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103강) 자연재해는 역사의 종말을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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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103강) 자연재해는 역사의 종말을 경고
  • 승인 2008.05.2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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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말 론 (2)




유대 묵시록 문헌의 일반적 특징은 전쟁, 기근, 지진, 전염병, 공포의 등장이다. 소계시록이라 불리는 복음서의 종말론에도 이런 요소들이 등장하는 것은 저자들이 유대적 혹은 구약적 전통을 배경으로 기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또한 이러한 고통으로부터의 구원을 기대하고 있는데, 이는 애굽에서의 속박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이 해방된 것을 통하여 예시(豫示)된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런데 출애굽이 있기 전 열 개의 재앙이 있었듯이 그와 유사한 종말론적 고난이 있을 것으로 예견되었는데, 아마도 당대 사람들은 주후 69년에 발생한 네로 황제의 자살 후 네 명의 경쟁자들의 싸움과 주후 79년의 베수비우스(Vesuvius) 화산의 폭발 등이 그러한 분위기를 조장했을 것으로 이해한다.

‘이방인의 때’(눅 21:24)는 하나님이 이방 나라에게 한 때, 두 때, 반 때 동안 이스라엘을 황폐하게 할 권한을 주시겠다는 다니엘의 예언을 상기시킨다(단 12:7). 이 시기는 또한 복수의 날인데, 이를 잘못 풀이하면 복수하는 하나님이라는 그릇된 해석을 낳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 의미하는 바는 오랫동안 제지당하고 않고 처벌되지 않은 죄가 마침내 하나님의 정의에 의하여 엄격하게 처리된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고난에 대한 예언에 이어 이방인들의 고난이 언급된다(눅 21:25-26). 여기에 소개된 대격동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묘사되었는데, 세상을 삼킬 듯한 바다는 모든 악의 저장소로서 묘사되고 있으며(계 13:1), ‘하늘의 권능’(26절)은 동양과 그리스-로마 종교의 신들과 동일시되는 천체(天體)를 가리키는데, 유대인들은 이를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고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이방 나라들의 운명을 주관하는 천사들로 이해하였다(신 32:8; 사 24:21, 34: 1-4). 따라서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린다는 것은 가시적인 천체의 파괴가 아니라 이방 제국주의 세력의 전복을 가리키는 것을 말한다.

인자의 도래(到來)에 대한 묘사 후에 무화과나무 비유를 기록함으로써, 마가는 그것을 임박한 파루시아(재림)에 대한 경고로서 이해하였다: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혹은 때)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을 알라.”(막 13:29). 그런데 마가복음보다 약 30년 후에 기록한 누가는 마가의 “문 앞에”를 “하나님의 나라”로 바꿈으로써(눅 21:31) 임박한 종말론을 회피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맥락에서 누가는 “이런 일”(눅 21:31)을 뒤에서 다시 언급하되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기”(36절)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을 통하여 역시 임박한 종말론의 핍박적 상황과 거리를 두고 있다. 사실 재림과 하나님 나라의 마지막 완성으로부터는 그 어떤 피할 길이 있을 수 없고, 또 그것을 피하도록 기도할 필요성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복음에서 기록된 ‘도피를 위한 기도’(36절)는 다가올 핍박과 예루살렘의 멸망의 일차적 위기로부터의 생존을 위한 기도인 것이고, 이것이 바로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리라”(32절)의 의미인 것으로 풀이된다.

분명 이처럼 누가복음의 종말론에는 주후 70년 예루살렘 멸망을 가리키는 예언의 말씀도 있지만, 또한 동시에 역사 및 우주의 종말을 가리키는 말씀도 있다(9-11, 25-28, 35절). 이곳과 계시록의 말씀들이 종말의 시간표는 아니지만,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지진과 태풍 등의 자연재해는 분명 역사의 마지막이 더욱 가까웠음을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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