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과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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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과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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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11.30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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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찬 목사 (백석신학교 학장)

사업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 하는 상행위요, 가업은 국가와 가문의 전승을 위해 하는 업이다.

오늘날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하여 국익이나 교회유익이나 가문의 유산은 무시되고 모든 일을 비즈니스화하고 있다. 곳곳에서 시위를 하고 집회를 가진다. 그러나 그렇지 않는 시위와 집회도 있지만 대부분은 차기 정권을 잡기 위한 총선과 대선을 노린 정치적 사업이거나 개인의 인기 쌓기를 위한 준비운동이다.

모든 일을 사업논리로 행동하는 사람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공동체나 국가를 희생시킨다. 그래서 짝퉁을 만들고 몸에 해로운 약을 속여 팔고 기초생활수급자나 생활력이 없는 노인들까지 속이며 자기 유익을 챙긴다.

이는 모두 사업적 아이디어에서 나온 발상이요, 인생을 사업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업은 다르다. 어떤 도자기 만드는 인간문화재는 고려 청자기의 가업을 이어가기 위해 팔리지 않고 돈벌이가 되지 않아도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자신에게 이어오는 가업 때문에 그 일을 한다. 이는 눈에 보이는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 자기문화와 전통의 맥을 이어가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이 나라의 독립과 부강한 나라를 이어가기위해 국가를 위해 전 재산을 내어놓고 애국지사의 조상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오늘날의 선거는 개인이나 당의 유익을 위해 비즈니스하여 얻은 소득이다. 국익을 위해 희생한 일도 없고, 국민을 위해 목숨 건 일도 없고, 헌신의 본을 보인 적이 없다.

그러나 잘 광고된 물건이 많이 팔리는 것 같이 백성들의 비즈니스 심리만 잘 이용하면 많은 표를 얻어 권력을 얻는다. 그러나 아담스미스의 『국부론』에 보면 국가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가업을 잘하는 사람들이 국가를 부강케 한다고 하였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는 비즈니스를 하는 사장이 아니다. 예수님은 교회가 장사하는 곳과 강도의 소굴이 되는 것을 엄히 책망하셨다. 교회는 어느 누구의 사업장소가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유업을 이어가기 위한 하나님의 집이다. 하나님의 집의 일은 하나님의 가업이다. 성경도 믿음의 가업을 유업이라고 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때 이분들이 만두가게를 3대째 이어오는 집안 같은 사업의 전승이 아니요, 조상 때부터 이어오는 믿음의 기업을 이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육신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나라의 유업을 이어가지 못한다고 했다.

신앙과 교회생활과 선교와 교회사역까지도 비즈니스식이 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 집의 가업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나라의 유업이 되어야 한다. 내게 손해가 나고 희생이 따르더라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교회유익이 되면 희생할 줄 아는 하나님 집의 가업을 이어갈 차세대지도자들이 많이 나와야한다.

어떤 교수님이 학생들을 불러놓고 비어있는 큰 유리항아리를 가져오라고 하였다. 그 유리항아리는 투명하게 모두가 볼 수 있었다. 그때 유리항아리에 배구공으로 채우라고 하였다. 공으로 유리항아리를 채운 후 물었다. “무엇으로 꽉 찼습니까?” 모두 말하기를 “공으로 가득 찼습니다” 라고 했다. “공으로 꽉 찼으니 더 채울 수 없겠지요?” 하니 모두 그렇다고 했다.

그때 그 교수님은 완두콩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리고 공사이로 완두콩을 부었다. 많은 학생들에게 물었다. “무엇으로 꽉 찼습니까?” “배구공과 완두콩으로 꽉찼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더 채울 수 없겠지요?” 하고 다시 물으니 모두 “네”라고 답했다. 그때 모래를 가져오라고 하였다. 모래를 가져와 배구공과 완두콩으로 가득찬 사이로 부었다. 이번에는 모래로 빈항아리가 꽉 차게 되었다. 교수님은 설명했다. “처음에 배구공으로 채웠으니 완두콩으로 채우고, 또 모래로 채워졌지만, 만약 처음부터 모래로 이 빈 항아리를 꽉 채웠다면 완두콩도 모래도 채울 수 없었을 것입니다” 라고 했다.

공이 큰비전과 이상과 꿈과 국익과 교회사명이라면 모래는 자기의 욕심과 탐욕과 시시한 사욕이라고 할 수 있다. 시시한 욕심과 이기심으로 먼저 꽉 찬 마음으로는 더 큰비전과 믿음과 이상과 성령으로 채울 수는 없다.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이시므로 처음부터 사소한 이익과 욕심으로 꽉 찬 심령의 사람은 하나님의 큰 사명을 마음에 담고 실천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큰 사명을 마음에 담은 사람은 사소한 일들은 능히 채우며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국가를 사업의 논리로 행할 것이 아니라 가업과 유업의 논리로 행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교회 일도 사업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업이요, 유업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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