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서(101)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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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서(101)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과정
  • 승인 2009.05.1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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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세메스와 베레스웃사




사무엘하 6장은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으로 옮기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대상 13:1-14; 15:25-16:6, 43). 사무엘하 6:1-23절은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옴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을 정치, 행정적인 중심지 일뿐만 아니라 종교적 도시로 만드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1-2절에서 다윗은 이스라엘 군대 삼만 명을 모아 바알레유다로 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오려고 한다. 여기서 삼만 명은 과장된 숫자이지만 그러나 군대로서 만 명 단위는 큰 규모의 군대는 아니다. 바알레유다(בצ ללהורה)는 유다의 바알(Baal of Judah)이다.


바알레유다는 유다의 바알라(Baalah)로서 기럇여아림의 다른 이름이다(수 15:9). 기럇여아림에는 법궤가 머물렀던 곳이다(삼상 6:21).

3절에서 법궤를 싣고 갈 수레가 새 수레였다는 것은 사무엘상 6:7-9절에 기록되어 있다. 사무엘상 6:7절에 의하면 새 수레를 만들고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소에 수레를 메우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무엘상 6:19-7:2절은 벧세메스에 도착한 법궤가 다시 기럇여아림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기술하고 있다.  사무엘상 7:2절에 의하면 이때로부터 20년 동안 법궤가 기럇여아림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이 기록을 중심으로 법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때는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기 20여 년 전에 있었던 일임을 말하고 있다. 이 기록을 중심으로 법궤가 기럇여아림으로 들어간 것은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기 13여 년 전에 발생한 사건이다.

법궤가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왔다. 아비나답의 집에 머문 법궤에 대하여 사무엘상 7:1절에 기록하고 있다. 사무엘상 7:1절에 의하면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옮겨 놓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로 하여금 법궤를 지키게 하였다.

3절에 의하면 이 새 수레를 모는 사람은 웃사(Uzza)와 아효(Ahio)이다. 4절에 의하면 웃사는 궤 옆에서 그리고 아효는 궤 앞에서 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실 히브리어 본문 4절에는 웃사가 궤를 중심으로 어디서 갔는지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많은 문헌들이 4절에 웃사를 첨가하여 웃사가 궤 옆에서 갔다고 해석하고 있다.

5절에서는 법궤가 이동할 때 잣나무로 만든 악기와 수금, 비파, 소고 양금, 제금 등 모든 약기가 동원되어 연주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란 역대상 13:8절에 의하면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라는 히브리어 표현이 잘못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실은 히브리어 원문을 서로 비교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6절은 웃사가 하나님의 궤를 붙들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웃사는 소들이 뜀으로 법궤가 땅에 떨어질 것을 우려하여 법궤를 붙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웃사의 행동은 법궤를 지키려는 행동으로 이해되기 보다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으로 이해되어 결국 그가 죽게 된다. 민수기 4:15절에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는 일을 마치거든 고핫 자손들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라 그들이 죽으리라”는 규정이 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당시에도 성물을 만지는 자는 죽을 것을 명하고 있다. 사무엘상 6:19절에서는 법궤가 벧세메스에 도착했을 때 벧세메스 사람들이 법궤를 들여다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치셔서 그 백성 오만 칠십 명이 죽임을 당하였다. 6절의 “나곤의 타작마당”이란 표현에서 나곤이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역대상 13:9절에서는 “기돈의 타작마당”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어떤 주석가는 나곤이 사람이름이 아니라 동사의 분사형으로 이해하여 ‘나곤의 타작마당’대신 ‘어떤 타작마당’으로 읽기도 한다.


이러한 사건을 근거로 8절에 의하면 그 장소의 지명을 베레스웃사(Perez Uzzah)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웃사를 쳐서 죽게 하신 사건에서 기인한 지명이다.

9-10절에서 다윗은 웃사가 죽는 사건을 체험한 이후 법궤가 자신에게로 오는 것을 즐겨하지 않아 법궤가 오벧에돔(Obed-edom)의 집으로 메고 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오벧에돔은 아마도 다윗이 블레셋 도시인 가드로 피난갔을 때 다윗을 추종했던 사람으로 추정된다. 법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 있는 동안 여호와께서 그의 집에 복을 내려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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