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현 이지현 집사 부부는 제가 30대 초 개척했을 때 성도입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이상현 집사는 태국에서 건실한 사업을 운영하는 사장이 되었구요.
중1 꼬마 여학생이었던 이지현 집사는 이제 군대 간 아들 둘을 둔 엄마가 되었습니다. 30대 초 겁 없이 개척한 젊은 목회자와 당시 성도이자 학생이었던 친구들에게 온 세상은 우리들 것이었고, 천지가 놀이터였습니다.
맨 처음 동계수련회라는 이름으로 봉고를 끌고 7~8명이 모여 양평 한화콘도에 가서 밥도 함께 해 먹었는데, 세월은 이 친구들이 커다란 자녀들을 둔 부모가 되게 했습니다.
개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자그마한 교회 학생들은 교회 지체이자,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성도이자, 목회자의 친구요, 제게 괴롭힘과 학대(?)를 당하던 녀석들이기도 했습니다.
고등학생만 되어도 저보다 덩치가 큰 녀석들을 힘으론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어, 남학생들의 머리를 물기도 하고, 엉덩이를 걷어차기도, 헤드락을 걸기도 했거든요. 그렇게 학대를 당하던 이상현 집사가 성균관대학교를 다니는 아들이 군대에 간다고 태국에서 들어와 주일예배에 가족과 함께 참석했습니다.
아들과 비슷한 덩치, 생김새도 비슷한 아버지와 아들, 30여 년 전 제게 괴롭힘을 당하던 고등학생 이상현으로 갑자기 시간이 되돌아가더라니까요.
“너 몇 살이냐?”, “48살입니다.”
“아들은 몇 살이고?” “21살입니다.”
“그럼 좋다~! 너희들은 대를 이은 학대를 당해 보거라~~~~”
아버지와 아들 둘 머리를 안고, 한 번씩 머리를 물어 주었습니다.
그 옛날처럼 엄살떠는 모습도 아버지와 아들은 비슷했구요. ‘씨익~’ 멋쩍게 웃는 모습까지도 닮았습니다.
이상현 이지현 부부에게 우리 성만교회는 ‘고향’일 겁니다.
언제나 다정함과 따뜻함 그리고 정감을 주는 과거가 있는 장소, 정과 추억을 쌓았던 시절이며 그 옛날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그런 장소 말입니다.
‘참~! 복 있는 가족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나 외롭고 힘들고 지치면 돌아가 기댈 언덕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으니 말입니다. 떠돌이 성도, 가나안 성도들은 이런 추억을 기대할 수 없을 겁니다.
힐링이라는 단어로 그 외로움을 덜어보려고 하는 시대에 고향을 잃어버렸기에 돌아갈 어떤 것도 남지 않은 세대에게 교회가 이 시대의 ‘고향’이 되어 주어야 한다는 마음이 이들 부부 가족을 보면서 더욱 확신이 들었습니다.
교회에서 마음껏 뛰노는 다음 세대들의 웃음을 지켜주는 세대가 우리 어른 세대의 책임이기도 하다는 생각과 함께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