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대한 사명과 책무를 즐겁게 감당하는 언론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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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대한 사명과 책무를 즐겁게 감당하는 언론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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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2.03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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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억주 목사<한국교회언론회 대변인>


언론의 역할과 기능은 매우 중요하며 그 영향은 지대하다. 정보사회라고 말해지는 현시대에 사람들은 하루라도 사회와 그와 연관된 정보를 얻지 못하면 갑갑해서 견디지 못할 정도이다. 그 정보의 창구는 언론이다. 그러므로 언론과 현대인의 삶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때로는 언론이 제자리에 있는가 또한 언론이 사회적 공기로써의 사명으로 깨어 있는가? 라며 언론을 향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언론과 분리된 삶은 원하지는 않는 듯하다. 그렇다면 언론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은 무한하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 사회는 2년 전에 있었던 소위 ‘광우병’ 보도로 인한 사회적 ‘속앓이’를 해결하지 못했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차치하고, 언론이 사회 분열과 대결의 양상에 원인과 다툼의 자양분을 공급하고 있었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언론은 국민들의 ‘알권리 충족’을 위한 ’표현의 자유’라는 논리적 무기를 늘 앞세우고 있지만, 정직성에 관한 물음에는 얼버무리고 있어도 사회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언론은 입법 사법 행정에 이어 제 4의 권력기관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사회인들은 언론이 권력기관이라는 인식에 있어서는 유쾌해하지는 않으나 언론이 힘이 있다는 점에서는 동의한다. 국가 권력과 재벌이 합작하면 국가 경제 흐름을 왜곡시킬 수 있다. 국가권력과 언론이 유착하여 언론이 권력의 시녀가 된다면 국민의 눈과 귀는 멀게 된다. 결국 왜곡된 정보로 인하여 국가 운영과 발전에 큰 장애가 생겨난다. 그래서 언론은 진실보도에 의한 권력의 감시자로서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초병이 눈을 감으면 부대는 적에게 습격을 당하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언론도 그 사명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기독교 언론은 교회를 위한 사명으로 출발했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기독교 언론대로 대 교회에 대한 사명과 책무에 대한 점검이 늘 있어야 하리라고 본다. 그런데 그 사명은 즐거운 것이어야 하고, 그 책무는 더 중하다고 여겨야 할 것이다. 사회언론이 ‘진실’과 ‘정의’와 ‘사회적 공익’을 위한다면, 기독교 언론은 거기에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사회통합과 희망’ 그리고 ‘복음을 통한 인류구원’이라는 복음적 사명이라는 명제를 추가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 언론은 교회가 가는 길에 지팡이로써의 그런 용도로 사용되어져야 한다. 눈이 흐려지면 맑은 렌즈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이단들이나 박해자들로 인하여 교회가 힘들어 할 때는 언제나 제일선에 서 있어야 한다.

기독교 언론이 그 같은 사명으로 깨어 있고, 그 역할을 즐겁게 감당하도록 힘을 보태주는 것이 교회인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걸음이 언제나 느린 교회’를 탓하지 말고, 언젠가는 교회가 기독교 언론이 복음적 사역의 동반자라고 반기기까지 진실과 정의 그리고 진리로 행하기를 주문한다.

교회들도 건강한 기독교 언론이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데 협력자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힘써 도와야 한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교회도 많다고들 말하지만, 기독교 언론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그 가운데서 기독교연합신문은 사회언론 기능과 사명에 더하여 복음적이고 교회를 위하는 사명으로 그 사역을 감당하는데 있어서 어느 기독교 언론보다도 훌륭한 언론으로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그것은 지난 22년간의 피땀 어린 정성이 열매를 맺어 가는 것이라고 본다. 아무쪼록 현대와 미래, 그리고 교회와 세상의 가교가 되며, 세속과 거룩의 화모니(harmony)를 이루어내고 예수 생명의 희망을 전하는 기독교 언론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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