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만능 경제에 ‘은혜’를 도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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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만능 경제에 ‘은혜’를 도입하라
  • 최창민 기자
  • 승인 2011.06.0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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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나라의 경제학

현대 사회에서 기독교는 경제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성도들이 그렇고 목회자들이 그렇다. 경제논리가 교회의 성패를 좌우하기도 하고, 성도들의 삶에 지배적으로 개입하기도 한다. 어느 누구도 경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일반적으로 오늘날 경제는 ‘최소 비용을 통한 최대 생산성 추구활동’을 의미한다. 사회는 이런 정의 속 경제 활동에 익숙하다. 누구도 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경제 활동에 대해 비난하지 않는다.

# 성경적 경제의 관심
하지만 기독교인은 다르다. 기독교적인 경제윤리를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등장하는 경제, 하나님 나라의 경제학은 어떤 구조와 의미를 담고 있을까. ‘구약성서와 하나님 나라 경제학’이라는 주제로 지난달 26일 숭실대학교에서 다섯 번째 목민강좌가 열렸다.

기독교 경제윤리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이날도 학부생, 대학원생은 물론 청강생들까지 강의실을 가득 메워 그 열기를 증명했다. 이날 열기는 오늘날 경제 구조가 가지고 있는 모순과 부조리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강연에 나선 김회권 교수(숭실대 기독교학과)는 성경은 수요공급을 통해 자기조정능력을 발휘하는 자유주의적 시장 경제활동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구약성경은 대부분 공동체의 유지와 존속에 목적을 두는 생존경제를 상정한다”고 지적했다.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공동체의 존속을 위한 대의명분에 종속된 경제였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구약에서 경제는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는 실험과 시험영역이었다”며 “하나님의 은총과 구원, 심판과 저주를 동시에 경험하는 신앙적 진실성의 시금석”이라고 표현했다. 즉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대한 순종은 경제적 번영과 영속적 정착을 보증하는 하나님의 복을 담고 있었다. 반면 경제적 몰락은 땅과 자유의 상실, 이집트 노예 생활로 전락하는 심판과 저주를 의미했다는 설명이었다.

이어 구약의 경제는 “공동체의 존속과 번영을 위한 자원의 배분과 활용을 통한 공동체 구성원 살림살이를 가리켰다”며 “불의한 사회구조, 법, 관습, 강한 자들의 탐욕 때문에 가난하게 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와 돌봄이 주요 관심사였다”고 밝혔다.

# 성경적 경제의 적용
구약의 경제를 오늘날 적용한다면 일자리 나누기, 실업 수당, 복지·장애 수당 등을 통해 사회에 소속돼 있다는 자긍심을 고취시켜주는 역할에 관심을 갖고 앞장섰다. 김 교수는 “구약의 경제 안에는 하나님 나라의 핵심 요구가 들어 있다. 간신히 먹고 사는 경제, 남는 것은 이웃을 위해 도와주는 경제”라며 “공동체를 상하게 하는 일보다는 적게 먹고 저준위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문명사가 진행될수록 하나님의 진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하나님 말씀은 낯설고 급진적으로 들리게 된다”며 “오늘날 구약의 경제학이 급진적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은 경제에서도 이 세상보다 더 진짜 세계가 있다는 확신을 준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우리가 성경에 등장하는 경제 관련 문제를 적용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불순종의 참호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라며 “구약을 정말 적용하려고 마음먹으면 진짜 대한민국이 바뀔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제제일주의에 빠진 한국 사회를 향한 우려도 내비쳤다. 그는 “아무리 화폐를 벌어도 인구가 감소하면 경제가 몰락하는 것”이라며 저출산 현상에 대해 우려하고 “경제 논리로 1천6백만 노동자를 노동유연성 안에 묶어두려 한다. 이는 언제든지 해고가 가능한 노예 상태다. 항구적인 직장이 없는 경제적 심판의 형태인 재노예화”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성경은 경제활동의 자율 추구를 반대했다. 공동체 안에 소속돼 책임감을 고취시키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경제가 성경적 원리”라며 “경제에 은혜의 개념을 도입하는 순간 초대교회의 유무상통 운동, 희년 운동, 아파트 거품빼기 운동 등 상상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교회 십일조만 사회에 환원해도 죽음의 경제, 반공동체적 경제는 오작동할 수밖에 없다”며 “무료, 은총,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배당되는 국민소득 개념이 도입되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결국 성경적 경제활동은 개인과 가정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공동체, 국가, 세계적 시민 의식 속에서 소속감을 가지고 ‘돕는 경제’, ‘은혜의 경제’를 실현시켜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존F. 캐버너는 그의 저서 ‘소비사회를 사는 그리스도인’에서 “우리의 경제 체제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기 원하는 이들의 믿음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며 “세계의 빈곤 문제, 양극화, 교도소 인권 유린, 군비 경쟁, 자원 남용과 낭비 등은 기독교 신앙의 지극히 은밀하고도 인격적인 영성이 다뤄야할 문제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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