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인 사건’, 서구 선교사 및 해외교회 활약 돋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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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인 사건’, 서구 선교사 및 해외교회 활약 돋보여
  • 이덕형 기자
  • 승인 2011.11.10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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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역사연구소ㆍ기독교역사학회 공동 학술 심포지엄 개최

▲ 일제시대 독립운동 중심세력을 제거할 목적으로 서북지역 기독교인들을 체포해 고문한 '105인 사건'을 재조명하는 학술 심포지엄이 지난 5일 새문안교회 언더우드 교육관에서 열렸다.
지난 1911년 일본총독부가 조선 식민통치를 강화하고, 반일 민족 저항세력들의 민족해방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목적으로 서북지역 기독교인들을 체포해 고문한 ‘105인 사건’을 재조명하는 학술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지난 5일 오후 2시 새문안교회 언더우드교육관에서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소장:김흥수 박사)와 한국기독교역사학회(회장:류대영 박사)에 의해 진행된 이날 심포지엄은 △105인 사건과 선교사(김승태) △105인 사건과 문명관의 대립(이성진) △105인 사건 연루자의 사건 이후 행적과 친일활동(윤경로) 등을 주제로 진행됐다.

‘105인 사건’은 독립운동의 한 중심축을 담당했던 서북 기독교 독립운동 세력을 제거할 목적으로 날조된 것으로써 기독교 신자들이 데라우치 마사타케 총독의 암살을 기도했다는 누명을 씌워 1천232명을 기소, 그 중 700명을 체포하고, 이 중 105인이 최종 유죄판결을 받은 사건으로 ‘데라우치 총독 암살 미수사건’이라고도 불리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한편, 이날 ‘105인 사건과 선교사’를 주제로 발표한 김승태 교수(세계선교신학대학 강사)는 “사건이 일어난 후 미국 북장로회 해외선교부 브라운 총무는 처음 얼마동안 사태파악을 위해 관망했지만 이 사건이 일제 경찰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일본 대사관과 직접 교섭하거나 여러 선교부들과 연합해 대책을 강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당시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선교사들은 구속자 면회 및 변호를 맡았으며, 에든버러 세계선교대회 계속위원회 및 미국 남감리교 해외선교부와 다른 해외 선교부 총무들에게 협조를 요청하고, 재판 직전에는 사건과 관련된 편지와 공문들을 언론에 공개하는 등 일본총독부에 압박을 가하며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지도록 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에든버러 세계선교대회 계속위원회는 이 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정식 의제로 채택하고, 각국 위원들을 통해 해당국 일본 대사관에 압박을 행사했으며, 영국 선교연합회는 영국 주재 일본 대사관에 공정한 처리를 요구하는 등 서구 교회들도 105인 사건에 많은 관심을 갖고 큰 영향을 끼쳤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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