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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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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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3.03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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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찬 목사<초동교회>

피겨 여왕 김연아가 있어 대한민국 국민은 행복하다.
시론(時論)은 지난 주간의 사회적 이슈를 나름대로의 입장으로 평하는데 묘미가 있다. 지난 주간 캐나다 밴쿠버 동계 올림픽 소식은 국민적 관심사였다. 3·1절 91주년기념이나, 올림픽 폐회식 소식과 함께 날아든 칠레의 지진과 세계 곳곳의 해일로 인한 자연재해 소식보다 더 큰 국민적 관심사였다. 하계올림픽의 꽃이 마라톤이라면, 동계올림픽의 꽃은 여자 싱글 피겨 스케이팅이라 하겠다. 시론(時論)의 주제로 손색이 없다.

숨이 막히고, 심장이 멈추어 가슴이 터질 것 같았던 4분의 피겨 스케이팅, 조지 거슈윈의 피아노 협주곡 F장조의 선율에 맞춘 연기를 마친 김연아 선수는 두 손을 번쩍 들어 하늘을 향하여 뻗쳤다. 15,000명의 기립박수와 환호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카메라의 앵글은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는 김연아의 얼굴을 따랐다. 김연아의 눈물은 대한민국을 울렸다.

영화(Screen) 스포츠(Sports) 성(Sex)을 부정적 3S로 여기던 때가 있었다. 권위주의적 독재정권이 국민을 우매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는 비판 때문이다. 국민을 3S에 빠뜨려 불의한 정권이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무디게 하는데 이용된다는 입장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서는 이런 주장은 의미가 없어졌다. 스포츠 스타는 ‘희망’이라는 아름다운 꽃을 국민에게 피운다.

일제의 탄압기에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마라톤 재패는 일제에 억눌려 지내던 대한 국민의 자존심의 꽃으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하여 몸부림치던 시대에 김기수, 홍수환 선수가 세계 권투 챔피언이 된 것은 할 수 있다는 희망의 길로, 황영조, 이봉주의 마라톤 우승은 더 이상 이름 없는 가난한 나라가 아님을 자랑하는 사건으로, 박세리의 LPGA 우승, 박찬호의 승전보는 IMF의 시련을 딛고 일어서게 하는 힘이 되었다. 월드컵 4강, 박지성의 활약, 박태환의 수영, 이창호, 이세 돌의 바둑 등 그들은 더 이상 개인이 아니다.

김연아 선수의 브랜드 가치는 수십조 원대에 달한다고 한다.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의 김연아 우승은 2,280억 원의 경제효과가 있었다고 한다(김도균 경희대 교수). 한국의 100대 기업이 브랜드 인지도를 1% 올리는데 100억 원을 사용한다고 하는데, 김연아 선수가 기여한 대한민국 브랜드 상승효과는 중형자동차 100만대, 30만톤급 초대형 유조선 200여 척의 수출과 맞먹는 효과라고 한다.

물론 김연아 선수 혼자만이 아니다. 소위 G세대라고 하는 동계올림픽의 금은동 메달을 14개나 목에 건 이상화, 이승훈, 이정수, 모태범, 그리고 비인기 종목에서도 선전한 모든 선수들이 함께 이룬 열매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들이 반드시 주목해야 할 일이 있다. “고통 없이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No pain, no gain.) 김연아 선수는 “준비가 잘 되어 있어서 잘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라고 하였다. 이 한 마디의 말과 시상대에서 흘렸던 눈물의 의미는 동일하다. 눈물의 뒤안길에는 2시간 연습 시간에 100번 이상의 점프 연습의 ‘땀’이 있었고, 7살부터 시작된 20살까지의 선수 생활 동안 오로지 한 길을 위한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는 ‘피’가 있었다. 기본에 충실하려는 노력과 희생이 영광의 눈물을 있게 하였다.

김연아 선수의 눈물을 통해 한국 교회를 반성한다. 꿩 잡는 것이 매라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빠른 성장만을 축복으로 여기는 병들어가는 한국 교회에 대해 김연아의 눈물은 새로운 깨달음의 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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