 않아도 그 나머지는 말씀이 다 알아서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바울이 디모데에게 부탁한 “주인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준비되라”는 것도 같은 뜻 같다. 얼마 전 이 말씀을 묵상하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바울은 사역자로서 디모데를 하필이면 그릇으로 비유했는가 하는 것이다.

잠시 거기에 머물러 생각하는 데 두 가지가 떠올랐다.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 사역자의 수동적 입장이었다. 그릇은 자신이 나서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꺼내어 쓰는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꺼내 쓰실 때 쓰이는 것이지 우리 스스로가 자신을 내세울 일이 아니라는 것일 게다.

또 바울이 사역자를 그릇에 비유한 이유는 아마도 그릇은 무엇인가를 담아서 보관하거나 운반하거나, 대접하는 데 쓰기 때문일 것이다. 주님은 사역자의 입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을 사용하는 것이다. 사역자의 인격 안에 무언가를 담아서 세상에게 맛보이고, 전하려 하신다는 것이다. 바로 그 목적을 위해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깨끗함이다. 깨끗하지 못한 그릇에는 어떤 귀한 것을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깨끗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 시대의 각종 죄악과 그릇된 가치관과 사상, 가르침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만일 우리의 삶과 인격이 그런 것들에 물들어 있고, 사는 방식이 세상 사람들이 사는 방식과 비슷하다면 주님이 우리 안에 아무 것도 담을 수 없을 것이다.

정치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교계에서도 일어나고, 그들과 꼭 같이 금권선거를 하고 언론 플레이를 하고, 그들과 꼭 같은 항목에서 목사의 이름들이 나란히 거론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당신의 귀한 뜻과 목적을 담을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생수라도 그런 그릇에 담으면 사람들은 마시기를 거부할 것이다.

결국 우리 자신이 해야 할 일은 크고 위대한 일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단지 우리 자신이 복음에 방해만 되지 않아도 말씀은 역사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가 정말 목사답고 장로답고 집사나 권사다운 것 외에 더 간절하게 요청되는 것이 무엇일까 싶다.

새해에는 큰 꿈을 꾸지 않으련다. 오히려 내 자신이 주님께 방해만 되지 않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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