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정책과 우상숭배 동전 양면과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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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정책과 우상숭배 동전 양면과 같아
  • 승인 2002.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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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시대통령의 대북발언과 외교적 행보에 대해 한국교회는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
진보적 성향을 지닌 각종 단체들과 인사들은 ‘악의 축’으로 압축되는 부시 대통령의 대북강경발언과 호전적 정책에 대해 강력한 항의를 표시했고 다양한 규탄대회를 열었다. 반면에 보수진영을 대변하는 단체들은 방일기간 중 부시 대통령이 메이지 신사에서 큰 절로 참배한 것에 대하여 ‘우상숭배의 죄’를 범했다고 강한 어조로 규탄하였다.
그러나 부시의 대북강경발언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 침묵에는 사실상 부시의 대북시각과 한반도 정책에 대한 동의가 담겨있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이러한 진보와 보수 진영사이의 양분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간격을 좁혀 나가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우상숭배의 문제와 평화정책의 문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서로 밀착되어 있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다.
어떤 하나님을 믿느냐와 다른 인간과 국가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갖느냐의 문제는 깊은 연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게 나라를 잃은 이유로 사회적 약자를 짓밟는 공의의 부재(렘 22:3-5)와 우상숭배(렘 22:6-9)를 나란히 언급하심으로서 둘은 한 동전의 양면임을 분명히 하셨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바로 평화란 약자의 권익을 보호해주는 정의의 열매라는 것을 분명히 하셨다(사 32:17).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하여서 결국 멸망당할 것을 내다보면서 통한의 눈물을 흘리셨다(눅 19:41-44). 그들이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하였다는 것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약자의 주머니를 힘으로 터는 강도의 짓, 즉 불의가 자행되고 있었다는 데서 극명하게 드러낸다(눅 19:45-46). 그들은 정의에 기초한 진정한 평화를 짓밟음으로서 그들이 성전에서 섬기는 하나님은 진정한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임을 들어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부시가 단순한 선악의 이분법과 힘의 논리를 앞세워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언행을 너무 쉽게 해온 것과 일본 황제를 신격화한 메이지 신사에서 큰 절을 한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부시의 강경발언이 한국의 평화통일에 궁극적으로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미국의 냉전적 사고와 패권주의적 의도에 무지한 안이한 발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부시는 미국의 강경노선에 어느 나라보다도 적극적인 지지를 해온 일본에게 최대한의 감사를 표시함으로서 일본을 든든한 우방으로 삼고 싶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외교적 의전이라는 미명하에 문제성이 있는 신사참배까지 강행했던 것이다. 이쯤 되면 부시가 믿는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하나님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교회 보수와 진보진영이 견해차를 좁혀갈 수 있게되기를 바란다.

박득훈 목사(기윤실 건강교회운동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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