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다신계는 다산이 사망한 이후에도 100여년동안 지속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의를 매우 중시하였다.
다산은 ‘中을 얻더라도 의에 부합하지 않으면 중용이 될 수 없다’라고 하여 중용의 기준을 의에 두었다. 우리나라에서 의를 굳게 지킨 사람 중에는 정몽주, 이색 그리고 일제 강점기 때 우국지사였던 장지연, 황현 선생 등이 있다. 이들은 차를 마시면서 그릇된 생각을 떨치고 바르고 옳은 길을 걷지 않았나 생각된다.
세상의 모든 음식에는 고유의 특성이 있다. 차 역시 오랜 시절부터 애용되어 온 것은 차만이 지니고 있는 차별화된 특성 때문이라 생각된다. 차를 마시면서 세상의 걱정으로부터 비롯된 흐트러졌던 마음이 가라앉게 되고 옳고 바른 길을 걷고자 다짐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의 선조들이 차를 마시며 무엇을 생각하였는지 요즈음의 차인들이 깊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요즈음은 차의 형식과 절차는 발달되었으나 차의 깊은 맛 속에 면면이 이어져 내려오는 이런 차의 정신은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차가 음료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 쉽고 편하게 마시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나 차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예절을 가르치는 전문가들은 이런 차의 아름다운 정신을 계승발전 시키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필자의 생각인지는 모르나 큐티 모임을 하거나 순 예배를 드릴 때 모여 커피를 마시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좀 더 깊이 묵상하고 그 속에 담긴 뜻을 헤아리기 위해서는 생각을 집중하게 하고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차가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차를 마시는 절차와 형식에 관계없이 편하게 차를 마시면서 말씀을 나누거나 교제를 하기에는 커피보다는 차가 더 유용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제의해 본다.
<한서대학교 대우교수.유아다례연구소장>