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서(121) 시므이의 저주를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임
상태바
사무엘서(121) 시므이의 저주를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임
  • 승인 2009.10.07 17: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을 바라는 다윗




3절에서 다윗은 시바에게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의 안부를 묻는다. 이에 시바가 대답하되 므비보셋은 예루살렘에 있으면서 압살롬의 반란으로 사울의 왕권이 다시 회복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다.

4절에서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주었던 것을 모두 시바에게 준다. 그 이유는 시바가 므비보셋을 따르지 않고 다윗을 따르는 것에 대한 보상이다. 고대사회에 있어서 신하에 대한 토지 하사는 왕의 고유 권한이었다. 이러한 예는 아시리아 제국의 기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아수르바니팔 왕이 그의 신하 발타야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 앗수르바니팔은 (위대한 왕, 강력한 왕, 세상의 왕, 앗수르의 왕) 네 방위의 왕, (진정한 목자), 선을 (행하는) 자, 의로운 왕, (진리를) 사랑하는 (자, 그의) 백성을 (만족시켜) 주는 자, 항상 (그를) 보좌하는 관리(들)에 대해 친절(하게) 행동하고, (그의) 왕정 명령에 복종하는 공손한 자에게 보상해 주는 자이다. 발타야, 앗수르의 왕인 아수르바니팔의 음식물 보급소의 우두머리는 친절과 총애를 받을 만 한 사람이었으며, 왕권의 계승부터 실행까지 그의 주인에게 헌신적이었던 사람이었으며, 내 앞에서 신실함으로 보좌했던 사람이고, 무사히 걸었던 사람이었고, 나의 궁전에 좋은 평판을 키워나갔던 사람이며, (나의) 왕권을 지켰던 사람이다.”

따라서 왕은 항상 자신에게 복종하는 자에게 토지나 세금 면제로 보상해 주었다. 또 한 예는 아다드 니라리 3세가 아수르에게 토지를 주는 기록을 살펴볼 수 있다. “아다드 니라리 3세(Adad-nerari Ⅲ), 지배자, 삼시 아다드 5세의 아들, (지배자), 살만에셀 3세(Shalma[nese]r Ⅲ)의 아들. 마을들, 들판들, 건물들, 과수원들, 사람들, 아다드 니라리 3세(Adad-nerari Ⅲ)의 환관들, 앗수르의 왕, 앗수르의 재정 담당자, 그의 환관들에게 속해 있는 아다드 니라리 3세, 앗수르의 왕, 그것들을 면제시키고 그의 군주 아수르에게 주었다.”

따라서 다윗도 충성스러운 시바에게 므비보셋에게 하사했던 토지를 시바에게 하사한다. 이러한 것은 매우 보편적인 일이다.


16:5-13절은 다윗이 바후림(Bahurim)에서 시므이를 만난 일을 기록하고 있다.


5절에 의하면 다윗은 사울의 친척인 게라의 아들 시므이를 만난다. 그런데 시므이가 지속적으로 다윗을 저주하였다. 시므이의 이러한 행동은 사무엘하 16:3절의 므비보셋의 행동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6절에 의하면 시므이는 다윗과 그의 모든 신하를 향하여 돌을 던짐으로 백성들과 군인들이 다윗을 보호하였다.

7절의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는 것은 시므이의 입을 통하여 비록 다윗이 위대한 왕이지만 그러나 그가 이 위대함을 이루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가를 보여준다. 8절은 전형적인 인과응보적인 관점에서 사건을 해석한다.

즉, 시므이의 설명에 의하면 다윗이 왕권을 잡기 위하여 사울 가문의 피를 많이 흘렸음으로 하나님께서 그 피를 갚아주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시므이가 다윗이 사울 가문의 아브넬과 이스바알을 죽인 것을 정죄하는 것이다.

9절에 의하면 시므이의 말을 듣던 다윗의 신하 가운데 스루야가 시므이를 죽이도록 허락해달라고 청원한다. 그러나 10절에서 다윗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시므이의 저주도 하나님에 의하여 되어진 것이라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사무엘하 16:10절과 같은 사관은 포로기 이후 신학에서 많이 발견된다. 즉, 이스라엘의 패배가 죄에 대한 심판의 결과로 이해하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로 이해한다.

이러한 이해는 창세기 45:8절의 요셉 같은 사형들에게 자신을 이집트로 보낸 것은 형들의 판매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이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역사이해를 발견할 수 있다. 9절에 의하면 이스라엘에서는 무가치함을 나타낼 때 개에 비교한다.

따라서 12절에 의하면 다윗은 자신의 이 비굴한 처지에서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원통함을 감찰하실 때 가능하다고 믿는다. 따라서 다윗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함을 강조하고 있다.

감람산 동쪽 기슭을 다 내려온 다윗과 그 일행은 한 곳에서 쉬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히브리어 성경본문의 14절은 해석상의 문제가 있다. 본문은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우리말 성경의 번역처럼 “왕과 함께한 모든 백성이 피곤하여 도착했다. 그리고 거기서 쉬었다”이다. 그런데 이렇게 번역할 경우 어디에 도착했다는 장소의 부사가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