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77) 남녀평등의 고상한 가치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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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77) 남녀평등의 고상한 가치의 회복
  • 승인 2007.10.30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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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굽은 여인의 치유

남녀평등의 고상한 가치의 회복




「등이 굽은 여인의 치유 이야기」(눅 13:10-17)는 오직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다. 얼핏 보기에 단지 열여덟 해 동안 등이 굽어 고생하던 한 여인이 주님의 도우심으로 고침 받아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고 다니게 되었다는 평범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겠으나, 좀 더 그 내용을 숙고하게 될 때에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먼저 문맥에 의하면 누가는 이 사건을 포함하여 안식일에 병 고치는 사건 두 개를 연속적으로 소개하고 있다(눅 14:1-6). 사실 율법에 의하면 생명이 위험한 경우에만 안식일에 치유가 허락되었는데(출 20:9-10), 주님이 안식일에 병자들을 치유하자 회당장(눅 13장)과 율법교사 및 바리새인들(눅 14장)은 주님을 비난하게 되었다(눅 13:14, 14:3). 그러자 주님은 안식일에도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물을 먹이지 않는가(눅 13:15), 그리고 아들이나 소가 물에 빠졌다면 건져내지 않겠는가(눅 14:5)는 말씀으로 그들의 비난에 반박하신다. 물론 두 사건에서 안식일에 질병을 치료함으로써 안식일을 범한다는 유대인들의 주장을 비판한 것도 중요한 일이겠지만, 저자 누가에게 있어 또 한 가지 중요한 일은 남자만이 아니라 여자 또한 주님 치유의 대상으로 소개됨으로 인하여 남녀의 평등을 보여주고자 하였다는 사실 또한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등 굽은 여인의 치유이야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 한 가지는 여인의 육신적 질병의 치유만이 아니라 여인의 인격적, 사회적 지위의 회복에 대한 암시이다. 알다시피 신약시대에 여자들은 이급 인간으로 취급되어 노예, 어린이 등과 마찬가지로 천대받고 있었다. 어쩌면 이야기의 여인처럼 남자들에게 눌려 허리를 펴지 못하고 고개도 들지 못하는 그늘진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주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여인들은 이제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이야기 속의 여인이 주님의 치유로 허리를 펴고 살게 되었듯이, 고개를 들고 어깨를 펴고 살 수 있게 되었다. 여자들의 인격적, 사회적 지위의 회복에 대한 이러한 해석의 근거는 여기서 저자 누가가 신ㆍ구약 성경에서는 유일하게 “아브라함의 딸”(눅 13:16)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는 아브라함의 씨(롬 11:1, 고후 11:22), 아브라함의 자손(요 8:33, 37), 아브라함의 후예(행 13:26), 아브라함의 아들(갈 3:7) 등의 표현이 사용되면서 주로 남자 중심으로 이해되어 왔는데, 여기서 유일하게 아브라함을 “딸”과 연계하여 사용하였다는 것은 이제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인정받게 되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써 여자의 달라진 지위 및 위상을 보여주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여자의 사회적 회복에 대하여 사실 당대 사람들의 반응은 썩 좋은 것이 아니었다: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눅 13:17). 여전히 남성 중심적 가부장적 제도 혹은 남존여비적 사고에 젖어있는 사람들에게 이급인간으로 취급당하던 여자를 남자와 동등하게 대우하시는 주님의 태도는 그들에게 매우 못마땅하였을 것이리라. 그러나 “온 무리가 주님이 하시는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였다”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사역에 찬성하였음을 가리킨다. 비록 주님이 공개적으로 여성해방을 주창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주님의 사역은 마침내 여성의 인격적 회복을 가져와 남녀평등의 고상한 가치를 확립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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