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30강)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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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30강)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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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6.0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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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루병 앓던 여인의 치유

갈릴리 호수의 풍랑을 잠잠케 한 사건은 자연에 대한(막 4:35-41), 거라사 광인(狂人)을 치유한 사건은 귀신에 대한(막 5:1-20) 주님의 권세를 보여준 것이라면, 이어지는 다음의 두 이야기는 질병과 죽음에 대한 주님의 권세를 강조하고 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의 소생(막 5:21-24, 35-43), 혈루증 여자의 치유(막 5:25-34). 이 두 이야기는 마가복음의 문학적 특징 중 하나인 샌드위치 구조를 잘 드러내고 있다.

양쪽 이야기와 가운데 이야기가 서로 대조 혹은 비교됨으로써 중요한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다. 여기서 두 이야기의 주제는 믿음에 의한 치유 및 구원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34절),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36절). 특히 혈루병 앓는 여인의 믿음은(28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큰 광풍 앞에서 믿음 없이 행하였던 제자들의 불신앙과 매우 대조를 이루고 있다(막 4: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5장의 기적 이야기에서, 질병의 치유는 영적 구원의 비유와도 같다고 하겠다.

여기서 또 하나 우리의 관심을 끄는 대목은 주님이 불쌍히 여겨 고치신 대상이 모두 당대 유대 사회에서 비천하게 간주되던 여자들이었다는 점이다. 하나는 여자 어린이고, 다른 하나는 하혈(下血)로 인한 더러움으로 인해 종교적으로 부정(不淨)하게 된 여자였다. 이처럼 약하고 비천한 이들에 대한 주님의 관심은 낮은 데로 임하신 모습으로, 오늘날 모든 그분의 제자들이 여전히 모방해야 할 귀감(龜鑑)이다. 주님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치러 가면서도, 비천한 여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셨다.

두 사람 모두 절망적 상태에 빠져 있었다. 회당장의 딸은 아예 죽어 더 이상 소망이 없는 상태였고(35절), 또한 특별히 이 여인은 만성 질병으로 인해 거의 절망적 상태에 놓여있었다: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26절) 이처럼 모든 인간적 수단과 방법이 무용지물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역사하신다.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의 시작인 것이다.

여인의 괴로움은 12년 동안 계속 되어온 하혈이었다. 그동안 백방으로 모든 노력을 기울였으나 허사였고, 오히려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게다가 하혈로 인해 종교적으로 부정하게 되어 온전한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여인과의 접촉은 곧 그를 부정하게 만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레 15:25-30). 그렇다면 이 여인은 12년 동안이나 사회로부터 분리된 채 살았을 것이다. 26절에 의하면, 여인은 아마도 얼마 더 살지 못할 만큼 질병이 악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여인의 행동은 사람의 능력이 그의 의복에 닿아있다는 고대인들의 통속적 믿음을 반영한다(행 19:11-12, 참고, “그림자” 행 5:15). 여인의 치유에 대한 마가의 표현은 주목할 만하다. “마르매(stopped)” “깨달으니라(felt)”는 모두 부정과거(aorist) 시제인데, 이는 여인의 치유가 완성되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또한 “(병이) 나은 줄(was freed or healed)”은 완료시제인데, 이는 치유의 결과로 이제 더 이상 고통 중에 있지 않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요컨대, 주님 사역 초기의 나병환자 치유에서 보듯이(막 1:40-45), 주님의 능력은 그녀를 즉시 치유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주님의 의사와 무관하게 기적이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여기서 주님의 신성(神性)이 드러났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30절)는 질문에서 그의 인성(人性)의 한계가 드러났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점에 있어서, 주님은 그를 만진 자가 누구인지를 알았으나 공개적으로 그 신분을 드러내기를 원하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첫째로, 자신을 단지 기적을 행하는 신인(神人)으로 오해하는 것을 막고자 하였으며, 둘째로 그녀의 믿음을 고백하도록 이끄시기 위함이었다. 주님은 그녀에게 혈루병의 치유가 육체적 접촉이나 어떠한 종류의 마술이 아니라 오직 믿음에 의해 이뤄졌음을 설명하셨다(34절). 여기서 마가가 완료시제(“구원하였으니,” 34절, σωζω)를 사용한 것은 역시 믿음에 대한 강조이다. 이로써 주님은 질병의 치유만이 아니라 동시에 여인의 영적 구원을 또한 확증하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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