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파야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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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파야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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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2.16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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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상기 목사<예수로교회>

이집트에 불어 닥친 민주화 열풍은 현대판 파라오로 불리던 무바라크의 30년 독재 체제를 단숨에 몰락시켰다.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에 자극 받아 시작된 반정부 시위 18일 만의 일이다. 키파야(Kifaya)란 아랍어로 ‘충분하다’ ‘족하다’란 뜻이다. 더 이상의 독재와 부패의 정권 연장은 안 된다는 말이다.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Tahrir-해방)광장에서 이번에 가장 많이 외쳤던 시민혁명의 구호였다. 헛된 탐욕의 인간의 바벨탑은 키파야 시민혁명의 승리로 결국 무너져 내리고 만 것이다.

일찍이 노자(老子)는 이를 ‘익생왈상’(益生曰祥)이라 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만 살아보려고 애쓰는 삶 자체가 재앙이란 뜻이다. 불구영 불초욕(不求榮 不招辱)이라 했던가. 헛된 영화를 탐하여 사리사욕에만 치중하다 보면 결국은 치욕을 자초한다는 역사의 거듭되는 교훈이리라. 사람이 하늘의 법도(自然)를 어기면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공해(公害)이다.

전국을 강타한 구제역 바이러스에 다들 속수무책이다. 두 달 반 만에 315만 마리의 돼지와 15만 마리의 소가 살 처분되고 소요재정이 3조원에 육박하고 매몰지가 4200곳을 넘어서면서 그 관리에도 비상이 걸렸다. 인간의 탐욕이 불러온 재앙이다. 농부의 자살도 이어졌다. 우리의 양심과 인간성뿐만 아니라 미래도 함께 묻는 것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소는 우리네 농촌의 가족이었는데 지금은 경제적 생산제품이 되어버렸다. 대량생산을 위해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우돈(牛豚)은 좋아하는 풀은 구경도 못한 채 곡물사료와 육골분으로 양산되어 결국 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질병에 대한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져 한 마리가 감염되면 순식간에 확산돼 집단 폐사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100년 만에 내린 폭설로 강원도 영동지방의 교통이 마비되고 수백억 원의 재산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자연환경 파괴로 인한 기상이변은 지구촌을 온통 재난으로 뒤덮고 있다. 일본의 100년 만의 폭설, 호주의 120년 만의 대홍수, 영하 40도의 중국의 천년극한(千年極寒), 100년 만의 유럽한파 등 세계도처에서 밀려오는 재앙의 현장에는 이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 메시지가 이어지고 있다.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의 잘못은 도시를 세운 것도, 탑을 쌓은 것도 아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흩어지지 않고 살아남으려는 인간 아상(我想)의 탐욕 때문에 단 한 번도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았던 교만의 죄였다. 무지가 아니라면 교만이다. 피와 땀과 눈물은 교만을 허무는 하나님의 고귀한 선물들이다. 고대 이스라엘 가정에는 온 가족이 눈물을 모아 소중하게 보관하는 성스러운 눈물병이 있었다. 그들의 삶이 담긴 이 눈물병이 그들에게는 가장 귀중한 보배합이 된 것이다.

말 빠른 정답보다는 공감의 눈물이 필요한 시대이다. 히말라야 설산(雪山)에는 혹한에도 둥지 없이 살고 있는 ‘할단새’라고 하는 전설의 새가 살고 있다고 한다. 추운 밤을 지새우며 내일은 반드시 둥지를 틀리라 마음먹지만 다음날 아침에 따스한 햇살 때문에 간밤의 결심을 잊어버린 채 여전히 둥지 없이 혹한의 밤을 지새운다고 한다. 좀 더 자자, 좀 더 눕자, 할 그때에 에덴의 불청객은 오늘도 여전히 우리의 삶을 유린하고 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성경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다고 말씀하신다.(벧전4:3) 더 이상은 안 된다. 우리들의 손에 각기 움켜쥐고 있는 정죄의 돌들을 내려놓고 입에 재갈을 먹이고 폭풍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한다. 영적 키파야(Kifaya)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지금 울지 않으면 앞으로 웃을 날이 없다. 주여 우리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시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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